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번역’ 의혹의 한가운데에 있는 정지영 아나운서. 그는 10월19일 진행을 맡고 있는 SBS의 두 프로그램을 사임했다.
‘이중번역’이라는 말이 낯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연하다. 내가 알기로도 출판 번역에서 스타를 본격적으로 내세운 마케팅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잣대로 이중번역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힘들다. 이처럼 진실을 확인하지 않은 추측과 잘못된 이해 등이 인터넷을 타고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중번역’은 출판계에서도 낯선 말
사건은 이미 터졌다. 이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먼저 이번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출판사, 번역가, 언론의 문제를 차례로 짚어보자.
우선 단어의 사용과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사건에서 새삼스레 깨달았다. 대부분의 언론은 대리번역이 출판계의 관행이라고 보도했다. 관행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그대로 인용하자면 ‘오래전부터 해오던 대로 함’, ‘관례대로 함’이다. 관례란 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 혹은 풍습이다.
그렇다면 대리번역은 출판계가 널리 인정하는 질서이고 풍습인가. 내가 아는 한 그렇지 않다. 가끔 있는 행위일 뿐이다. 번역을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 건네지는 유혹이다. 예컨대 갓 입사한 직원 몇몇이 선배 직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커피를 타줬다고 하자. 부하 직원이 선배 직원에게 커피를 타주는 일이 그 회사의 관행인가. 그렇다면 출판계에서 대리번역이 관례라고 기꺼이 인정하겠다. 하지만 매년 번역되는 책 중에서 과연 몇 %나 대리번역된 것일까. 출판계 사람의 말이라고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은 채 그대로 인용해 대서특필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자세인가.
‘마시멜로 이야기’의 원래 번역가는 2000년부터 번역을 시작했다는 중견 번역가다. 초벌 번역가라면 번역을 배우겠다는 생각에서 이름만 빌려달라는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7년 경력의 번역가가 왜 타협을 한 것일까. 그는 번역가의 위상을 스스로 낮췄다. 번역의 가치를 돈에만 두었다. 물론 번역은 돈을 벌기 위한 행위다. 전문번역가에게 번역은 생활수단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는 이름까지 함께 팔았다. 이름은 곧 자신의 정체이고 영혼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 “영혼까지 팔았다”고 말하는 바이다. 번역의 가치는 언론이 지켜주는 것도, 독자가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가 지켜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번역의 가치는 번역가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한편 출판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마시멜로 이야기’에 많은 저작권료를 지불했기 때문에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 유명인을 번역가로 내세운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 유명인이 전문번역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역을 방지하고 번역의 질을 보장받기 위해 전문번역가에게도 번역을 의뢰한 ‘이중번역’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야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서울 시내의 한 대형 서점.
이번 사건으로 번역계에 불똥이 튀었다. 대리번역이 관행이라는 언론 보도로 애꿎은 번역가들이 눈총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보도는 하루 10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원문과 씨름하는 번역가들에게 침을 뱉은 행위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일반 기업의 근무시간 10시간과 번역 10시간은 노동 강도가 질적으로 다르다. 나는 3년 전부터 한 문화센터에서 번역 강의를 하고 있는데, 첫 강의마다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강조하는 말이 있다. “번역은 시간 여유가 있어서 하는 소일거리가 아니다. 지적 놀이도 아니다. 책에 번역자로 이름을 올리고 싶은 지적 허영심에 번역을 해보려는 사람은 당장 포기하라”고. 나는 번역의 목적이 지식의 대중화에 있다고 믿는다. 번역물의 독자는 300명의 전문가가 아니라 3000명의 일반 대중이기 때문이다.
번역의 진정한 가치 재정립 필요
‘마시멜로 이야기’를 출간한 한경BP는 왜 스타 마케팅을 고안해냈을까? 그 근간에는 번역의 가치와 질에 대한 무관심이 있다고 본다. 이 부분에서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번역의 가치보다는 ‘정지영’이라는 유명인이 책을 번역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한경BP의 추측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번역이 질로 판단받지 못하고 유명세로 명암이 갈리는 신세가 됐다. 한경의 마케팅 전략을 흉내내려는 출판사가 나타날까 걱정이다.
21세기 유망 직업에 번역가가 꼽힌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연줄이나 인맥이 없으면 번역가로 데뷔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다. 번역 지망생들은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번역학원을 찾아간다. 여기에서 그들은 학대받고 대리번역의 유혹을 받는다. 일부 출판사도 비용을 약간이라도 절감하기 위해 번역학원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번역의 가치와 혼은 고려되지 않는다. 유명세에 기대어 책을 더 팔아보려고 하는 출판사도 문제지만, 번역의 가치와 자신의 이름을 어렴풋한 미래를 위해 쉽게 포기해버린 번역가도 문제다.
아무런 인맥도 연줄도 없지만 번역을 꿈꾸는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 이쯤에서 번역가, 특히 출판계와 독자에게 인정받은 전문번역가들의 자기희생이 필요한 듯하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는 르네상스 시대를 생각했다. 애초부터 번역에 자질 있는 사람도 있지만 훈련을 통해 점점 나아지기도 한다. 베로키오가 공방을 운영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키워냈듯, 기존의 전문번역가들이 번역 지망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그들을 키워가는 것은 어떨까. 또 그들과 함께 번역한 책을 공동의 이름으로, 혹은 그들 공방의 이름으로 출간한다면 어떨까.
그러나 조건이 있다. 즉, 출판사와 독자가 유명인의 이름으로 번역을 판단하지 않고, 번역의 질로 평가해야 한다. 이런 꿈이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믿고 나는 후학들과 지금도 번역을 함께 공부하고 있다. 번역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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