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연임을 포기한 구현모 KT 대표(왼쪽). 2021년 10월 25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지사. [뉴스1, KT 제공]
“후보 결정 공정한 절차 아냐”
KT 차기 대표 인선 레이스에 뛰어든 후보는 총 34명이었다. 사내인사 16명과 사외인사 18명이 3월 7일까지 최종 후보 선정을 두고 경합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구 대표가 2월 23일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33명이 경쟁하게 됐다. 구 대표는 지배구조위원회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국내 통신 3사 중 점유율 2위인 KT 수장 자리는 예전부터 인기가 많았다. 2019년 대표 공모에도 37명의 내외부 인사가 경쟁에 참여했는데 ‘정통 KT맨’ 출신인 구 대표가 최종 승리하며 황창규 전 대표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았다. 당시 구 대표와 경쟁했던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 사장과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 최두환 전 포스코ICT 사장도 이번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당초부터 구 대표의 연임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두 차례 연임 적격 판정을 받았으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10.13%)이 거듭 반대 의사를 밝혀 연임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구 대표는 지난해 12월 13일 우선심사를 통과했지만 국민연금의 반발로 자발적으로 경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후 12월 27일 26명 경쟁자와 경선 끝에 다시 최종 차기 후보자로 결정됐으나 이번에도 국민연금이 제동을 걸었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이사회 발표 3시간 만에 “‘CEO(최고경영자)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밝힌 것이다.
KT가 최근 법원에서 ‘쪼개기 후원’ 의혹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것도 구 대표 입지를 좁혔다. KT는 대표 공모가 시작된 2월 10일 정치자금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전직 임원 등 4명이 비자금 4억3790만 원을 19·20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360회에 걸쳐 불법 후원금으로 제공한 혐의다. 해당 임원들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형이 확정됐다. 구 대표도 이들에게 명의를 빌려준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본격화된 ‘셀프 연임 불가’ 기조 역시 악재로 작용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 수장은 모두 연임에 실패했다. 신한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 BNK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CEO가 차례로 연임에 실패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정부 당국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들어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은 1월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주인이 없는, 소유가 완전히 분산된 기업들은 과거에 공익에 기여하는 곳들이었기 때문에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통해 KT 차기 대표 인선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박종욱 KT 경영기획부문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했는데, 결국 박 사장도 자진 사퇴하면서 국민연금의 의사가 관철됐다.
평균 연령 64세 사외 후보군
주요 기업에서 관료 출신 인사가 차기 수장을 맡는 인선이 반복되자 KT 역시 18명의 사외 후보군 가운데 차기 대표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보수 여당 출신인 권은희, 김성태, 김종훈 전 의원과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눈에 띄는 후보로 꼽힌다. 특히 대선 당시 윤 대통령 후보 캠프에 몸담은 인사들이 주목받고 있다.권 전 의원은 KT 하이텔 경영부문장, KT 네트웍스 비즈부문장 등을 지낸 후 19·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바른미래당 소속으로 의정 활동을 했다. 김 전 의원은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미래전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김기열 전 KTF 부사장 역시 윤석열 캠프에 몸담았다. 김 전 부사장의 경우처럼 사외인사 중 과반인 11명은 KT 출신인 만큼 이들 가운데 대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다만 사외인사 가운데 차기 대표가 정해질 경우 낙하산 논란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더욱이 사외인사 18명의 평균 나이가 64세에 달하면서 올드 보이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다. KT가 디지털 전환 사업 ‘디지코’에 주력하는 만큼 디지털 환경에 친숙한 젊은 리더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다. 사외인사 대부분이 통신업계를 떠난 지 오래된 인물들이라는 점도 부정적 요인이다.
KT 새노조 관계자는 “IT(정보기술)와 경영에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 사법 리스크가 있는 사내인사가 차기 대표를 맡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회 역할이 중요한 만큼 관련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KT는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인선자문단이 후보군을 압축하면 KT 지배구조위원회에서 면접 심사 대상자를 확정할 예정이다. 이후 KT 이사회가 3월 7일 면접을 통해 후보 1인을 확정하면 내달 말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차기 대표이사가 최종 선임된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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