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78

2023.02.24

美·日, 남중국해 연합전선 구축 中 옥죈다

필리핀·인도네시아와 잇단 군사협정… 쿼드와 공동 군사훈련도 추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02-2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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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북나투나 해역을 살펴보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궁]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북나투나 해역을 살펴보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궁]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 베트남명 쯔엉사군도, 필리핀명 칼라얀군도)에는 48개 섬을 비롯해 각종 암초와 산호초, 모래톱이 있다(지도 참조). 그런데 이 중 모래톱인 세컨드 토머스 숄(second thomas shoal: 중국명 런아이자오, 필리핀명 아융인)을 놓고 중국과 필리핀이 치열하게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모래톱은 얕은 바다에 모래가 퇴적돼 만들어진 일종의 모래 둔덕이다. 길이 15㎞, 너비 5㎞인 세컨드 토머스 숄의 한 귀퉁이에는 필리핀 상륙함 시에라 마드레호가 1999년 좌초된 채 정박해 있다. 당시 필리핀 정부는 이 함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해병대원 12명을 상주시켰다. 필리핀 정부는 이 모래톱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어 군 병력을 배치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 정부는 그동안 필리핀 정부가 못 쓰게 된 함정을 자국 영토에 위치한 이 모래톱에 보내 고의적으로 좌초시켰다며 철거할 것을 요구해왔다. 특히 중국 정부는 해군 함정과 해경선 등을 동원해 필리핀 해병대원들에게 식품과 보급품을 전달하려는 필리핀 함정이나 민간 선박을 방해했다. 급기야 중국 해경선이 2월 6일 세컨드 토마스 숄에 보급품을 실어 나르던 필리핀 해안경비대 순시선을 향해 군사용 레이저를 발사하자 필리핀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시 필리핀 함정에 타고 있던 승조원 일부는 강력한 레이저 불빛으로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기도 했다.

    세컨드 토머스 숄 놓고 中·필리핀 또다시 충돌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오른쪽)이 황시롄 주필리핀 중국대사에게 중국 해경선의 레이저 공격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필리핀 대통령궁]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오른쪽)이 황시롄 주필리핀 중국대사에게 중국 해경선의 레이저 공격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필리핀 대통령궁]

    이 사건이 발생하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2월 15일 황시롄 주필리핀 중국대사를 직접 대통령궁으로 불러 항의했다.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황 대사에게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해안경비대와 어부들을 노린 중국의 적대적 행위가 늘어나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 문제가 발생하면 통상 외교부 고위 관료가 자국 주재 상대국 대사를 불러 항의하는데,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필리핀 정부는 “중국이 군사용 레이저를 의도적으로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은 “우리 해역에 필리핀 선박이 침입해 적법한 대응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국은 2021년 11월에도 이 지역에서 충돌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 해경선은 “우리 영토에 무단 침입했다”며 필리핀 물자 보급선에 물대포를 쏘며 모래톱 접근을 막았다. 중국이 당시보다 더욱 과격하게 레이저로 조사(照射)까지 한 것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반중(反中) 정책에 경고를 보내려는 의도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 필리핀을 철권통치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친중파였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는 달리 미국·일본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2월 9일 일본 도쿄를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준(準)군사동맹인 ‘원활화 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RAA)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RAA는 양국 군대가 상대국에 입국할 때 비자를 면제받고 무기와 탄약을 쉽게 반입할 수 있게 한 조약이다. 이 협정을 맺을 경우 함정이나 전투기가 상대국에 쉽게 들어갈 수 있어 대규모 군사훈련이 용이하고, 유사 시 상호 파병도 가능하다. 일본은 현재 호주·영국과 RAA를 맺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과 필리핀은 앞으로 공동 군사훈련을 대폭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동·남중국해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으며 힘이나 위압을 포함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에 강하게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갈등 종결

    중국, 베트남, 필리핀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 [동아DB]

    중국, 베트남, 필리핀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 [동아DB]

