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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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무당·교회에는 명당자리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입력2004-01-30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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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꾼·무당·교회에는 명당자리

    당대 최고 소리꾼의 집터이자 귀신의 집터였던 곳에 현재 교회(아래)가 들어서 있다.

    귀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무당 집터의 요건은 일반 사람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군에는 옛날부터 소리꾼과 무당들이 많이 살았다. 신분 차별의식이 강했던 과거에는 그 같은 사실이 자랑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손이나 인근 사람들이 밝히기를 꺼려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무당이 살았던 집이 교회 또는 암자로 바뀌거나 절터가 무당의 집터로 바뀌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땅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용도를 잘 알지 못하고 일반인들이 그곳에 들어가 살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그 한 예를 교수인 고향 후배한테서 들었다. 전통문화학교 동양철학과 최영성 교수는 어렸을 때 순창읍에서 10리 떨어진 복실마을이란 곳으로 이사 간 적이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그곳은 조선 후기 8대 명창으로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던 김세종의 집터였다고 한다.

    그런데 저녁때나 새벽녘이 되면 어디선가 귀신소리가 들려와 최교수 어머니는 밖에 나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마치 누군가가 소곤거리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교수 어머니는 우물로 물 길러 갈 때나 부엌에서 일할 때도 무서워서 언제나 어린 영성을 옆에 있게 했다.

    그러던 어느 해 가족 가운데 세 사람이 연달아 까닭 없이 죽었다. 졸지에 집안 어른들이 잇따라 돌아가시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고, 도대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개·돼지 등 가축들도 죽어나가 “구덩이 파는 데 일년을 다 보냈다”고 최교수는 회고한다. 그래서 최교수 가족은 집을 팔고 그곳을 떠났다.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 최교수가 훗날 그곳을 찾아가보니 그 자리에 교회가 들어서 있었다.

    왜 당대 최고 소리꾼의 집터에 사람이 살지 못하고 훗날 교회 터로 변했을까? 소리꾼의 터와 교회 터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에 대해 판소리 연구가인 군산대 최동현 교수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과거 무당들이 살던 곳에는 소리꾼이 대개 한 가족을 이루어 살거나 동업관계였으며, 그 집터에서 귀신소리가 나는 것도 무당들이 그들과 자주 접하기 때문”이라는 것. 즉 소리꾼의 집터는 무당의 집터이며, 무당이나 교회 모두 신이나 귀신과 관계하기 때문에 교회 터로도 적절하다는 것이다.

    실제 이 자리는 풍수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주변 산들은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무정하게 등을 돌리거나 험하게 노려보는 형상이며, 집 옆으로 흐르는 시내 역시 감아 돌지 않고 집을 향해 치고 들어오는 형상이다. 이에 대해 장남식 풍수역학연구소 소장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산이 집터에 등을 돌리고 있거나, 물길이 치고 들어오는 곳에서는 낮보다는 밤에 더욱더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크게 들린다. 특히 아침과 저녁에 산바람과 골바람이 부딪히면 그 부딪히는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뒤섞여 마치 귀신소리처럼 들리게 된다. 대개 새벽과 저녁 무렵에 귀신소리가 들리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까닭에서다. 또한 우리나라는 일교차가 심한데, 환절기의 경우 낮과 밤의 온도차가 10℃ 이상이 될 때도 있다. 이와 같은 형세의 집터는 바람막이가 전혀 안 되고 물길이 공격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온도차가 더 심하게 난다. 온도가 갑자기 내려가면 사람들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는데, 이것은 심장에 충격을 준다. 기질적으로 심장이 약한 사람은 이럴 경우 갑자기 죽을 수가 있다. 특히 아침이나 저녁에 들리는 ‘귀신소리’가 공포 분위기를 증폭시키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더 커진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곳이 소리꾼이나 무당의 집터로는 명당인가?

    소리를 하거나 귀신을 불러내는 것은 냉철한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약간은 술에 취한 듯한 분위기에서 가능하다. 결국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소란스러움 속에서 자아도취에 빠져야 하기 때문에 무당이나 소리꾼들은 그러한 곳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세종이 특히 ‘귀신 울음소리(귀곡성)’를 잘한 이유도 바로 이런 땅의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가끔 소리하는 사람들이 강변이나 폭포 아래에서 연습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치에서다.



    실전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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