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의 극장가는 장진 대 장진의 싸움이다. 그가 각본을 쓰고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은 관객 수 300만을 넘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고, 뒤이어 개봉한 그의 연출작 ‘박수칠 때 떠나라’는 2위를 기록하며 무서운 흥행몰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그의 각본과 연출로 먼저 연극으로 공연됐다.
11년 전 그가 연극학과 학생이었을 때, 나는 그 학교에서 시를 강의하던 강사였다. 그해 그는 그 학교 문학상을 받았다. 문예창작과 학생이 아닌 다른 과 학생이 수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1995년 1월1일 아침 신문에서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의 희곡 ‘천호동 구사거리’를 읽었다.
사실 장진은 그전에 TV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할리우드 통신이라는 걸 진행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분명 한강 둔치인데 레인코트를 입고 나와서는 시치미 뚝 떼고 LA의 가을이 서늘하다며 방금 줄리아 로버츠를 만나고 왔다고 사기를 쳤다. 전혀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웃음을 유발하는 일종의 상황 코미디였다.
TV의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가 단편영화를 찍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장편영화 감독이 되어 시사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장진의 영화감독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은 그러나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 다음 작품 ‘간첩 리철진’ ‘ 킬러들의 수다’, 그리고 지난해 나온 ‘아는 여자’까지 그의 영화들 중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은 없다.
이전 작품들 상업적 실패 ‘쓴맛’ … 자신만의 개성 심는 데는 성공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모두 장진 영화라고 부를 만한 독특한 개성으로 포장되어 있다. ‘기막힌 사내들’에서는 뮤지컬 형식이나 미술관 퍼포먼스 등을 도입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고, ‘간첩 리철진’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뒤집으며 어수룩한 간첩이라는 설정으로 웃음을 이끌어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원빈이 가슴 저리게 사랑 고백을 하는데 그의 형들은 킥킥 거리며 웃음을 참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의 부조화야말로 장진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2004년 부산영화제 기간 중 열린 부산 영평상 시상식에서 나는 사회자로 장진을 만났다. 그전에 장진 사단이 제작한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너무 호되게 비평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는 게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당연한 비판이었다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웰컴 투 동막골’ 시사회에서 다시 만났다.
“‘웰컴 투 동막골’의 목표는 대한민국 1등 영화다. 연극에서 못했던 부분은 박광현 감독의 상상력과 재능으로 아주 잘 표현되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 연출료 받아서 동막골에 쏟아부었는데 처음 50억5000만원으로 기획했던 작품이 결국 58억5000만원 들었다. 군소 영화사에서 7, 8억이 오버된 것은 굉장히 큰일이다.”
일주일 뒤 ‘박수칠 때 떠나라’ 시사회가 있었고, 나는 그 며칠 뒤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박수칠 때 떠나라’에 대한 불만부터 털어놓았다. 미모의 여자 카피라이터가 호텔방에서 칼에 찔려 발견된 살인사건을 수사해가는 미스터리 수사극이지만, 그것이 동시에 TV쇼로 제작되어 생중계된다는 설정이 ‘장진스러운’ 영화였다. 그러나 생방송 TV쇼라는 설정은 처음뿐이고 전체를 관장하며 주제의 깊이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트루먼쇼’에서와 같은 미디어에 대한 비판도 없고, 훔쳐보기 같은 본능적 유혹이 깊이 있게 탐색된 것도 아니었다.
“편집하면서 생방송 쇼 부분을 많이 잘랐다. 방송 코드를 너무 희화해서 풀었고, 또 후반부의 진중한 드라마가 보호받으려면 쇼를 절제해야 했다. 그래서 ‘수사를 방송으로 생중계하고, 그것을 시청자가 보고 있다는 것은 설정으로만 두기로 했다.
아이디어 떠오르면 연극 각본·영화 각본 따로 써
영화 초반,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 차승원과 현장에서 붙잡힌 용의자 신하균의 대결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수사가 진행되는 방 한쪽은 블랙유리로 되어 있고 그 안쪽에 부장검사와 방송국 국장이 모니터를 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되고, 그것을 관객들은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진실을 에워싼 여러 겹의 관음적 시선들은 그러나 신선함을 만들려는 극적 장치에 그친다. 나는 그게 아쉬웠다.
