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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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둘로 쪼개지다

가자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수 ‘후폭풍’ … 정치인부터 병사들까지 찬반세력 갈려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5-08-25 18: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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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선 광복 60주년을 맞이해 국민화합과 단결을 다짐하는 행사로 떠들썩하던 8월15일, 이스라엘에선 지난 2년간 국론을 둘로 분열시키며 우파와 좌파의 첨예한 대립을 낳았던 ‘가자지구 철수’ 작전이 드디어 실행에 들어갔다. 가자 철수 시한이 임박했던 지난 수주간 이스라엘의 거리는 온통 오렌지색과 파란색으로 물결쳤다. 가자 철수에 반대하는 세력은 오렌지색의 리본·티셔츠·모자·깃발을 착용하고, 찬성하는 세력은 파란색으로 무장하여 각각 대규모 집회와 그에 대한 반대집회를 연일 벌였던 까닭이다.

    15일 자정 IDF(이스라엘 방위군)가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를 봉쇄함으로써 시작된 가자지구 철수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이스라엘 국내외 900여명의 취재진은 전 세계가 이 사건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지를 보여주었다. 대체 가자 철수가 무엇이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계를 11년 전인 1994년으로 돌려보자.

    샤론 총리, 자신이 만든 정착촌 이번엔 철수

    1993년 체결된 오슬로 협정의 결과로 팔레스타인은 67년 3차 중동전쟁 이래 IDF가 점령하고 있던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요단강 서안) 일부를 양도받아 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염원을 실현할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 이후 5년 이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오슬로 협정에서 미뤄두었던 사안을 협상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 실패로 끝나면서 이에 실망한 팔레스타인 민중은 2000년 9월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를 일으켰고, IDF가 테러방지의 명분으로 가자지구를 재점령함으로써 이-팔 간 평화협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따라서 이번 가자지구 철수는 지난 5년간의 대치정국을 94년 상황으로 되돌리는 셈이 된다. 그러나 10여년 전과 다른 중요한 점은 이번에는 IDF의 철수뿐 아니라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철거도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번 철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1970년대에 시작됐다. 이 작업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현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이다. 따라서 샤론 총리는 ‘정착촌의 대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당시 정착촌으로 이주한 사람들 대부분은 구약성서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유대교인들이었다. 이들은 가나안(구약에서 언급하는 팔레스타인 영토)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고 적의에 찬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자지구로 들어가 땅을 개간하고 정착했다. 당연히 자신들의 피땀으로 일군 터전에서 쫓겨나는 데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고, 더욱이 자신들을 그 땅으로 들여보낸 장본인인 샤론 총리에 의해 쫓겨난다는 점에서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샤론 총리는 15일 가자 철수작전이 개시되기 직전 행한 대국민연설에서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자지구를 영원히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희망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 지역을 둘러싼 정치질서와 국제환경의 변화로 이제 가자지구를 반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역설했다. 오슬로 협정은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 지역을 팔레스타인에게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은 당시 반환 지역에서 빠져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팔레스타인에게 반환돼야 한다. 2차 인티파다 발발 후 지난 5년간 이 지역에서만 수백명의 민간인과 군병력이 희생됐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에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가 있으니 이를 보호하기 위한 군병력이 투입되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의 충돌로 많은 인명이 희생된 것. 또 자녀를 많이 낳는 종교인들의 특성은 정착촌의 자연적 확대를 불러왔고, 주택을 비롯한 기반시설 건설에 해마다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실정이었다. 언젠가 돌려주어야 할 미래 없는 땅에 불필요한 인력과 경제력의 낭비는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하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군과 경찰병력 5만3000명이 투입된 이번 철수는 가자지구 21개, 웨스트 뱅크 4개 정착촌에서 이루어진다. 철수작전이 시작된 15~16일 이틀 동안 이스라엘 정부는 정착민들의 자진 이주를 권유했고, 이 기간 동안 이주한 정착민들은 국가가 정하는 보상금을 전액 지급받게 된다(상자기사 참조). 이때 가자지구 전체 1500여 가구 중 절반이 조금 넘는 800여 가구가 자진 이주했다. 17일부터는 강제이주가 이뤄졌다. 가자지구로의 진입로가 봉쇄되기 전 철수에 반대하는 극우파 5000명가량이 이미 가자지구로 진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대부분이 부양가족이 없는 젊은이기 때문에 극렬 저항이 예상됐고, 일부는 무장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산발적인 저항은 있었지만 큰 충돌 없이 철수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충돌의 불씨는 여전히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민간인의 철수가 끝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착민 산발 저항 … 큰 충돌은 없어

    군 관계자들은 9월4일 정도면 민간인의 철수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후 군병력이 들어가 비어 있는 정착촌 내의 주택 및 건물을 철거할 예정이다. 이 작업에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의 공격은 또 다른 골칫거리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하마스로부터 철수 기간 중 무장투쟁을 감행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무력투쟁으로 가자 철수를 이루어냈다는 이미지를 강력히 원하는 하마스가 민간인 철수가 완료된 뒤 태도를 어떻게 바꿀지는 미지수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7500명의 병력을 자치지역 주변에 배치했다.

    이번 가자 철수로 이스라엘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심각한 국론 분열이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는 ‘마치 이스라엘 내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하나는 국가권력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고, 다른 하나는 극우파 랍비들에 의해 통치되는 정착촌 국가다. 지난 4개월간 철수반대 시위로 체포된 사람의 수는 2000여명에 달한다. 정치권 또한 둘로 나뉘었고, 샤론 총리가 속한 리쿠드 당내에서조차 반대파들이 내각과 당직을 사퇴하는 일이 속출했다. 현 내각의 재무장관이자 차기 리쿠드 당의 강력한 대선주자 후보인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철수를 반대하며 장관직을 사퇴한 것이 대표적이다.

    장관·리쿠드 당직자들 줄 사퇴

    IDF는 이번 가자 철수가 남긴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됐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대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특히 국민개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라면 이 원칙은 더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가 젊은이들의 자유를 강제로 몇 년간 억제할 수 있는 명분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가자 철수로 IDF는 적군이 아닌 자국민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이런 목적으로 군대를 이용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IDF는 이스라엘에서 국민통합의 상징이었다. 빈부의 격차, 사회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남녀 모두 의무복무를 함으로써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개병제를 시행하는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국민통합의 상징인 군대가 앞장서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구실을 맡게 된 데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더 심각한 문제는 IDF 내 병사들의 분열이다. 지난 인티파다 기간 중 좌파 성향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억압하는 작전 거부로 처벌받았다면, 이번에는 우파 성향의 병사들이 정착촌 철수에 반대하며 작전을 거부해 처벌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들 병사 가운데는 정착촌이 집이거나 정착촌에 가족이나 친지가 살고 있는 경우도 상당수다. 각급 지휘관들을 이 같은 사정을 참작해 병력을 배치했음에도 이번 작전 거부로 군사재판에 회부된 병사가 10여명을 넘어섰고 장교도 3명에 이른다.

    이-팔 간 평화 진전을 위해 이번 가자지구 철수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이는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와 한 약속이기도 하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이스라엘 사회는 정치·사회·종교적으로 분열되는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겪고 치유해야 하는 고통이다. 더욱이 이번 가자 철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앞으로 웨스트 뱅크 내의 더 많은 정착촌들을 팔레스타인에 반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분열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이 분열의 골을 어떻게 메우는지가 현재 이스라엘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이번 이스라엘의 사례는 대북관계를 두고 좌우로 갈려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 또한 적지 않다. 미래의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이 겪는 몸살과 또 이것이 치유되는 과정을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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