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서’는 경선흥행 보증수표?](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6/12/13/200612130500010_1.jpg)
하지만 한나라당은 오히려 이 풍요로운 자산 때문에 고민이다.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두 후보의 신경전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네거티브형 공세가 일고 있기 때문. 탈당과 경선 거부 같은 각종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판이 깨질 것 같은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소속 의원 44% “경선 불참 및 불복” 우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불안감이 피부에 와닿는다. 10월 말 한 인터넷 언론은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한 한나라당의 선결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당 소속의원 중 44%가 ‘유력 대선주자들의 경선 불참 및 불복’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선에 대한 의원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 같은 당내 상황을 지켜보던 한나라당 원로들이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김수한, 박관용 전 의장과 양정규 전 부총재 등 당 원로 10여 명이 대선후보들의 경선 이탈을 막는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것.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당의 ‘허리’로 활동하던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도 경선 불참 및 탈당, 네거티브 선거전 같은 후보들의 분열 양상이다. 당 원로들은 후보들이 분열의 길로 들어설 경우 대선 승리는 물 건너간다고 보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빠짐없이 경선에 참여하고, 또 그 결과에 승복해야만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원로들은 ‘끝까지 경선에 참여하고 경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대선주자들의 대국민 약속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양 전 부총재의 설명이다.
“선거법 52조에 따라 대선후보들의 경선 불복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경선 불참과 탈당은 가능하다. 당 원로들은 당의 모든 후보가 끝까지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정권교체를 이루려면 한나라당의 모든 대선후보들이 경선에 참여해야 하고,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선거를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1997년)처럼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뛰쳐나가면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모색했다는 후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각서 또는 서약서를 쓰는 것. 경선 거부 및 탈당과 관련한 불안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유력 대선후보들이 국민을 상대로 경선 약속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양 전 부총재는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로 논의됐지만 결정된 바는 아니다”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원로 모임의 한 관계자 A씨는 “서약서를 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니겠느냐”며 “이런 쪽으로 해법이 모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약서’는 경선흥행 보증수표?](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6/12/13/200612130500010_2.jpg)
11월3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희망모임 창립 기념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한나라당의 공정한 대선경선,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원로들이 들고 나온 서약서는 100% 성공적인 경선을 위한 최상의 솔루션이란 평가를 받는다. 대국민 약속을 해놓고 뛰쳐나갈 후보는 없기 때문이다. 설사 뛰쳐나가더라도 국민이 외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후보 진영도 적극적 반응
각 후보진영도 각서 또는 서약서를 쓰는 문제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한 대선 캠프의 관계자는 “서약서 쓰기를 거부하면 경선 불복을 하겠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를 어떻게 거부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의 박영준 정무특보는 “이 전 시장은 시종일관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면 어떤 합의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 전 시장의 캠프 측에서는 서약서가 공개될 경우 경선 거부 및 탈당 등에 대한 각종 루머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박 전 대표 측도 비슷한 입장이다. 신동철 공보특보는 “박 전 대표는 오늘의 한나라당을 있게 한 장본인”이라며 “당을 버리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약서를 잘 활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서약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대국민 약속 성격의 서약서를 쓰더라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선후보들이 수용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당 주변에서는 그 구체적인 예로 당심(黨心)과 민심(民心)이 갈릴 경우를 들고 있다.
현행 한나라당의 경선 시스템으로는 당심의 지지가 높은 후보가 국민 지지율이 높은 후보를 꺾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국민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결과를 수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계개편 정국을 타고 이회창 전 총재를 비롯해 3김(金)이 돌아와 정치지형을 뒤흔들 경우, 또 대형 비리사건이나 도덕적 문제가 제기돼 당 및 후보의 인기가 급락할 경우에도 후보들이 한눈을 팔 수 있다.
당내에서는 대선주자들의 서약서가 몰고 올 역풍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자칫 정치적 야합이라는 부메랑을 부를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단국대 정용석 명예교수는 12월7일 “대선후보들이 자발적으로 서약서 또는 각서를 쓰도록 유도하는 것은 경선 불복 및 거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도 “이를 국민과의 약속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당 원로들은 대선후보들의 대국민 약속 문제를 당분간 비공개로 논의할 방침이다. 반면 대선후보들에게 이런 입장을 전달할 때는 공개적으로 할 계획이다. 당 원로들은 이르면 내년 초에 자신들의 이런 입장을 대선후보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대선을 향한 한나라당의 발걸음이 열린우리당에 비해 한발 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