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에서 땅콩, 즉 ‘작은 거인’들의 반란이 계속되고 있다.
8월1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막을 내린 2005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00m에서 10초93의 기록으로 우승한 로린 윌리엄스(미국)는 키가 157cm밖에 안 된다. 육상 단거리는 스트라이드(보폭)와 피치(걸음 수)로 결판이 나는데, 키가 작은 선수들은 짧은 스트라이드를 만회하기 위해 엄청나게 빠른 피치를 구사해야 한다. 윌리엄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피치로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해냈다.
축구·육상·골프·탁구 등 종목 불문
여자 100m에서는 윌리엄스뿐 아니라 10초95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한 베로니카 켐벨(자메이카)이 163cm이고, 4위의 챈드라 스투럽(바하마)도 159cm에 불과하다. 그리고 남자 100m에서 10초05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한 마이클 프레터(자메이카)도 170cm의 단신이다. 비록 다리는 짧지만 그에 맞는 기술과 체력을 기른다면 신체적 제약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육상 단거리에서는 ‘키가 작은 선수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실제로 역대 육상 단거리 스타들 가운데 칼 루이스, 모리스 그린,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여) 등은 모두 180cm가 넘는 장신이다.
7월 말 미국 여자프로골프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한 장정도 단신을 극복한 경우다. 장정은 키가 153cm다. 키가 작아서 드라이브 비거리도 245야드밖에 안 나갔다. 워낙 거리가 짧아 ‘파 4홀’에서는 특히 불리했다.
그러나 장정은 지난겨울 혹독한 훈련을 거쳐 파워를 기른 결과 255야드를 넘길 수 있었다. 이는 정상급 선수인 아니카 소렌스탐은 물론 15세 소녀 미셸 위보다 15야드나 뒤지는 거리지만, 그린 주변에서의 숏 게임과 정교한 퍼팅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다.
7월 말 2000만 유로(약 360억원)의 이적료로 브라질 산토스FC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옮겨간 브라질 축구 유망주 호빙요는 키 173cm, 몸무게 61kg에 불과하다. 신체 조건이 불리함에도 그는 현란한 드리블과 정확한 킥으로 ‘펠레의 후계자’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 평가받는다. 펠레의 소속팀이던 산토스FC 출신인데다 신체조건과 플레이 스타일이 펠레와 비슷하다는 게 축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축구 사상 기술이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는 프레디 아두도 키가 173cm밖에 안 된다. 아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인터 밀란(이탈리아), 바르셀로나(스페인) 등 세계 명문 클럽들로부터 꾸준히 영입 제의를 받아왔다.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슨 퍼거슨 감독은 핀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U-17)축구선수권대회에서 본 아두의 천재적인 플레이에 반해 그의 어머니와 전 코치인 아널드 트레지가를 만나기도 했다.
만일 그때 아두가 입단했다면 박지성보다 1년 앞서 맨체스터 유니폼을 입었을 것이다. 아두는 흑인 특유의 유연한 몸놀림과 현란한 개인기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축구계에서 차세대 축구 스타로 자리 잡았다. 아두는 2002년 ‘뉴스위크’가 선정한 ‘2003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도 일찌감치 100만 달러의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그의 재능을 인정했다. 아두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U-17)대회 한국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데 이어 시에라리온과의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터뜨리는 등 세계 축구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약체로 평가되던 미국을 대회 4강까지 끌어올렸다.
미국은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도 키 작은 선수들 덕분에 16강까지 올랐다. 당시 미국의 주축 선수는 170cm에 몸무게 57kg인 다마커스 비즐리, 170cm의 코비 존스, 172cm의 조시 울프 같은 ‘땅꼬마’들이었다. 한국은 당시 미국에 선제골을 내준 뒤 후반 안정환의 골로 1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들 꼬마 삼총사는 지금도 미국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핵심이다.
