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에 2만4770대가 신규 등록된 기아 전기차 EV6.[기아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4월 11일 경기 화성시에서 열린 기아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이와 같이 포부를 밝혔다. 미국, 중국과 더불어 전기차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갖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이 연설한 곳은 현대차그룹이 29년 만에 국내에 건설한 완성차 공장이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24조 원을 투자해 국내 전기차 생산량을 151만 대로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33만 대) 대비 5배 가까운 규모다.
韓 전기차 시장, 현대차↑ 테슬라↓
전기차 보급 확대는 전 세계적 추세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4월 12일(현지 시간) 배터리 최소 성능 기능 도입, 오염물질 배출량 감소 등의 내용이 담긴 탄소배출 감축 규정을 발표했다. 새 규제에 따라 2027년 생산된 자동차부터 1마일(약 1.6㎞) 주행당 이산화탄소·질소산화물·미세먼지 평균 배출량을 2032년까지 연평균 13% 감축하지 못하면 막대한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내연기관차의 기술 개선으로는 강화된 기준에 맞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전기차 판매를 강제하는 규제라는 시각이 많다. EPA 역시 2032년 판매되는 승용차의 67%가 전기차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기준 미국에서 판매된 새 승용차 중 전기차의 비중은 5.8%였다.
유럽연합(EU)은 한 발 앞서 지난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를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U 대표단과 유럽의회가 지난해 10월 27일(현지 시간) 회원국 내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2035년부터 탄소배출량을 0으로 줄이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탄소배출 규제 법안에 합의한 것이다. 유럽 최대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의 토마스 셰퍼 승용차 부문 최고경영자 역시 2033년부터 유럽 공장에서 전기차만 생산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전력수급망부터 점검해야”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중국 국무원은 2021년 ‘신에너지차 기술 로드맵 2.0’을 발표하며 2035년부터 중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절반을 전기차로 전환하고, 나머지 부분 역시 내연기관차의 비중을 줄이면서 하이브리드차를 늘리는 식으로 로드맵을 짰다.반면 한국의 전기차 정책은 보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의 신규 등록을 금지하겠다는 공약을 냈지만, 당선 이후 이와 관련해 구체화된 행보를 밟고 있지 않다. 서울시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등록을 막을 계획이라고 발표했을 뿐, 국가 차원의 내연기관차 규제 로드맵은 없다. 이마저도 관련 규제가 현실화되려면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당장 규제 정책을 발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판매를 늘리기 위해서는 전력수급망부터 점검해야 하는데, 에너지 정책이 급변하던 기존 상황에서는 내연기관차를 당장 규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연기관차를 규제하기보다 전기차 이용자에게 유무형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는 이유다. 이 교수는 “금전적 인센티브 제공에 그치지 말고 전기차에 주차 혜택을 주거나, 출퇴근 시간 일정 구간에서 버스전용차로 운행을 허락하는 등 소비자에게 무형의 이익을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전기차 산업이 수출에 초점이 맞춰진 점 역시 미국, 중국, 유럽 등과 차이로 꼽힌다. 지난해 미국, 중국, 유럽 세 지역에서 전 세계 전기차 판매의 93.3%가 발생했다. 현대차그룹도 2030년 국내 전기차 생산량을 151만 대로 늘릴 계획인데, 이 중 92만 대를 수출 물량으로 잡았다.
美 전기차 시장, 2~4위 기업 각축전
1분기 미국 자동차 기업 포드는 자국 전기차 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다.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 2위에서 올해 5위로 고꾸라진 것이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포드는 1분기 전기차를 1만866대 판매하는 데 그쳐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에 뒤졌다(그래프2 참조). 시설 확충을 위한 멕시코 공장 가동 중단, 전기 픽업트럭 리콜 사태 등이 포드의 실적 부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테슬라를 제외한 기업들의 전기차 판매량 차가 크지 않아 순위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미국의 보조금 혜택에서 해외 기업인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은 제외되고 자국 기업인 테슬라, 제너럴모터스, 포드만 포함된 것에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다.
미국의 정책 목표가 비현실적인 만큼 추후 수정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자동차업계를 대변하는 자동차혁신연합(AAI)의 존 보첼라 회장은 “우리가 향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질문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 시장과 산업 기반에 필요한 보완 조건 등은 규칙 제정을 진행하면서 계속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업체 제이디파워에 따르면 3월 미국 내 전기차 평균 거래 가격은 6만1800달러(약 8200만 원)로 내연기관 차량의 평균 가격(4만5600달러)보다 35.53% 비쌌다. 미국 존 버라소 상원의원(공화당) 역시 “‘모든 것의 전기화’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더 높은 가격과 더 적은 선택으로 가는 길”이라며 현 정책에 회의를 나타냈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은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이 5.8%임을 고려할 때 2032년까지 67%로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자국 기업마저 목표치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향후 방침이 수정될 수 있는 만큼 한국 기업과 정부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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