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복잡한 연결망을 이룸으로써 고도의 인지능력을 발휘한다. 여러 뇌 신경세포끼리 연결돼 특정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한 이미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및 대사, 수용체의 변화 등에 의해 행동의 변화나 동작의 움직임이 조절되는데, 이러한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면 병이 생긴다. 옛날에는 이 같은 분자생물학적인 변화에 대한 식견이 부족해 뇌 속에 마귀가 들어가서 정신질환을 유발한다고 믿고 악령을 쫓는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원인이 불분명하면 치료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통합실조증이나 우울증에서도 각각의 증상에 따른 치료가 이뤄지고 있고, 비교적 양호한 치료 효과를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치료의 중심에는 ‘향정신약’이라는 약을 사용한 약물요법이 있다.
향정신약에는 수면약(최면 진정약), 항불안약, 항우울약, 신경안정약, 항정신병약, 정신 자극약(ADHD 치료약) 등이 있다. 여기에 항간질약이나 항파킨슨병약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뇌 기능 이상 증상에 사용되는 약물
향정신약은 신체의 병에 사용되는 약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그 하나는 감기에 감기약, 복통에 위장약처럼 단순한 처방 형태를 갖는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는 우울증에는 항우울약, 불안장애에 항불안약이 처방되지만, 우울증에 항불안약 또는 수면약이 처방되거나 불안장애에 항우울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뇌 속의 뉴런은 마치 전자제품의 회로도처럼 복잡하게 연결돼 있기도 하고, 과부하가 걸리면 차단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컨트롤 타워(두뇌)의 기능을 유지한다.
SSRI 계열의 항우울제인 ‘세로자트’.
이밖에도 통합실조증에서 불안이나 불면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항불안약이나 수면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동시에 우울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는 항우울약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울증의 경우 일반적으로 항우울약을 사용하지만, 증상에 따라서는 항간질약이나 항우울 작용이 있는 항정신병약 등도 빈번히 사용된다. ‘SSRI(선택적 세로토닌 저해약)’라는 항우울약은 불안장애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약의 이름은 ‘항우울약’이지만 공황장애나 강박증,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에도 사용된다. 게다가 수면약과 항불안약은 본래부터 같은 작용을 한다. 진정·최면 작용이 강한 것은 수면약으로, 항불안 작용이 강한 것은 항불안약으로 사용된다.
항우울약인 ‘푸로작’은 우울증 외에 불안장애 등의 치료에도 쓰인다.
장기 복용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
‘마음의 병’에 걸리면 여러 종류의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환자와 약의 궁합 및 적정 복용량을 정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약이 있다. 예를 들면, 항우울약이나 항정신병약은 대부분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에 초기엔 소량을 복용하기 시작해 효과와 부작용의 상태를 비교하면서 조금씩 양을 늘리고, 환자에게 맞는 분량을 정해간다. 종종 약과의 궁합이 나빠서 너무 효과가 없거나 강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다른 약으로 바꾸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복용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셋째, 증상이 완화되어 약 복용을 중단할 때도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양을 줄여나가야 한다. 증상이 없다고 약 복용을 갑자기 중단하면 반동으로 이전보다 더 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성질상 재발하기 쉬운 병도 많고, 예방적으로 소량을 유지해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의 체질이나 성격, 병의 종류나 증상의 경중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증상이 없어지고 나서 빨라도 수개월, 때로는 수년에 걸쳐 약 복용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약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이유는 환자 스스로도 약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 위한 ‘마음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 있어도 풍요로운 인생 가능
‘마음의 병은 낫기 어렵다’ ‘일생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선입관이 적지 않다. 확실히 마음의 병 중에는 증상이 심해도 재발을 조절하기 쉬운 병이나, 증상이 가벼워도 완치가 어려운 병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마음의 병에만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을 생각해보자. 이 병들은 환자의 체질이나 생활환경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며, 약을 먹는다고 곧 낫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여러 해에 걸쳐 정기적으로 통원 치료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어도 약으로 증상을 다스리면서 사회생활을 지장 없이 할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병의 완전한 치료에 연연해하지 않고, 그것과 공생하면서도 일상을 가능한 한 쾌적하고 활기차게 보내는 것을 지향하는 편이 훨씬 적극적인 생활방식이 아닐까? ‘치료’란 반드시 병을 없애는 것만이 아니다.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풍요로운 인생을 보낼 수 있으면 그것도 환자에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마음의 병 치료는 그야말로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