148cm 다니 료코 ‘대표적 작은 거인’
일본의 탁구천재 14세 후쿠하라 아이는 153cm의 깜찍한 외모만큼이나 천부적인 라켓 기술을 뽐내면서 일본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별명도 ‘아이짱’이다. 후쿠하라는 3세 때부터 탁구를 시작했고, 겨우 10세 4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프로입문 기록을 세웠으며, 이듬해 최연소(11세 7개월)로 국가 대표에 발탁된 데 이어 지난해 전(全)일본선수권 여자복식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키 작은 선수로는 일본의 여자 유도 영웅 다니 료코를 빼놓을 수 없다. 다니(북한의 계순희와 라이벌이던 다무라 료코가 결혼하면서 성이 다니로 바뀌었다)는 148cm의 키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6연패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두 차례나 차지한 일본 여자 유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다니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1993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세계여자유도 48kg급의 최강자로 군림했으나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북한의 계순희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내리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의 강타자 다니 요시토모와 2003년 12월에 결혼, 성이 다니로 바뀌었다. 다니는 내년 2월 출산 예정이어서 9월 이집트에서 열리는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한국 선수 가운데는 키 173.7cm, 허리둘레 29인치, 발 크기 265mm로 프로농구 선수로서는 누가 봐도 작은 울산 모비스의 김태진 선수가 돋보인다. 키가 커야 유리한 프로농구에서 최단신 선수로 기록된 김태진은 용병들이나 서장훈, 김주성 등 키 큰 센터들의 턱밑에 머리끝이 간신히 닿는 것은 물론 치어리더들 틈에 끼어도 신장의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작지만 강하다. 용병들을 농락하며 레이업슛을 넣는가 하면 3점 슛도 펑펑 터뜨린다. 순식간에 상대의 공을 가로채는 그의 몸놀림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김태진은 서울 행당초등학교 4학년 때, 자기보다 족히 한 뼘 반은 큰 아이들이 대부분인 농구부에 찾아갔다. “농구 하러 왔는데요”라고 말을 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감독은 “네가? 그 키로? 이놈 돌아가라!”며 면박을 주었다. 김태진은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농구공을 놓지 않았다. 배재중·고를 다닐 때도 작은 키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실력은 자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1cm라도 더 큰 동료들에게 출전 기회가 돌아갈 때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김태진은 작은 키 때문에 군대에 가서도 고생했다. 98년 김병철(당시 대구 동양), 김희선(당시 서울 삼성) 등과 함께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다른 동기들은 조교가 농구선수인 줄 알아보고 힘든 훈련은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김태진은 일반 훈련병들과 똑같이 연병장에서 땀을 쏟아내야 했다. 뒤늦게 농구선수라는 사실을 안 소대장의 한마디. “너도 농구선수였니?” 김태진은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8월1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막을 내린 2005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00m에서 10초93의 기록으로 우승한 로린 윌리엄스(미국)는 키가 157cm밖에 안 된다. 육상 단거리는 스트라이드(보폭)와 피치(걸음 수)로 결판이 나는데, 키가 작은 선수들은 짧은 스트라이드를 만회하기 위해 엄청나게 빠른 피치를 구사해야 한다. 윌리엄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피치로 단신의 핸디캡을 극복해냈다.
축구·육상·골프·탁구 등 종목 불문
여자 100m에서는 윌리엄스뿐 아니라 10초95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한 베로니카 켐벨(자메이카)이 163cm이고, 4위의 챈드라 스투럽(바하마)도 159cm에 불과하다. 그리고 남자 100m에서 10초05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한 마이클 프레터(자메이카)도 170cm의 단신이다. 비록 다리는 짧지만 그에 맞는 기술과 체력을 기른다면 신체적 제약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육상 단거리에서는 ‘키가 작은 선수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실제로 역대 육상 단거리 스타들 가운데 칼 루이스, 모리스 그린,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여) 등은 모두 180cm가 넘는 장신이다.
7월 말 미국 여자프로골프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한 장정도 단신을 극복한 경우다. 장정은 키가 153cm다. 키가 작아서 드라이브 비거리도 245야드밖에 안 나갔다. 워낙 거리가 짧아 ‘파 4홀’에서는 특히 불리했다.
그러나 장정은 지난겨울 혹독한 훈련을 거쳐 파워를 기른 결과 255야드를 넘길 수 있었다. 이는 정상급 선수인 아니카 소렌스탐은 물론 15세 소녀 미셸 위보다 15야드나 뒤지는 거리지만, 그린 주변에서의 숏 게임과 정교한 퍼팅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다.
