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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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 목맨 일상 기러기 엄마는 고민 중

짧은 영어·‘교육 매니저’로 개인생활 포기 … 체류기간 길수록 귀국 꺼려 가족해체 위험성 가중

  • 밴쿠버·로스앤젤레스=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10-25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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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에 목맨 일상 기러기 엄마는 고민 중
    10월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인근의 한 회원제 골프장. 평일 오전 골프를 치는 사람 대부분이 한국 여성이었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골프 차량까지 구입해 평일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독수리 엄마’라고 한다.

    ‘독수리’는 남편의 경제력을 가리키는 메타포다. 언제든 태평양을 건너올 수 있는 ‘부자 남편’이 독수리,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평범한(?) 남편이 ‘기러기’다. 한국에서 고단하게 살면서 생활비만 부치는 남편은 ‘펭귄’이란다.

    “평일 오전에 백인들은 시간을 낼 수 없어요. 죄다 독수리 엄마예요. 아예 오자마자 고급 골프장 회원권부터 산다니까요. 애들 학교 보내고 허구한 날 골프만 치니 핸디가 다들 싱글이지.”(오렌지카운티의 한 교민)

    부자는 독수리, 평범하면 기러기, 돈만 부치면 펭귄

    경찰과 정보기관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와 로스앤젤레스(LA)에서 사립탐정(PI)으로 일하는 Y씨는 “교민들은 남편이 보내준 돈으로 호화생활을 하는 일부 조기유학생 부모들을 비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전했다.



    Y씨는 얼마 전 캐나다 서부의 최고 부촌인 웨스트밴쿠버의 한 아파트를 임차했다. 웨스트밴쿠버는 캐나다사람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독수리 엄마’가 대거 둥지를 튼 곳이다. 그런데 왜 한국계 탐정이 이 도시의 아파트를 빌린 것일까?

    “아내가 이혼과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무슨 사정인지 알아봐 달라.”

    Y씨에게 아내의 뒷조사를 의뢰한 사람은 한국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A씨. Y씨는 착수금을 받은 뒤 A씨 아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집을 임차하고, 밴쿠버에서 활동하는 탐정 1명을 고용했다. A 씨 아내의 승용차에 부착한 GPS 추적기는 아파트, 골프장 그리고 또 다른 아파트를 가리켰다.

    “골프 선생하고 바람이 났더군요. 남편이 보내준 돈으로 골프 선생 용돈 주고 아파트까지 구해줘 가면서 연애를 했더라고. 기러기 아빠만 불쌍하지, 뭐.”

    10월1일 LA국제공항 톰브래들리 터미널. 긴 추석 연휴 둘째 날로 인천발 비행기에서 내린 기러기 아빠와 마중 나온 기러기 엄마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6개월차 기러기 엄마 길지현(41) 씨는 “3개월 만에 남편을 보는 건데 신혼 때처럼 설렌다”고 말했다.

    “아빠!”

    초등학생 딸이 아빠를 먼저 발견했다. “우리 딸,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라고 물으면서 오랜만에 만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아빠의 표정이 정겹다. 경기 과천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박준모(44) 씨는 “아내가 해주는 밥부터 먹고 싶다”면서 활짝 웃었다.

    그렇다면 기러기 엄마들은 모두 길 씨처럼 남편과의 해후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까? 취재 중에 만난 10여 명의 기러기 엄마 대부분이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데면데면해져요. 아이들은 더 빨리 아빠를 잊고요.”(광역 밴쿠버 서리에 거주하는 기러기 엄마 P씨)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자주 나오면 나중엔 귀찮아진다고 하잖아요. 대부분의 엄마들이 처음엔 남편을 반기다가도 1년이 넘어가면 무덤덤해지죠.(오렌지카운티에 사는 기러기 엄마 K씨)

    기러기 부부들이 간과하기 쉬운 게 잠자리다. 외국생활에 적응하면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거의 사라진다지만, 섹스는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도시락 싸고, 학교와 학원에 아이들 태워다 주고,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골프를 배우는 게 대다수 기러기 엄마들의 일상이다. 영어가 서툴다 보니 생활도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기러기 엄마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캐나다 시민권자 H씨는 일부 엄마들이 일탈하는 이유로 짧은 영어실력과 외로움을 꼽았다.

