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물회.
선생과는 필자와 편집자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가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 싶다는 마음에 선생이 부르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달려갔다. 물론 대부분 술자리였다. 선생은 술을 퍽 즐겼는데 술자리에서 그를 당해내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선생이 어느 날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물회·고등어회 등 신선한 해산물에 딱 어울려
“네 취재 내용하고 글은 참 마음에 드는데 말야, 사진이 영 아니야. 나도 글하고 사진을 함께하고는 있지만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 지순이랑 호흡 한번 맞춰봐라. 너는 글 쓰고 지순이는 사진 찍고.”
김 선생에게 백지순이라는 ‘수제자’가 있었는데, 그를 내 작업 파트너로 제안한 것이다. 아시아의 민속 가운데 무속 부문을 이미 섭렵한 김 선생이 자신의 수제자에게 아이템으로 던진 것이 바로 음식이었다. 아시아의 민속음식! 꽤 흥미로운 주제임이 틀림없었고, 한국 음식을 그 시작으로 사진작가와 공동작업을 한다는 점도 훌륭할 듯했다.
이후 1년가량 나는 백지순과 함께 공동작업을 했다. 선생 말마따나 분업을 하게 되니 작업이 훨씬 수월했고, 원고 수준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보기에도 좋았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다. 둘이 움직이니 비용은 배로 드는데 원고료를 사진과 글 따로 쳐서 준다는 매체가 드물었던 것이다. 고전을 계속하던 끝에 공동작업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백지순과 함께 작업을 할 때였다. 김 선생은 내가 쓰는 모든 글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던 듯했다. 어느 글에선가 내가 ‘제주 음식은 맛이 없다’고 했는데 김 선생이 이를 보고 발끈했다. 그는 6·25전쟁 중 제주도로 이주해 오래 살았던 탓에 스스로 제주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고향 음식’을 맛이 없다고 했으니 화가 날 법도 했다. 내가 제주 음식을 맛없다고 한 이유는 ‘재료 그 자체로 맛있는 신선한 해산물이 널려 있으니 따로 이런저런 요리 방법을 궁리하지 않는다는 점, 제주에서는 여자들이 바깥일과 집안일을 다 하다 보니 부엌에 오래 있을 시간이 없어서 요리하는 데 크게 신경 쓰지 못한다는 점’ 등에서였다. 그러나 김 선생의 의견은 달랐다.
“제주 토장 알아? 육지 된장 하고 달라. 이 토장을 물에 푼 뒤 싱싱한 생선 넣고 후루룩 마시면 속이 쏴아~ 하고 풀리는 게 최고지. 생선 없으면 말야, 여기에 그냥 밥 말아 먹어도 맛있어. 이거 하나만으로도 육지의 모든 음식보다 맛있다고 장담할 수 있어.”
그날 나는 김 선생과 설전을 벌이다가 결국 함께 제주도에 가서 제주 음식이 맛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김 선생과 백지순, 제주도의 또 다른 사진작가와 사흘 동안 제주 이곳저곳으로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물회와 몸국, 고등어회, 갈치회, 보리빵 등등. 그런데 취재를 하면서 우리는 제주 음식이 맛있네 맛없네 따지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음식 먹는 자리마다 술이 올라 여기가 제주도인지 서울인지 구별이 안 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하나는 기억한다. 자리물회 먹는 자리였던 것 같다.
“술 마시고 난 다음에 꼭 이게 먹고 싶단 말야. 그래서 집에서도 된장 푼 물에 밥을 말아먹기도 해.”
러시아 연해주에 머무느라 선생의 부음을 몇 개월이 지난 뒤에야 접했다. 김 선생 때문인지 요즘 자주 자리물회를 먹는다. 제주 토장이 아니니 그 맛은 나지 않지만 말이다.
“선생님, 제주 음식 맛없다고 한 거 죄송합니다. 그동안 접었던 백지순과의 공동작업도 다시 한번 궁리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