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영원으로’65,txt
하지만 아무리 스필버그와 ‘죠스’의 힘이 막강해도 해변은 로맨스와 사랑의 무대다. 영화 팬들이라면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뜨거운 키스와 애무를 나누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데보라 카와 버트 랭커스터를 기억할 것이다. 그 영화가 만들어진 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흘렀고 온갖 종류의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영화 팬들은 가장 로맨틱하고 섹시한 장면으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물결치는 바다를 뒤로하고 키스를 주고받는 할리우드 스타들만큼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대상이 또 있겠는가.
해변은 쾌락의 상징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젊은이들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싹트고 비키니라는 근사한 발명품이 탄생하자 할리우드에서는 해변을 무대로 한 수많은 청춘영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50, 60년대에 만들어진 해변 뮤지컬 영화를 지금 보면 우스울 정도로 순진하고 건전했다. 그래도 여자들은 비키니를 입고 나왔고, 록 음악도 들을 수 있었으니 당시 관객들은 만족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할리우드는 뮤지컬을 버리고 액션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물이 90년대의 가장 유치한 텔레비전 시리즈물 ‘베이 와치’다. 이야기 설정이야 용감한 해변구조대 대원들이 악당들을 때려잡고 착한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이지만, 누가 이 시리즈를 그런 내용 때문에 봤겠는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내용이 아니라 실리콘 가슴을 출렁이며 해변을 질주하던 빨간 수영복 차림의 파멜라 앤더슨이다.
그러나 해변이 언제나 경박한 쾌락주의만 탐한 건 아니다. 해변은 운명론적인 사랑의 장소이기도 하다. ‘시월애’의 무대가 조수가 오가며 만들어낸 갯벌이 아니었다면 과연 초자연적인 우체통을 통해 2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편지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사랑이 애틋할 수 있었을까? 갯벌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아름다운 집 ‘일 마레’가 없었다면, 과연 이 영화가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샌드라 불록과 케이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리메이크작 ‘레이크 하우스’에서는 갯벌이 아닌 호숫가로 무대가 바뀌었지만.
최근 영화 중 해변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로는 프랑수아 오종의 ‘타임 투 리브’를 추천한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작가의 마지막 나날을 다룬 이 영화는 우리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해변을 찾아 수영을 즐기고 해변에 누워 잠드는 것으로 끝난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의 실루엣 주변엔 조용히 석양이 내린다.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어느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죽음을 원치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