7월 말 2000만 유로(약 360억원)의 이적료로 브라질 산토스FC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옮겨간 브라질 축구 유망주 호빙요는 키 173cm, 몸무게 61kg에 불과하다. 신체 조건이 불리함에도 그는 현란한 드리블과 정확한 킥으로 ‘펠레의 후계자’에 가장 가까운 선수로 평가받는다. 펠레의 소속팀이던 산토스FC 출신인데다 신체조건과 플레이 스타일이 펠레와 비슷하다는 게 축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축구 사상 기술이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는 프레디 아두도 키가 173cm밖에 안 된다. 아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인터 밀란(이탈리아), 바르셀로나(스페인) 등 세계 명문 클럽들로부터 꾸준히 영입 제의를 받아왔다.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슨 퍼거슨 감독은 핀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U-17)축구선수권대회에서 본 아두의 천재적인 플레이에 반해 그의 어머니와 전 코치인 아널드 트레지가를 만나기도 했다.
만일 그때 아두가 입단했다면 박지성보다 1년 앞서 맨체스터 유니폼을 입었을 것이다. 아두는 흑인 특유의 유연한 몸놀림과 현란한 개인기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축구계에서 차세대 축구 스타로 자리 잡았다. 아두는 2002년 ‘뉴스위크’가 선정한 ‘2003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도 일찌감치 100만 달러의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그의 재능을 인정했다. 아두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U-17)대회 한국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데 이어 시에라리온과의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터뜨리는 등 세계 축구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약체로 평가되던 미국을 대회 4강까지 끌어올렸다.
미국은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때도 키 작은 선수들 덕분에 16강까지 올랐다. 당시 미국의 주축 선수는 170cm에 몸무게 57kg인 다마커스 비즐리, 170cm의 코비 존스, 172cm의 조시 울프 같은 ‘땅꼬마’들이었다. 한국은 당시 미국에 선제골을 내준 뒤 후반 안정환의 골로 1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들 꼬마 삼총사는 지금도 미국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핵심이다.
148cm 다니 료코 ‘대표적 작은 거인’
일본의 탁구천재 14세 후쿠하라 아이는 153cm의 깜찍한 외모만큼이나 천부적인 라켓 기술을 뽐내면서 일본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별명도 ‘아이짱’이다. 후쿠하라는 3세 때부터 탁구를 시작했고, 겨우 10세 4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프로입문 기록을 세웠으며, 이듬해 최연소(11세 7개월)로 국가 대표에 발탁된 데 이어 지난해 전(全)일본선수권 여자복식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키 작은 선수로는 일본의 여자 유도 영웅 다니 료코를 빼놓을 수 없다. 다니(북한의 계순희와 라이벌이던 다무라 료코가 결혼하면서 성이 다니로 바뀌었다)는 148cm의 키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6연패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두 차례나 차지한 일본 여자 유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다니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1993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세계여자유도 48kg급의 최강자로 군림했으나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북한의 계순희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내리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의 강타자 다니 요시토모와 2003년 12월에 결혼, 성이 다니로 바뀌었다. 다니는 내년 2월 출산 예정이어서 9월 이집트에서 열리는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한국 선수 가운데는 키 173.7cm, 허리둘레 29인치, 발 크기 265mm로 프로농구 선수로서는 누가 봐도 작은 울산 모비스의 김태진 선수가 돋보인다. 키가 커야 유리한 프로농구에서 최단신 선수로 기록된 김태진은 용병들이나 서장훈, 김주성 등 키 큰 센터들의 턱밑에 머리끝이 간신히 닿는 것은 물론 치어리더들 틈에 끼어도 신장의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작지만 강하다. 용병들을 농락하며 레이업슛을 넣는가 하면 3점 슛도 펑펑 터뜨린다. 순식간에 상대의 공을 가로채는 그의 몸놀림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김태진은 서울 행당초등학교 4학년 때, 자기보다 족히 한 뼘 반은 큰 아이들이 대부분인 농구부에 찾아갔다. “농구 하러 왔는데요”라고 말을 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감독은 “네가? 그 키로? 이놈 돌아가라!”며 면박을 주었다. 김태진은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농구공을 놓지 않았다. 배재중·고를 다닐 때도 작은 키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실력은 자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1cm라도 더 큰 동료들에게 출전 기회가 돌아갈 때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김태진은 작은 키 때문에 군대에 가서도 고생했다. 98년 김병철(당시 대구 동양), 김희선(당시 서울 삼성) 등과 함께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다른 동기들은 조교가 농구선수인 줄 알아보고 힘든 훈련은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김태진은 일반 훈련병들과 똑같이 연병장에서 땀을 쏟아내야 했다. 뒤늦게 농구선수라는 사실을 안 소대장의 한마디. “너도 농구선수였니?” 김태진은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