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용강동 ‘느루’를 공동 운영하는 김귀숙(왼쪽), 박정신 씨.
박 씨가 이런 꿈을 키워갈 수 있는 것은 5월16일에 개업한 ‘느루’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골도 제법 생겼고, 점심때는 하루 30만원 안팎의 매상을 올린다. 때론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손님도 있을 정도다. 주변 음식점에서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목도 좋지 않은 곳에서 잘도 버텨나간다”며 놀라는 눈치다.
“가난 대물림 끊는다”
‘느루’ 개업 때까지 세세하게 컨설팅해주던 창업 컨설팅 업체 ㈜비즈니스유엔 한수영 실장은 현재까지의 성공 요인을 “무엇보다 중요한 상권 분석을 통해 부대찌개를 중심 메뉴로 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변에 부대찌개 전문점이 없는 데다 주방장을 맡은 김 씨의 음식 솜씨가 좋아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로는 그만이라는 것.
원래 김 씨와 박 씨는 죽 전문점을 낼 생각이었다. 김 씨가 한때 죽 전문점의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그 업소가 상당한 매상을 올리는 모습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컨설팅을 맡은 한 실장은 단호히 반대했다. 죽 전문점은 주변 직장인들을 끌어들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김 씨는 “지금도 죽 전문점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상외로 빨리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느루’를 개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재단(이하 재단)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세상 기금’에서 각각 3000만원씩 무담보로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 물론 6000만원은 음식점을 임차하고 인테리어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두 사람은 “그러나 한 실장을 비롯해 주위에서 도와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밝게 웃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피자명 사당점을 운영하는 한미경 씨.
한 씨의 이런 성공에는 한 씨가 2004년 말 남편과 이혼하기 전까지 3년 넘게 피자점을 운영한 경험도 한몫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한 씨는 사당동의 지역적 특성을 면밀히 조사한 끝에 이 지역에 피자점을 개업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한 씨는 “한 피자 브랜드의 사당동점이 그 브랜드 체인점 중 전국 1위를 할 정도로 사당동 주민들이 패스트푸드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한 씨는 지금도 홍보 전단을 한 달에 10만 장 이상 돌린다. 어느 정도 손님이 확보됐다고 해서 안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께 한 씨의 가게를 방문한 재단 관계자가 “한 씨의 열정은 재단 내에서도 유명하다”고 하자 한 씨는 “한때 신용불량자였는데도 재단에서 지원을 해줬다. 여기서 실패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도원동 임마누엘헤어샵을 운영하는 김복임 씨.
‘아름다운 세상 기금’은 ㈜태평양 설립자인 고 서성환 회장 유족이 2003년 6월30일 저소득 모자가정의 생활 자립 지원을 위해 재단에 전달한 기금. 고인이 남긴 유산인 태평양 주식 7만4000주와 해당 주식에 대한 2002년 이익배당금 전액 등 총 50억원 규모였다(지금은 주가 상승으로 13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재단이 운영하는 60여 개의 공익기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상·하반기 한 번씩 대상자 선정
창업 컨설팅을 해주는 ㈜비즈니스유엔 한수영 실장(왼쪽)과 미용실 창업 지원을 담당하는 이철헤어커커 장준혁 이사.
재단이 창업자금 지원 대상자를 선정할 때도 이들 전문가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먼저 매년 상·하반기에 한 번씩 선정하는 창업자금 지원 대상자 모집에 응모한 40~50명을 일일이 면접한다. 미용실 운영을 희망하는 지원자를 심사하는 이철헤어커커 장준혁 이사는 “일에 대한 열정은 기본이고 면접을 통해 호감을 주는 포인트가 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관찰한다”고 말했다.
호점 | 희망가게 점포명 | 업종 | 창업 일 | 소재지 |
1 | 미재연 | 한식 | 2004년 7월 | 종로구 가회동 |
2 | 왕접시해물찜 | 해물찜 전문점 | 2004년 11월 | 노원구 중계동 |
3 | 임마누엘헤어샵 | 미용 | 2005년 4월 | 용산구 도원동 |
4 | 아가마지 | 산후조리사 파견 | 2005년 5월 | 광진구 구의동 |
5 | 상가 구내매점 | 매점 | 2005년 3월 | 동대문 신발상가 내 |
6 | 이은주 헤어갤러리 | 미용 | 2005년 10월 | 영등포구 영등포동 |
7 | 피자명 사당점 | 피자 | 2005년 11월 | 동작구 사당동 |
8 | 개인택시 | 택시 | 2006년 3월 | |
9 | 드림피아 | 폐자원 재활용 | 2006년 4월 | 경기도 화성시 |
10 | 느루 | 부대찌개, 삼겹살 전문점 | 2006년 5월 | 마포구 용강동 |
11 | 어울림 | 분식점 | 2006년 5월 | 중랑구 면목동 |
이들 전문가의 역할은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필요한 교육을 알선하거나 창업에 필요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실제 창업까지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한 실장은 “자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검대상은 입지 선정과 상권 분석인데, 지원 대상자들은 이에 대한 개념도 없이 무턱대고 자영업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희망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외환위기가 할퀴고 간 상처 때문에 곳곳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재단 관계자는 “신청자 중 30% 정도는 신용불량자인데, 그나마도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대 이상의 경영 실적 올려
안타까운 사실은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여성 가장은 거의 대부분 이혼에 의해 생겨났다는 점. 과거엔 남편과의 사별이 주원인이었다. 재단 관계자는 “희망가게 운영자 가운데 일부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서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이를 견디다 못해 아무런 대책 없이 자녀 양육까지 책임지며 이혼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개업 중인 희망가게는 모두 11개점. 현재까지 이들의 경영 상태는 기대 이상이다. 재단 관계자는 “내년 초에는 이들이 상환하는 기금만으로도 또 한 곳의 창업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재단은 지원 대상자들에게 창업 3개월 뒤부터 능력껏 창업 지원금을 상환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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