    필리핀은 또 미국과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에 따라 자국 군사기지 4곳을 미군에 추가 제공하기로 했다. 칼리토 갈베즈 필리핀 국방장관은 2월 2일 자국을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 이 협정에 따라 양국은 합동 군사훈련, 장비 사전 배치, 활주로와 연료 저장고 사용, 군용 주택 같은 시설 건설 등을 위해 미군이 필리핀 군사기지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미군은 지금까지 필리핀에서 공군기지 4곳과 육군기지 1곳 등 군사기지 5곳을 운영하면서 병력을 순환 배치해왔다. 이번에 양국이 4곳을 추가하기로 합의하면서 미군이 사용하는 군사기지는 모두 9곳이 됐다. 추가 군사기지는 대만과 가까운 필리핀 북부 루손섬,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지역인 스프래틀리 제도와 가까운 팔라완섬이 될 전망이다. 그레고리 폴링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남아시아 담당 연구원은 “대만이나 남중국해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합의”라고 평가했다.

    인도네시아도 필리핀처럼 반중 노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북나투나해’라고 부르는 남중국해를 놓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섬 북서쪽과 남중국해 남부에 걸친 북나투나해는 어족이 풍부해 ‘황금 어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게다가 해저에는 천연가스전도 있다. 이 해역은 인도네시아의 EEZ 내이지만 중국이 주장하는 이른바 ‘남해 9단선(南海九段線)’과 상당 부분 겹친다. 남해 9단선은 중국 정부가 남중국해 해역과 해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그은 U자 형태의 9개 가상선으로, 남중국해 전체의 90%에 해당한다. 남중국해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이 대규모로 매장돼 있고 연간 해상물동량도 3조4000억 달러(약 4426조 원)에 달하는 전략 요충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7년 7월 나투나 제도 주변 해역을 북나투나해로 명명한 데 이어 구축함·전투기를 배치하고 새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등 영유권을 강화해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또 이 해역에 침입하는 중국 불법조업 어선들을 나포해 침몰시키기도 했다. 이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은 연간 5000여 척이나 된다. 반면 중국 정부는 북나투나해라는 이름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면서 이 해역은 자국의 전통적인 어장이기 때문에 자국 어선들이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활동을 해왔다고 주장하며, 해경선은 물론 해군 함정까지 동원해 자국 어선들을 보호해왔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베트남과 EEZ 협상을 타결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월 말 응우옌 쑤언 푹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최대 현안이던 EEZ 획정에 합의했다. 양국의 협력은 미국과 일본의 중재로 성사됐다. 이에 따라 양국은 남중국해를 자국 바다라고 주장하는 중국에 한목소리로 맞설 수 있게 됐다.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 연안국들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9월 필리핀과 해양 안보 강화를 위한 방위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양국은 테러 대응과 국경 관리 등 안보 분야는 물론 에너지, 해상 개발, 교육, 보건 등 분야에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상반기 중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도 나투나 제도 인근 해역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이뤄진 인도·태평양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 공동 군사훈련도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미국과 일본의 반중 연대에 적극 동참하는 이유는 중국이 인공섬을 군사기지로 만드는 등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지난해 8월 수마트라섬과 칼리만탄섬에서 미국,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이 참여한 가운데 ‘슈퍼 가루다 실드(Super Garuda Shield)’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슈퍼 가루다 실드는 미국과 인도네시아가 중국을 압박할 목적으로 실시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이다. 일본은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올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순회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를 옵서버로 초청하는 등 전략적 협력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美·日 친중 행보 태국과도 관계 개선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해 6월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함께 태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해 6월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함께 태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미국과 일본은 친중 행보를 보여온 태국과도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2014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태국과 거리를 둬왔다. 미국은 태국과 함께 공동 주관해온 다국적 연합군사훈련인 ‘코브라 골드(Cobra Gold)’를 올해부터 다시 기존과 동일하게 대규모로 진행한다. 이 훈련은 2월 28일부터 3월 10일까지 실시되는데 미국,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등 7개국이 참가한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지난해 11월 태국을 방문해 쁘라윳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협력 등 양국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일본은 태국의 최대 투자국이다.

    미국과 일본이 이처럼 남중국해 연안국들을 적극 포용하려는 의도는 반중 연대를 통해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을 옥죄려는 미국과 일본의 합동 전략이 앞으로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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