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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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쓰고 메가폰 잡고 흥행 6전7기 도전

  • 입력2006-08-30 17: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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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본 쓰고 메가폰 잡고 흥행 6전7기 도전
    홍상수와 김기덕은 닮았다. 나의 이런 생각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현재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며 세계적 감독으로 성장한 두 사람은 많이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김기덕은 최근의 영화 ‘괴물’ 파동에서 드러나듯이 자신의 생각을 숨김 없이 토로하고 격정적이며 달변이지만, 홍상수는 자신의 감정을 행간에 숨기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눌변이다.

    두 사람의 영화세계 역시 극단에 놓여 있어서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김기덕은 표현주의 스타일로, 일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 세계를 자신의 상상 속에서 창조해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반면 홍상수는 사실주의 계열로, 우리의 일상을 묘사한다. 이렇듯 두 사람은 극단적이라 할 만큼 영화세계는 다르지만, 각본을 직접 쓴다는 점은 같다.

    ‘오! 수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일상적 삶 독특하게 묘사

    김기덕은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했으며, 지금까지 그가 감독한 13편의 영화 모두 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홍상수는 7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모두 그가 직접 각본을 썼다.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만 구효서의 소설 ‘낯선 여름’에서 기본 이야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것도 원작과의 유사성을 찾기 어려울 만큼 홍상수가 많이 각색했기 때문에 100% 홍상수적이다.

    김기덕은 1960년 12월생이고 홍상수는 61년생으로 연배도 비슷하며, 같은 연도에 데뷔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6년 홍상수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김기덕은 ‘악어’로 데뷔한 것이다. 또 김기덕이 늘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처럼 홍상수는 늘 콧수염을 기른 모습이다.



    ‘해변의 여인’ 무대 인사에서도 홍상수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린 채 종종걸음으로 무대로 올라온다. 그가 무대 가장자리에 서자, 뒤따라 올라온 주연배우 김승우가 홍상수를 무대 한가운데로 끌고 간다. 인사말도 “와주셔서 고맙다”는 아주 간단한 말이다. 그의 얼굴은 이런 형식적인 절차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김기덕이 경북 봉화의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반면, 홍상수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거쳐 시카고 예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그는 독립 프로덕션 시네텔 서울에서 지상파 방송사에 납품되는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홍상수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영화는 밴쿠버 국제영화제에서 ‘용호상’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는 최고상 ‘타이거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작품인 ‘강원도의 힘’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특별 언급상’을 받았다. 세 번째 작품인 ‘오! 수정’은 흑백으로 만들어졌고 역시 칸영화제에서 소개됐다. 그의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인 네 번째 작품 ‘생활의 발견’을 거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극장전’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연이어 진출했다.

    만든 영화마다 재미있는 제목 달기로도 유명

    홍상수의 영화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제목이다. 먼저 데뷔작을 보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희한한 제목을 갖고 있다(현재 마포에서 ‘돼지가 고추장에 빠진 날’이라는 삼겹살집이 성업 중이다). 홍상수는 돼지가 갖는 팽창성과 우물이 갖는 수축성을 충돌시킴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그의 새로운 제목 찾기는 계속 이어진다.

    각본 쓰고 메가폰 잡고 흥행 6전7기 도전

    ‘해변의 여인’

    이제는 우리의 귀에 익숙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강원도에서는 홍보문구로 사용되고 있지만 두 번째 작품인 ‘강원도의 힘’ 역시 처음 들을 때는 무척이나 낯설고 이상했다. 고추장의 힘도 아니고 주먹의 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아 있는 생명체인 어머니의 힘도 아닌, ‘강원도의 힘’이라니! 이 엉뚱한 제목 붙이기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세 번째 ‘오! 수정’도 마찬가지다. 수정은 이 영화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고 이은주가 열연한 수정의 영화 속 성은, 양이다. 그러니까 양수정이다. 영화 제목은 ‘오수정’이 아니라 ‘오, 느낌표, 수정’이다.

    네 번째 ‘생활의 발견’은 임어당의 유명한 에세이집 제목이지만 요즘 세대는 잘 모른다. 지금의 60, 70대들이 청춘시절에 읽었을 그 책의 제목을 어떻게 영화 제목으로 붙일 생각을 했을까? 다섯 번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프랑스 시인 루이 아라공의 시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이 역시 낯선 느낌이긴 마찬가지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니, 그럼 남자는 여자의 과거인가? 여섯 번째 제목 ‘극장전’은 역전(驛前)처럼 극장 앞이라는 뜻과 춘향전(傳), 수호전처럼 어떤 이야기를 뜻하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해변의 여인’이야 나훈아의 노래로, 그리고 최근에는 쿨의 노래로 잘 알려진 제목 아닌가. 홍상수가 ‘해변의 여인’을 만든 동기가 궁금했다.

    “5년 전인가 서울에서 알던 여자 분이 있었는데, 그분과 비슷한 얼굴의 여자를 지방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지방 국도변 식당에서 본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 본 그 여자에 대해서 제가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잠깐 가졌던 것 같고, 그게 신기해서 제 기억 속에 그 일이 자리잡게 됐습니다. 얼굴이 비슷하면 속도 비슷할까라는 생각은 제가 가끔 하는 생각 중 하나고, 그때도 그 생각의 끝은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들춰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스크린 데뷔 고현정에게도 가식 없는 연기 주문

    ‘해변의 여인’은 고현정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홍상수의 영화 속 배우들이 다 그렇듯이 고현정 역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가식 없이 진솔한 모습으로 관객과 만난다. 홍상수는 배우들에게 철저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연기하라고 주문한다.

    영화감독 중래(김승우 분)는 미술감독 창욱(김태우 분)에게 서해안 바닷가로 하룻밤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창욱은 자신의 여자친구 문숙(고현정 분)을 데리고 함께 서해안 신두리 해변으로 떠난다. 그러나 창욱은 유부남이다. 여행지에서 창욱 몰래 눈이 맞은 중래와 문숙은 섹스를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중래는 문숙에게 어젯밤과는 다르게 냉담한 태도를 보인다.

    “2년 전쯤, 아는 사람이 이틀 거치로 여행을 연달아 떠나는 게 유별나다 싶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크게는 5년 전의 기억 및 2년 전의 기억과 변형된 상황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틀 안에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성 의식과 관련된 속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저에게 인물 구현의 구심점이 되어줄 배우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해변의 여인’에서 ‘반복’은 중요한 코드다. 홍상수와 김기덕 모두 영화를 만드는 핵심 방법론은 반복이다. 김기덕은 자기 복제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영화를 스스로 복제하면서 조금씩 차이를 두고 변주해가며 성장했다. 김기덕 영화의 어디에서나 우리는 아주 쉽게 등장인물의 반복된 행동을 찾을 수 있다. 홍상수의 영화에서도 반복은 아주 중요하게 이용된다. 단, 김기덕과 다른 점은 홍상수의 반복은 서로가 거울로 비춰보는 듯 대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반복은 영화 만들기의 좋은 틀입니다. 동시에 한 인물의 행동이 ‘반복’될 때는 강박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상수와 김기덕의 닮은 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둘 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과연 ‘해변의 여인’이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해변의 여인’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홍상수 영화보다 재미있다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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