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가산동 우전시스텍 사무실.
‘바다게이트’ 와중에서 우전을 둘러싸고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우전의 대(對)일본 독점계약 파트너가 재일교포 소유 기업인 소프트뱅크였다는 사실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노 씨가 우전에 재직한 2년 7개월간은 VDSL 장비업체 우전으로서는 결정적인 전환기였다. 이 기간 우전은 동종 업계로는 처음으로 일본 진출에 성공,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정부의 각종 지원이 이때부터 쏟아졌다. 노 씨가 우전에 입사할 당시 이 회사의 재무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다. 2003년 상반기에만 4억7000여 만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고, 그해 말까지 손실 규모는 8억4000여 만원으로 늘어났다. VDSL 장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우전이 고전을 면치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시장 진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쇠락 일로 걷다 소프트뱅크 덕에 급성장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2003년 겨울부터 확 달라졌다. 쇠락해가던 우전에 회생의 물꼬를 터준 것은 다름 아닌 ‘소프트뱅크BB’(전 야후재팬). 우전은 2003년 12월23일 소프트뱅크에 VDSL 장비 11억원어치를 시험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4월까지 총 90억원가량의 독점납품권을 따내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소프트뱅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재일교포 사업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소유한 회사로, 일본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20~30%를 장악하고 있다.
노 씨 입사 후 6개월간 우전의 성장은 놀라웠다. 소프트뱅크와의 첫 거래도 대부분 그의 영입 직후 발생했다. 이 결과 우전은 2004년 상반기에만 18억원이 넘는 당기순익을 봤다. 불과 1년 전인 2003년 상반기 우전이 5억원에 가까운 순손실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 우전과 소프트뱅크의 거래는 2005~2006년에도 이어져 우전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우전의 기술력이 타 기업에 비해 뛰어났다면 계약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그렇지 않다. 당시 우전이 소프트뱅크에 납품한 기술인 VDSL 100Mbps는 대부분의 국내 업체들이 보유하고 있던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전의 기술력이 뛰어났다기보다는 영업력이 남달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전 같은 업종의 기업은 당시 40~50사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비슷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이었다. 소프트뱅크가 이들 기업 중 우전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대목이다.
물론 노 씨가 소프트뱅크의 납품건에 직접 관여한 증거는 없다. 그가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활동했다는 얘기가 나온 적도 없다. ‘바다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노 씨와 우전 측은 노 씨의 역할에 대해 ‘중국 시장 진출 책임자’였다고 줄곧 밝혀왔다. 그러나 확인 결과 우전은 중국의 어떤 기업과도 거래를 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인 노지원 전 우전시스텍 이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한류 스타 배용준 씨와 함께 코스닥 상장 기업인 오토윈테크를 인수한 것을 비롯, 인터넷 뉴스업체 오마이뉴스 및 디지털업체 등에 각각 107억원과 100억원을 투자하는 등 한국 IT(정보기술) 시장에 활발하게 투자 중이다. 2005년에는 전남 광양시와 경제협력에 합의하기도 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프트뱅크와 우전의 관계가 장기 독점 계약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두 기업의 관계는 단순한 계약이 아닌 일종의 ‘투자’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