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홍수 대책에 관해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일부는 댐 건설을, 일부는 하천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내놓을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도 의미는 있지만 참신한 맛을 주지는 못한다. 새로운 시각을 얻기 위해 다음 칼럼을 보자
이 글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발상을 보여준다. 가위바위보의 ‘가위’에 해당하는 중간항을 홍수 대책의 원리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홍수 대책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댐 건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엄청난 홍수를 댐으로 완벽하게 막는다는 것은 댐의 기능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또 댐은 시멘트로 물의 흐름을 막는다는 점에서 자연과의 공존을 기반으로 한 해결책은 아니다.
이 시점에서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혜가 요구된다. 즉, 인간만을 위해서도 안 되고 자연만을 위해서도 안 된다. 인간과 자연의 서열 없는 중간항의 관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규모 늪(습지)을 확보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어떨까? 기존의 홍수 대비책을 뛰어넘는 참신한 발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홍수 해법을 가위바위보로 푼다면 ‘늪(습지)’은 ‘가위’에 해당한다.
늪(습지)은 항상 물에 젖어 있는 땅이다. 즉, ‘물도 아니고 뭍(땅)도 아닌 지역’이다. 늪은 물과 땅이 공존하는 중간항에 해당한다. 늪은 스펀지와 같아서 많은 양의 물을 끌어들여 간직한다. 이런 점에서 “도시와 교외 지역의 습지를 보전하고 이 지역에서 사라진 습지를 복원하자. 습지를 활용한 도시의 물순환체계 구축은 도시형 홍수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홍수 위험이 있는 저지대의 개발을 금지하고 습지로 보전하자”는 서울대 김귀곤 교수의 글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 사례로 네덜란드의 홍수 대책을 들 수 있다. 네덜란드는 전 국토의 27%가 바다보다 낮아 침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 정부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제방에 쌓여 있는 국토 면적의 1.76%에 해당되는 연안 습지를 복원 중이다. 네덜란드에도 ‘가위’가 적용되는 셈이다.
‘가위’의 중간항 원리를 우리 사회 문화의 여러 상황에도 활용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사고에 ‘가위’를 들이대보면 어떨까? 그 대답은 ‘보수적 진보’ ‘진보적 보수’로 나올 것이다. 이런 중간항이 존재할 때 사회의 갈등은 균형과 조화 속에 해결 여지를 넓혀갈 수 있다. 빈부 격차도 이분법적 사고에서 나온 비극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가위’를 들이대면, 상류층과 하류층의 일부가 옮겨와 중산층이 확대될 수 있지 않겠는가.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극단의 현실에서 중간항이 두터워질 때 그 사회는 안정되고 개혁 또한 성공할 수 있다.
혹자는 논술에서 중간항의 제시는 비빔밥 같은 입장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물론 논술에서 중간항의 제시는 어느 한쪽 입장만을 강조할 때 나타나는 통쾌한 맛은 없다. 반면에 창의성을 확보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가위문화’의 확대가 필요하다. 상반된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온갖 이슈에서 한쪽의 극단적인 주장은 국력의 낭비와 천박한 문화만을 양산할 뿐이다. 학생들이여, 중간항의 확대를 위해 ‘가위’를 들이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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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발상을 보여준다. 가위바위보의 ‘가위’에 해당하는 중간항을 홍수 대책의 원리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홍수 대책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댐 건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엄청난 홍수를 댐으로 완벽하게 막는다는 것은 댐의 기능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또 댐은 시멘트로 물의 흐름을 막는다는 점에서 자연과의 공존을 기반으로 한 해결책은 아니다.
이 시점에서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혜가 요구된다. 즉, 인간만을 위해서도 안 되고 자연만을 위해서도 안 된다. 인간과 자연의 서열 없는 중간항의 관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규모 늪(습지)을 확보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어떨까? 기존의 홍수 대비책을 뛰어넘는 참신한 발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홍수 해법을 가위바위보로 푼다면 ‘늪(습지)’은 ‘가위’에 해당한다.
늪(습지)은 항상 물에 젖어 있는 땅이다. 즉, ‘물도 아니고 뭍(땅)도 아닌 지역’이다. 늪은 물과 땅이 공존하는 중간항에 해당한다. 늪은 스펀지와 같아서 많은 양의 물을 끌어들여 간직한다. 이런 점에서 “도시와 교외 지역의 습지를 보전하고 이 지역에서 사라진 습지를 복원하자. 습지를 활용한 도시의 물순환체계 구축은 도시형 홍수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홍수 위험이 있는 저지대의 개발을 금지하고 습지로 보전하자”는 서울대 김귀곤 교수의 글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 사례로 네덜란드의 홍수 대책을 들 수 있다. 네덜란드는 전 국토의 27%가 바다보다 낮아 침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이로 인해 네덜란드 정부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제방에 쌓여 있는 국토 면적의 1.76%에 해당되는 연안 습지를 복원 중이다. 네덜란드에도 ‘가위’가 적용되는 셈이다.
‘가위’의 중간항 원리를 우리 사회 문화의 여러 상황에도 활용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사고에 ‘가위’를 들이대보면 어떨까? 그 대답은 ‘보수적 진보’ ‘진보적 보수’로 나올 것이다. 이런 중간항이 존재할 때 사회의 갈등은 균형과 조화 속에 해결 여지를 넓혀갈 수 있다. 빈부 격차도 이분법적 사고에서 나온 비극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가위’를 들이대면, 상류층과 하류층의 일부가 옮겨와 중산층이 확대될 수 있지 않겠는가.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극단의 현실에서 중간항이 두터워질 때 그 사회는 안정되고 개혁 또한 성공할 수 있다.
혹자는 논술에서 중간항의 제시는 비빔밥 같은 입장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물론 논술에서 중간항의 제시는 어느 한쪽 입장만을 강조할 때 나타나는 통쾌한 맛은 없다. 반면에 창의성을 확보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가위문화’의 확대가 필요하다. 상반된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온갖 이슈에서 한쪽의 극단적인 주장은 국력의 낭비와 천박한 문화만을 양산할 뿐이다. 학생들이여, 중간항의 확대를 위해 ‘가위’를 들이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