    “캐나다인 학부모들과 어울리는 건 고사하고 담임 선생님이 필기체로 흘겨 쓴 편지도 읽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영어를 못하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죠. 애인이 생기는 것은 부적절한 유혹에 넘어갔다기보다는 기댈 언덕을 찾은 거죠. 골프 강사나 카딜러 등 현지 사정에 밝은 한국인을 만나 도움을 받다가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남편 그리운 건 잠깐 … 1년 넘어가면 무덤덤”

    9월27일 광역 밴쿠버 화이트록에서 조기유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이민자 G씨 집에 이웃에 사는 기러기 엄마 5명이 모였다. 기러기 엄마가 워낙 많다 보니 학교별로 혹은 동네별로 조기유학 가족의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

    “혹시 바람난 기러기 엄마 취재하러 온 건 아니죠?”

    2005년 초 강원도의 한 도시에서 이주해 온 기러기 엄마 K씨는 바람난 기러기 엄마 얘기를 꺼내며 웃었다. K 씨가 기러기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지방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워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조기유학생 부모 중엔 K씨 같은 지방 출신이 의외로 많다.

    “지방은 교육 인프라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서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알아봤는데, 집값하고 물가가 캐나다보다 오히려 비싸더라고요. 인터넷 서핑으로 배경 지식을 쌓은 뒤 한 달간 캐나다에서 민박하면서 꼼꼼하게 현지 조사를 했어요.”

    K씨의 일과는 단출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를 익히고 골프를 배우는 게 거의 유일한 개인생활이다. 주말엔 축구팀에서 뛰는 아들을 응원하는 ‘사커맘’ 노릇을 한다. K씨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요리, 운전은 꼭 배워 와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립지 않느냐고 묻자 K씨는 “섹스요? 바늘로 허벅지 쿡쿡 찌르면서 살죠”라며 웃었다.

    대다수 기러기 엄마들의 삶은 K씨와 비슷하다. 별다른 개인생활 없이 아이들의 ‘로드 매니저’ 역할에 전념하는 것이다.

    G씨 집에 모인 기러기 엄마들이 한 달에 쓰는 돈은 아이들 과외비를 포함해 평균 5000캐나다달러(약 425만원) 정도. 대부분의 기러기 엄마들이 ‘영어 회화’, ‘한국 논술’, ‘한국 수학’, ‘악기’ 등 아이들에게 2~4개의 사교육을 시킨다. 현지의 학교 공부를 보충해 주는 한국계 보습학원도 인기다.

    부부갈등 벗어나려고 조기유학 선택한 경우도

    기러기 엄마들의 애로 사항은 하나같이 본인과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다. 사춘기 이후에 온 아이들은 영어를 익히는 속도가 더딘 경우가 많다. 처음엔 2~3년을 계획하고 왔다가 ‘장기전’(대학까지 외국에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으로 바꾸는 사람이 많은 까닭이다.

    “애들 선생님을 비롯해 캐나디안을 만나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늘 웃는 표정만 짓죠. 억지로 웃다 보니 얼굴에 근육통까지 생겼어요.”(서리에 거주하는 한 기러기 엄마)

    1~3년의 단기 유학을 온 기러기 엄마들 중에는 한국에 돌아가서 아이들이 ‘한국 공부’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공부가 ‘무섭다’는데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되죠. 그래서 귀국을 포기하고 세컨더리(중·고등학교)는 미국의 사립학교로 보낼까 고민 중이에요.”(광역 밴쿠버 노스밴쿠버에 사는 기러기 엄마 C씨)

