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나 마님이 되어보나](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09/24/200409240500040_1.jpg)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프랑스 작가 장 주네 작 이윤택 연출의 ‘하녀들’ 역시 마님이 되고 싶은 하녀들의 얘기다. 하지만 오늘 같은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하녀와 마님 사이의 간극은 여전하며, 모두들 부와 권력을 쥔 ‘마님’이 되려고 안간힘 쓰지만 그것은 허구에서나 가능하다는 슬픈 유희를 보여준다.
막이 오르면 루이 14세 양식으로 꾸며진 침실에 드레스와 꽃이 넘쳐난다. 경대를 보며 화장하던 우아한 귀부인은 빨간 고무장갑을 낀 초라한 하녀의 시중을 받고 있다. 귀부인은 거만하고 하녀는 복종적이지만 심상치 않은 긴장이 감돈다. 갑자기 자명종이 찢어질 듯 울리면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온다. 마담이 집을 비운 사이 두 하녀가 매일같이 벌이는 연극 ‘마님과 하녀’ 놀이를 끝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녀들은 이름조차 혼동하며 무시하는 마담에게 “마담은 아름다워요” “저흰 마담을 사랑해요”를 연발하며 절대적 굴종과 충성을 연기한다. 치욕스런 현실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몰래 독약을 타서 마담에게 차를 건네지만 감옥 갔던 애인이 풀려났다는 소식 때문에 실패로 끝난다.
![꿈에서나 마님이 되어보나](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09/24/200409240500040_2.jpg)
배우 중심의 연극을 표방한 이번 공연에서는 연출선이 비교적 절제된 대신 각 배우들이 지닌 개성과 과장된 연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초연 때 주네가 남자배우로 배역을 정하도록 권했다는 이 연극은 배우들에게는 커다란 도전인 동시에 유혹이다. 더블 캐스팅된 마님 역은 배우 정동숙의 걸직한 목소리와 질퍽한 연기가 맞지 않아 촌극으로 흐른 경향도 있었지만, 소극장의 공간은 잘 훈련된 세 배우가 열정적으로 뿜어내는 땀과 눈물에 흠뻑 젖어들었다. 마님을 죽이는 것은 현실이 아닌 연극에서나 가능하고, 그것도 하녀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이 부조리극의 시각은 시니컬하기 짝이 없다. 극중극이라는 복합적 유희구조를 통해 현실과 연극이 마주 보고 있는 거울처럼 서로를 투영시키는 극장에 앉아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모두 무대다.’(4월12일∼5월19일, 산울림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