주간동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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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권가도에 ‘일곱 고개’

지방선거·정계개편 등 곳곳에 장애물 … DJ·YS와의 관계 설정도 필수 과제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9-22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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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권가도에 ‘일곱 고개’
    ”불신과 분열의 시대를 넘어 개혁과 통합의 시대로 가야 한다.” 4월27일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에 나선 노무현 후보는 당당했다. “연말 대선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그의 말에는 여당 후보로서의 자신감과 강한 힘이 배어 있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를 앞서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노풍(盧風)’ 등 노후보가 갖는 자신감의 근거는 비교적 뚜렷하다. 하지만 노후보 앞에는 높고 험한 산도 즐비하다. 우선 최고지도자에 걸맞은 비전과 정책 등을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을 상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방선거와 정계개편 등 노후보의 정치력을 검증하는 상황도 이어진다. 노후보가 당면한 7대 과제를 분석해 보았다.

    1. DJ,어찌 할 것인가

    노후보의 첫번째 고민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후보는 그동안 철저한 ‘김대중주의자’임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개혁 이념과 철학을 가장 많이 공유하고 계승한 인물”(쇄신파 S의원)이라는 평가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인제 전 고문의 ‘차별화’와 정반대인 ‘DJ 계승론’은 노풍을 일으킨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상 김대통령에 대한 입장이 같을 수 없다. 어떤 방법으로든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최근 김대통령은 세 아들의 비리 의혹과 관련, 언론과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여론은 노후보에게 “김대통령의 책임을 물으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노후보로서는 3김과 다른 새로운 지도력을 갈구하는 국민의 염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노무현 대권가도에 ‘일곱 고개’
    노후보가 김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면 여론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당내 동교동계 등 특정 세력의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김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키려 한다면 여론이 그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 4월24일 노후보는 “이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다 못했을 때는 이 일이 다음 정부의 숙제가 되며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말해 사실상 국민의 정부에서 일어난 각종 정책적 잘못이나 세 아들의 의혹 문제에 대해 결자해지해 달라는 요구를 우회적으로 전달했다. 쇄신파 S의원은 “차별화의 서곡”으로 해석했다.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각각 대선을 3개월과 1개월 앞두고 당을 떠났다.



    2. YS, 과연 노후보 손 들어주나

    김영삼 전 대통령(YS)과의 관계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노후보는 4월30일 YS를 만났다. 당선 인사가 명분이지만 대선 막판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주의 현상에 대비한 조치로 해석된다. 정계개편을 통해 민주당의 호남색을 탈색하겠다는 복선도 깔려 있다. 당장 지방선거에서의 YS 지지도 급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YS는 쉽게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YS는 지난 4월23일 일본 와세다대학 강연 후 기자들에게 “아직 지방선거도 남아 있고, 세월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장차 있을 일을 지금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YS 주변을 맴도는 노후보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있다. “서울시장 자리를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영남에서는 전승할 것이다”는 PK 출신 L의원 지적처럼 한나라당의 수성 의지는 굳건하다. 이회창 후보는 4월24일 “지난 4년간 영남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노무현 후보는 어디서 무엇을 했나”라며 노후보의 아픈 부분을 찔렀다. 김대중 정권을 ‘호남 정권’으로, 노후보를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 규정한 것도 영남 민심을 자극하려는 계산에서 비롯된 공세다. YS를 놓고 벌이는 이 전 총재와의 기싸움에서 노후보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3. 당 장악 가능한가

    노무현 대권가도에 ‘일곱 고개’
    따지고 보면 노후보는 민주당 내에서 ‘외인부대’에 속한다. 단기필마로 입성, 대권후보 자리를 거머쥐었지만 당내에 뚜렷한 지지그룹이 없다. 경선을 전후해 유일하게 그를 지지한 인사는 천정배 임종석 의원 정도였다. 물론 광의로 본다면 당내 30% 정도에 해당하는 쇄신파를 지지세력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동교동계 그룹을 비롯, 이인제 의원 계보 등 비토 그룹은 의외로 많다. 당 중진들의 경우 ‘과격하다’며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권과 당권마저 분리, 그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대선을 앞두고 대권과 당권이 분리된 것은 지난 71년 대선에서 신민당의 유진산 총재-김대중 대선후보 이후 처음이다. 당시 유총재는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영삼 후보를 밀었다가 김대중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아 갈등을 빚었다. 노후보측도 비슷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경우에 따라 대선후보와 당대표의 파워게임이나 알력도 예상할 수 있다. 당권-대권 분리, 과거와 다른 정치 환경, 여기에 소수파로 다수파를 누른 열악한 여건 등 노후보의 정치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나 많다.

