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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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3을 어찌할꼬” 잠 못 이루는 청와대

대국민 사과에도 ‘의혹’ 불길은 여전 … ‘법대로 처리’ DJ, 최악의 상황 각오 시각도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9-22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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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弘3을 어찌할꼬” 잠 못 이루는 청와대
    ”안봐도 뻔한 거지, 그걸 꼭 물어봐야 아나.” 청와대 사정에 밝은 민주당 당직자 K씨에게 “요즘 김대통령 주변 분위기가 어떠냐”고 질문을 던지자 독백처럼 내뱉은 말이다.

    “김대통령이 그런 사과문을 발표할 줄 생각이나 했겠어. 그것도 평소 말썽 한번 안 부린 자식들 일로….”

    요즘 청와대에는 침울함과 자괴감이 지배한다는 전언이다. 김대통령의 눈물이 이를 상징한다. 지난 4월26일 김대통령은 아들들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구술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K씨는 “대통령께서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입원을 통해 급한 불은 껐지만 한 달 이상 요양에 가까운 건강 관리에 나서야 할 김대통령이 ‘아들들’ 문제 때문에 정신적으로 쉴 여유가 없다는 것. 불면으로 어려움을 겪는 데다 식욕도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사과문 구술하며 DJ 눈물 흘려

    “弘3을 어찌할꼬” 잠 못 이루는 청와대
    김대통령의 건강이 좋지 않은 데는 언론의 영향도 크다는 게 K씨의 진단이다. 김대통령은 요즘도 신문기사를 꼼꼼히 읽는다고 한다. 4월26일 한 석간신문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정의사회실천시민연대(이하 정실련)가 홍걸씨의 자진 귀국 및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가 실렸고 이는 청와대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김대통령의 결단과 책임을 요구하는 언론의 압박에 못 이겨 사과문까지 냈지만 아들들을 둘러싼 의혹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주변 비서진은 ‘아들들’ 문제로 도배질한 신문 읽기를 만류하지만 김대통령이 듣지 않는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도 좌불안석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특히 아들 홍걸씨로 인한 마음고생은 김대통령보다 훨씬 더할 것이라고 청와대 비서관 C씨는 말한다. C씨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김대통령이 LA에 있는 자식 문제를 직접 챙길 수 없어 홍걸씨 관리를 전적으로 이여사에게 맡겼는데 이런 사고가 생겼으니….”

    특히 검찰이 김홍업 김홍걸씨의 소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 이여사의 마음을 더욱 짓누르고 있다는 것.

    “弘3을 어찌할꼬” 잠 못 이루는 청와대
    “홍걸씨는 미국에서 FBI 수사 대상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최규선 게이트과 관련, 현재 드러난 혐의만으로도 구속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여사는 내성적이고 여린 성격의 홍걸씨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밤잠을 못 이루는 것 같다.”

    홍걸씨 문제로 노부부 사이에 서먹서먹한 분위기까지 감돈다고 한다. 민주당 K씨는 “평생 싸움 한번 안 한 노부부가 말년에 자식들 때문에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부모가 이처럼 어려운 입장에 빠진 것을 보고만 있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장남’ 김홍일 의원이 지난 4월28일 귀국했다. 평소 장남과 맏형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소화하려 했던 그로서는 집안을 덮치는 우환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귀국을 지켜본 측근 L씨의 설명이다. 지난해 11월 김대통령이 민주당 쇄신파의 요구로 힘없이 당 총재직에서 물러나자 ‘장남의 눈물’을 동원, 아버지를 옹호했던 김의원이다. 김의원측 한 인사에 따르면 당초 김의원은 홍걸씨 사건이 불거진 지난 4월 초 청와대에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김대통령 내외는 김의원의 귀국을 만류했다고 한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K씨의 설명이다.

    “귀국한들 뾰족한 수가 있나. 어떻게 보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김대통령을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고…. 대통령 내외는 김의원이 미국에 머물면서 건강이나 회복하길 기대했고 그런 입장을 여러 차례 전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내 동교동계 및 친한 동료 의원들도 가세해 김의원의 귀국을 만류했다. 그러나 김의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김의원은 귀국 후 곧바로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측은 “오랜만에 만난 부자의 저녁 회동”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지만 공항까지 마중 나갔던 한 측근은 “부자간에 병원 신세를 졌으니 건강에 대한 얘기와 동생 문제와 관련, 김의원의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 측근은 미국에 있는 김의원과 통화했을 때 김의원이 “구체적 근거도 없이 대통령 아들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매우 불편한 심기를 피력했다는 것. 국회 비서실 한 참모도 “김의원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의원은 귀국 전 홍걸씨와의 몇 차례 접촉을 통해 최규선 게이트에 대한 실체 파악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원은 홍걸씨에게 “당당하게 들어가 모든 것을 밝히고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자”고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형제의 동반 귀국은 불발로 끝났다. 김의원의 한 측근에 따르면 몇 차례 형을 만났던 홍걸씨가 갑자기 접촉을 끊었다는 것. 홍걸씨는 요즘 청와대와도 전화통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弘3을 어찌할꼬” 잠 못 이루는 청와대
    청와대는 요즘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세 아들 문제에 대해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청와대에 언론은 연일 포격을 가한다. 그렇지만 청와대로서도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비서진이 잇따라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되는 등 비서실이 입은 ‘내상’도 만만치 않은 데다 과거처럼 검찰 수사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하기도 어렵다. 청와대 한 인사의 설명이다.

    “검찰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변호사 출신 민정수석비서관과 사정비서관, 언론인 출신 민정비서관 등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구성했다. 따라서 청와대가 검찰 수사 방향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던 과거 정권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지금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갔으며 홍걸씨의 혐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뭘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닌가.”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음에도 정치 논리에 따라 “(청와대의) 해법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 하지만 그도 “청와대가 아무런 대책을 검토하지 않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상황에 떠밀려 가면서 대통령 건강이나 걱정하고 있는 처지가 한심스럽다는 것. 자괴감 속에 숨어 있는 곤혹스러움이 청와대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민주당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 최근에는 김대통령과의 관계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심지어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필요하다면 홍걸씨든 홍업씨든 구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와 청와대를 당혹스럽게 한다. 4월27일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는 “김대통령의 세 아들 문제는 저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에게 조속히 세 아들의 비리 문제를 매듭지어 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야당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지방선거 정국을 맞아 김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함으로써 주도권을 잡겠다며 준비된 ‘파일’을 풀어헤칠 태세다. 그 선봉에 이회창 총재가 앞장서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97년 4월 야당 총재였던 김대통령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문제를 통해 대선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 시도한 바 있다. 당시 김대통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현철씨 처리 문제는 법대로 해야 한다. ‘법대로’라는 말에는 구속까지 포함된다. 돈 몇 푼 받았다는 식으로 해선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썩어도 이렇게 썩을 수 없다”며 격분했던 김대통령의 모습을 5년 후 이총재가 재현함으로써 역사는 돌고 도는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에서는 김대통령이 최규선 게이트 초기의 심한 충격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들들에 대해서는 ‘법대로 처리’라는 원칙을 정했고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고 있다는 것. 최근 김대통령은 대북 및 경제 문제 등을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대통령 부부에게 금년 5월은 생애 최고의 ‘잔인한 달’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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