“타자적 심리에서 관찰하면 진실에서 멀어진다. 그게 미디어에서 대중과의 가장 난폭한 만남이다.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향해서 쫓아가고, 미디어는 그것을 쫓아가고, 관객은 그것을 다시 쫓아간다. 그런 진행에서 방송은 작은 오브제를 차용한 것에 불과한데 너무 커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생방송 수사쇼는 이미 설정 자체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편적 관념을 뒤집는 신선한 발상,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독특함이 누구보다 탁월한 장진은, 분명히 한국 문화계의 보물이다. 내 불만은, 이렇게 희귀한 재능을 가진 장진의 작품은 늘 소재의 신선함에 주제의 깊이가 치인다는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종결 부분에서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마지막 신하균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근친 코드에 대한 여백을 두기 위해서였다. 영화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관객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은 무책임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하고 그 도착점을 이야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면 대중영화에서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극이나 영화로 분리해서 각본을 쓴다.
“내 연극을 더 이상 영화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연극할 때부터 영화적 발상이었고, ‘웰컴 투 동막골’은 영화적으로 먼저 기획했던 줄거리다.”
감독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나 역시 배우 출신이었다는 것이다(물론 캐스팅 제의를 은근히 바라고서다). 내가 에드워드 올비의 2인극 ‘동물원 이야기’에서 제리 역을 했었다고 하자, 장진 역시 대학시절 그 역을 했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소외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동물원 이야기’의 제리 역은 상당한 연기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무려 10여분 동안 혼자 긴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장면도 있다. 우리는 마음이 맞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지금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하고 있다. 서울예대 동문들끼리 하는 연극이다. 전무송·박상원 등이 캐스팅되어 있으며, 9월 말 공연한다.
“마흔 넘어서 상업영화 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극단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중들과 치열하게 부딪쳐야 하는데, 내 시작이 순수문학 쪽이다 보니 계속 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가능한 한 늦게 회개하기를 바란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회개는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의 성공으로 상당 기간 늦춰질 것이다. 그의 다음 영화는 이른바 호남 누아르, ‘거룩한 계보’다. 여수 순천 지역의 칼잡이들 이야기다. 아주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올겨울부터 2005년 4월까지 촬영해서 여름에 개봉할 계획이다.
11년 전 그가 연극학과 학생이었을 때, 나는 그 학교에서 시를 강의하던 강사였다. 그해 그는 그 학교 문학상을 받았다. 문예창작과 학생이 아닌 다른 과 학생이 수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1995년 1월1일 아침 신문에서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의 희곡 ‘천호동 구사거리’를 읽었다.
사실 장진은 그전에 TV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할리우드 통신이라는 걸 진행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분명 한강 둔치인데 레인코트를 입고 나와서는 시치미 뚝 떼고 LA의 가을이 서늘하다며 방금 줄리아 로버츠를 만나고 왔다고 사기를 쳤다. 전혀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웃음을 유발하는 일종의 상황 코미디였다.
TV의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가 단편영화를 찍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장편영화 감독이 되어 시사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장진의 영화감독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은 그러나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그 다음 작품 ‘간첩 리철진’ ‘ 킬러들의 수다’, 그리고 지난해 나온 ‘아는 여자’까지 그의 영화들 중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은 없다.
이전 작품들 상업적 실패 ‘쓴맛’ … 자신만의 개성 심는 데는 성공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모두 장진 영화라고 부를 만한 독특한 개성으로 포장되어 있다. ‘기막힌 사내들’에서는 뮤지컬 형식이나 미술관 퍼포먼스 등을 도입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고, ‘간첩 리철진’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뒤집으며 어수룩한 간첩이라는 설정으로 웃음을 이끌어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원빈이 가슴 저리게 사랑 고백을 하는데 그의 형들은 킥킥 거리며 웃음을 참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의 부조화야말로 장진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2004년 부산영화제 기간 중 열린 부산 영평상 시상식에서 나는 사회자로 장진을 만났다. 그전에 장진 사단이 제작한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너무 호되게 비평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는 게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당연한 비판이었다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웰컴 투 동막골’ 시사회에서 다시 만났다.
