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만찬 : 의심’
최근 국제적 이슈가 된 남북한 관계, 복잡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역학 관계 및 지속적인 경제난들과 관련된 보도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위협과 불안에 휩싸인다. 그 속에서 현실이란 한 개인이 힘겹게, 그리고 외롭게 헤쳐 나가야 하는 망망대해처럼 느껴지곤 한다.
양대원의 그림에는 푸른색의 막막한 공간들, 성조기의 그것과 같은 붉은 띠들, 그리고 우리의 땅 같은 흙색이 있다. 가면을 쓴 등장인물들은 모두 미묘한 표정을 드러낸다. 그들의 행위로 미루어 보면 운동선수, 군인, 정치인 등으로 보이며 한 개인의 초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인물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에서처럼 둘러앉아 회담을 하거나 결정을 내린다. 또한 그들은 무
‘푸른 나라 : why’
문신을 한 두 인물은 각각 어떤 겨루기, 혹은 껴안기를 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가면을 쓴 인물의 정체다. 같은 가면을 쓴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몸을 가진 각각의 인물들은 마치 암세포가 증식된 것처럼 복제된 인물들 같다. 모두 다 같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인 이들은 가끔 성조기나 태극기, 군복 같은 얼룩무늬 문신을 하고 열심히 힘 겨루기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자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든 인물들은 몹시 외로워 보여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양대원의 그림은 국가와 사회가 처한 상황들,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굴러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동시에 뭔가 열심히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고독과 자살로 귀결되는 삶은 현대인들의 운명이다. 그렇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대원의 존재들은 개인이 감당하기 힘겨운 상징들을 몸에 문신한 채 열심히, 그리고 기꺼이 겨루고 껴안고 증오하며 사랑하는 현대 인간의 초상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26일까지, 사비나 미술관, 02-736-4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