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유학은 영어를 배우면서 사고의 폭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떠나는 시기’와 ‘머무는 기간’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조기유학을 선전하는 문구가 도처에서 학부모를 유혹한다. 조기유학은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도전이고 모험이다. 조기유학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학부모들은 무엇을 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전문가들은 “ 조기유학을 보내는 이유와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면서 “아이들 스스로의 동기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목표를 분명히 하라!
“조기유학을 결정하기 전 아이의 미래와 관련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아이를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으로 키울 것인지, 아니면 ‘얼굴만 한국인인 외국인’으로 키울 것인지 먼저 판단해야 해요.” -김희경 브레인컴퍼니 이사
3년차가 넘은 ‘기러기 엄마’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들이 ‘한국어를 잊어간다’는 점이다. 부모들이 간과하기 쉬운 게 한국어 구사 능력의 정체(停滯)다. 부족한 한국어 구사 능력은 귀국 후 약점 혹은 장애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공부한 아이들은 ‘미국인으로서’ 자라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고등학교만 가도 ‘소통이 되지 않는’ 아버지가 한국에서 찾아오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조기유학생이 적지 않다.
“한국에선 친구들이 모두 라이벌 아닌가요. 한국은 한심한 나라예요. 거기선 하루도 못 살 것 같아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만난 유학 3년차 이주연(14·가명) 양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초등학생은 3년, 중·고등학생은 2년 정도 외국 학교를 다니면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한 조기 유학생이 포스터를 읽고 있다.
아이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하라!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중·고등학생의 도피성 유학요? 아주 가끔씩 예외는 있지만 거의 모두가 실패합니다. 초등학생의 경우도 학업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적응도 잘하고 결과도 좋아요.” -토피아아이비클럽 박종석 이사장
조기유학은 결코 문제 학생의 해방구가 될 수 없다. 한국의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강제로 떠밀려온 학생들은 외국에서도 비슷한 전철을 밟는다. 자녀를 홀로 방치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2년 전 부모의 강요로 미국 서부의 한 사립고교에 입학한 김요한(가명·17) 군은 로스앤젤레스의 한 마약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올해 초 귀국했다. 언어 문제로 미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김 군은 거의 모든 과목에서 낙제했다고 한다.
“도피성 유학은 절대로 보내면 안 됩니다. 한국에서 말썽을 일으키던 아이를 혼자 유학 보내는 것은 마약을 배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학교에서도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미주한인마약퇴치센터 한영호 목사)
가디언들과 현지 유학원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 성적이 우수했던 학생이 유학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 유학업체 대표는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중·고등학생들의 조기유학은 말리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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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 맘’과 대화를 하고 있는 한 초등학생.
“세컨드 랭귀지를 배우는 데 가장 좋은 시기는 어느 정도 성숙도를 갖춘 초등학교 4~5학년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 이후(사춘기 이후)엔 언어습득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요. 그 시기엔 다른 문화권의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요.” -캐나다 메이플리지 해리후기초등학교 교사 바브 스티븐스
조기유학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영어만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한 조기유학은 초등학교 4~5학년 때가 적기라고 말한다.
지난해 두 자녀를 데리고 캐나다 밴쿠버로 1년 동안 조기유학을 다녀온 송민수(41·서울 양천구 목동)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유학을 떠날 때 초등학교 2학년, 6학년이던 두 아들은 올봄 초등학교 3학년, 중학교 1학년으로 복학했다).
“영어 실력으로만 보면 큰아들은 ‘절반의 성공’이고, 둘째 아들은 ‘죽도 밥도 안 된’ 경우죠. 큰아들은 귀국하기 서너 달 전에 말문이 터졌는데 유창하지는 않아요. 유학 3개월 만에 속사포처럼 영어를 쏘아대던 막내는 한국에 돌아온 후 배울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영어를 잊어버렸죠. 한국에서 영어회화 학원을 보내고 있는데도 소용이 없어요.”
대체로 초등학교 1, 2학년 어린이들은 영어를 빨리 배우지만 영어를 익히는 만큼 한국어를 잊어버린다. 3학년은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고 영어를 배울 수 있으나 한국에 돌아오면 영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4~5학년부터는 ‘몸’이 아닌 ‘머리’로 영어를 배우는 터라 발음은 유창하지 않아도 영어를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6학년은 현지 공부가 버거워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4~5학년과 마찬가지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1년은 짧고, 3년은 길다
“영어는 학교만 다니면 저절로 배울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처음에 몇 달은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면서 울기를 밥 먹듯 했죠. 결국 개인교사를 고용해 영어를 따로 가르쳐야 했어요.” -광역 밴쿠버 서리에 거주하는 기러기 엄마 P씨
기러기 엄마들은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생각만큼 빠르게 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외국 학교를 다닌다고 저절로 영어를 익히는 것은 아니다. 기러기 엄마 형태의 유학은 현지인 가정에서 머무는 ‘나 홀로 유학’보다 엉어습득 속도가 더디다.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004년 8월 캐나다 밴쿠버로 ‘나 홀로 유학’을 온 송대훈(가명·13) 군은 “캐나다 친구들 집에서 ‘슬립오버(친구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를 자주 한다”며 웃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바디랭귀지로만 대화를 했죠. 6개월쯤 지나니까 조금씩 말문이 트였어요. 지금은 친구들과 쇼핑도 다니고 영어로 인터넷 채팅도 해요.”
송 군의 영어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송 군처럼 캐나다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학생들은 유학 1년이 넘으면 대체로 일상생활과 또래 집단과의 의사소통에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조기유학 전문가들은 “복귀형 유학의 경우 1년은 너무 짧고, 3년은 리스크가 크다”고 말한다. 3년 가량 외국에 머물면 영어는 유창해지지만 한국에 돌아와 적응하는 게 문제다. 선행학습과 사교육으로 ‘무섭게’ 공부한 국내파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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