영화 ‘킬러들의 수다’(위)와 ‘`박수칠 때 떠나라`’.
일주일 뒤 ‘박수칠 때 떠나라’ 시사회가 있었고, 나는 그 며칠 뒤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박수칠 때 떠나라’에 대한 불만부터 털어놓았다. 미모의 여자 카피라이터가 호텔방에서 칼에 찔려 발견된 살인사건을 수사해가는 미스터리 수사극이지만, 그것이 동시에 TV쇼로 제작되어 생중계된다는 설정이 ‘장진스러운’ 영화였다. 그러나 생방송 TV쇼라는 설정은 처음뿐이고 전체를 관장하며 주제의 깊이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트루먼쇼’에서와 같은 미디어에 대한 비판도 없고, 훔쳐보기 같은 본능적 유혹이 깊이 있게 탐색된 것도 아니었다.
“편집하면서 생방송 쇼 부분을 많이 잘랐다. 방송 코드를 너무 희화해서 풀었고, 또 후반부의 진중한 드라마가 보호받으려면 쇼를 절제해야 했다. 그래서 ‘수사를 방송으로 생중계하고, 그것을 시청자가 보고 있다는 것은 설정으로만 두기로 했다.
아이디어 떠오르면 연극 각본·영화 각본 따로 써
영화 초반,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 차승원과 현장에서 붙잡힌 용의자 신하균의 대결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수사가 진행되는 방 한쪽은 블랙유리로 되어 있고 그 안쪽에 부장검사와 방송국 국장이 모니터를 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되고, 그것을 관객들은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진실을 에워싼 여러 겹의 관음적 시선들은 그러나 신선함을 만들려는 극적 장치에 그친다. 나는 그게 아쉬웠다.
“타자적 심리에서 관찰하면 진실에서 멀어진다. 그게 미디어에서 대중과의 가장 난폭한 만남이다.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향해서 쫓아가고, 미디어는 그것을 쫓아가고, 관객은 그것을 다시 쫓아간다. 그런 진행에서 방송은 작은 오브제를 차용한 것에 불과한데 너무 커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생방송 수사쇼는 이미 설정 자체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편적 관념을 뒤집는 신선한 발상,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독특함이 누구보다 탁월한 장진은, 분명히 한국 문화계의 보물이다. 내 불만은, 이렇게 희귀한 재능을 가진 장진의 작품은 늘 소재의 신선함에 주제의 깊이가 치인다는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종결 부분에서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마지막 신하균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근친 코드에 대한 여백을 두기 위해서였다. 영화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관객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은 무책임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상상을 하고 그 도착점을 이야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면 대중영화에서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연극이나 영화로 분리해서 각본을 쓴다.
“내 연극을 더 이상 영화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연극할 때부터 영화적 발상이었고, ‘웰컴 투 동막골’은 영화적으로 먼저 기획했던 줄거리다.”
감독들과 인터뷰할 때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나 역시 배우 출신이었다는 것이다(물론 캐스팅 제의를 은근히 바라고서다). 내가 에드워드 올비의 2인극 ‘동물원 이야기’에서 제리 역을 했었다고 하자, 장진 역시 대학시절 그 역을 했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소외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동물원 이야기’의 제리 역은 상당한 연기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무려 10여분 동안 혼자 긴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장면도 있다. 우리는 마음이 맞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지금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출하고 있다. 서울예대 동문들끼리 하는 연극이다. 전무송·박상원 등이 캐스팅되어 있으며, 9월 말 공연한다.
“마흔 넘어서 상업영화 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극단적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대중들과 치열하게 부딪쳐야 하는데, 내 시작이 순수문학 쪽이다 보니 계속 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가능한 한 늦게 회개하기를 바란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회개는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의 성공으로 상당 기간 늦춰질 것이다. 그의 다음 영화는 이른바 호남 누아르, ‘거룩한 계보’다. 여수 순천 지역의 칼잡이들 이야기다. 아주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올겨울부터 2005년 4월까지 촬영해서 여름에 개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