    노무현 대권가도에 ‘일곱 고개’
    이인제 전 고문과의 관계 복원 여부는 당 장악 문제와 직결된다. 이 전 고문은 4월8일 한 인터뷰에서 “자기 입장에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니 이인제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급진좌파 노선을 걷고 있는 노후보를 도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발언이다. 이 전 고문은 자기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 박근혜 의원 주변에서 충청권을 중심으로 하는 신당창당설이 흘러 나오고 있는 점도 노후보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고문의 결단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대선 득표 수에 최소 100만표 이상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 전 고문은 현재 지방선거 이후 벌어질 정치권 구도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노후보가 이 전 고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이때까지다. 경선 일합(一合)은 이 전 고문의 패배로 끝났지만 두 인사의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5.지방선거, 영남 교두보 확보 가능한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노후보의 정치 지도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첫번째 시험대는 지방선거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본선 경쟁력을 강조해 온 노후보는 이를 입증해야 한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인천시장 등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여야 정당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노후보로서는 무엇보다 영남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 노후보는 “후보가 되더라도 영남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하면 재신임을 받겠다”는 벼랑끝 전술을 이미 던져놓았다. 영남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하면 자신이 던져놓은 그물에 걸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노후보가 사실상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지난 4월20, 21일 양일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부산·경남권 유권자 중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12.5%로 매우 낮았다.

    6. 정계개편, 노후보 구도대로?

    지방선거 결과는 노무현식 정계개편의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주세력 결집을 통한 정계개편 추진을 이미 여러 차례 예고했다. ‘개혁세력 총결집’의 형태를 띤 민주대연합이 정계개편의 목표다. 야당 내 개혁성향 및 구민주계 의원, 무소속까지 총망라하는 정계개편의 그랜드 디자인이 정치권에 흘러 다닌 지는 이미 오래다.

    정계개편의 방향과 속도는 현실 정치에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는 3김과 허주(김윤환 민국당 대표) 및 민심의 흐름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노후보의 구도대로 신민주연합 구도가 창출되면 노후보의 대선가도는 탄탄대로를 달리게 된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이인제 전 고문을 비롯, 당내 보수파들은 노후보의 이 같은 정계개편 의지를 폄훼하고 있으며 자민련 김종필(JP) 총재, 박근혜 정몽준 의원 등도 아직 노무현 구상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계개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YS의 속내도 오리무중이다.

    7. 과격한 이미지 ·이념논쟁 극복할까

    노후보를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안정감을 줄 것인지도 노후보가 풀어야 할 숙제다. 노후보는 4월24일 “사면구가(四面舊歌)를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후보가 말하는 사면구가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옛날식 사고방식과 시스템’이다.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바꿔야 한다”는 노후보의 개혁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표현이다. 이런 개혁적 성향이 경선에서 빛을 발해 노풍의 추동력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후보의 이 같은 진보적 색깔은 ‘반대편’에 선 사람들로부터 과격, 급진, 저돌적, 비타협적, 고집불통 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권 여당 대통령후보로 자리매김한 노후보는 이제 “특유의 거친 목소리를 계속 쏟아낼 것인가, 아니면 안정감으로 포장한 다듬어진 새로운 ‘노무현’을 선보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자문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노풍’을 몰고 온 젊은 개혁층을 겨냥한다면 거친 노무현의 색깔이 유리하겠지만 “틀 속에 들어가 안정감을 보여달라”는 더 많은 요구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노후보의 한 측근은 “이미지를 수정·보완할 계획이다”고 말했고 노후보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겠다”며 부쩍 신경 쓰는 눈치다. 노후보 측근 B씨는 ‘야합이 아닌 타협의 미학’이라며 노후보의 변화를 설명한다.

    노후보는 그동안 항상 소수파의 입장에 서 있었다. 때문에 민주주의의 원칙 중 하나인 다수의 논리나 사고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서툴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역시 여권의 대선주자로서는 결격 사유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다. 관료사회나 정치권에서 순탄하게 성장하지 못한 그의 일천한 경륜, 경제-대북 및 대미관계, 행정 등에 대한 노후보의 자질과 능력 등에 대한 검증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몇몇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도 예외일 수 없다. 노후보는 과연 이 같은 고비를 넘을 수 있을 것인가. 국민들은 기대와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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