    “한국 교육을 아이가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돌아갈 생각이 없어졌어요. 아이들도 한국에서 공부하기 싫어하고요.”(화이트록에 거주하는 J씨)

    가디언들에 따르면 기러기 아빠가 한국에서 ‘참고 버티는’ 시간은 대체로 1년 6개월이 한계라고 한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아빠들이 아내에게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권유하기 시작한다는 것. 반대로 기러기 엄마와 아이들은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외국생활을 계속 하고 싶어한다. 취재진이 만난 기러기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뒷바라지에서 해방돼 오히려 자유롭다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죠. 엄마들이랑 얘기해보면 부부 갈등에서 벗어나려고 조기유학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아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외국생활을 즐기는 거죠.”(서리에 거주하는 P씨)

    노스밴쿠버에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7년째 살고 있는 한 기러기 엄마의 말이다.

    “기러기 생활이 길어지면 가족은 사실상 해체된 거라고 봐야 해요. 초등학교 때 유학 와 사춘기를 이곳에서 보낸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려고 하지 않아요. 아빠가 이민을 선택하지 않으면 ‘아버지 부재’가 평생 이어지는 거죠.”

    조기유학과 함께 부동산 한류도 수출

    자고 나면 집값 급등 … 투기성 투자에 열올려


    아이들에 목맨 일상 기러기 엄마는 고민 중

    광역 밴쿠버 코퀴틀램의 한 주택가.

    ‘기러기 엄마’ K(42)씨는 2004년 8월 캐나다 밴쿠버 인근의 코퀴틀램에서 40만 캐나다달러(약 3억4000만원)짜리 주택을 구입했다.

    “처음엔 타운하우스(빌라)를 렌트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먼저 자리잡은 엄마들이 부동산 투자를 권하더군요. 덕분에 횡재했죠.”

    주택담보대출(몰기지)을 받아 구입한 K씨 소유 주택의 거래가는 10월 초 현재 70만 캐나다달러. 2년 동안 2억5000만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셈이다.

    코퀴틀램을 비롯한 밴쿠버 인근 도시에서 K씨처럼 ‘횡재한’ 기러기 엄마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얘기는 기러기 엄마 모임의 주요 화제다.

    “부동산 투자로 앉은자리에서 수억원씩 버는 엄마들을 보면 솔직히 배 아프죠. 저처럼 ‘월세’ 사는 엄마들은 그런 얘기 들으면 우울해져요.”(기러기 엄마 L씨)

    이는 밴쿠버 부동산 시장이 최근 수년간 급등세를 보이면서 벌어진 일로, 일부 기러기 엄마들은 투기성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다른 주택을 구입하는 사례가 많아요. 중소형 아파트 두세 채를 소유한 기러기 엄마들도 있고요.”(한국계 리얼터 C씨)

    한국에서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세가 가파르게 오른 뒤 기러기 엄마들을 통해 부동산 투자용 뭉칫돈이 캐나다로 유입되고 있다는 게 C씨의 주장이다.

    코퀴틀램의 한 아파트 분양 현장에선 시세차익을 노린 한국인들이 몰려들어 선착순 순번표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진을 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으로 치면 프리미엄이 보장된 역세권 아파트였는데, 이민자들과 기러기 엄마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죠. 교육 이민, 조기유학생들과 함께 ‘부동산 한류’가 들어온 셈입니다.”(캐나다 시민권자 H씨)

    조기유학생의 가디언으로 일하는 H씨는 “한국 사람들의 부동산 투기 감각은 알아줘야 한다”면서 “단기 체류자가 3년 동안 아파트와 주택 20여 채를 사고팔아 2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린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밴쿠버 일대의 부동산값 급등은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로 기대 심리가 높아진 데다 중국과 한국 등에서 이민자와 유학생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신규 이민자와 기러기 엄마들의 부동산 수요가 늘면서 한국의 공인중개사 격인 리얼터가 캐나다 한인사회에서 유망 직업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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