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베라 루빈에 ‘JENSEN ♡ SK HYNIX’사인을 남겼다. SK하이닉스 제공
3월 16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센터에서 열린 ‘GTC 2026’에 참석한 유응준 전 엔비디아코리아 대표가 전한 현장 분위기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2시간 40분 동안 기조연설을 했다. 이 가운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직접 설명하는 데 할애한 시간은 20분 남짓에 불과했다. 나머지 시간은 추론 인프라, 로보틱스, AI 에이전트 운영체제(OS), 양자컴퓨팅 등으로 채웠다. 엔비디아가 더는 칩 기업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간 배분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날 황 CEO는 차세대 AI 통합 플랫폼 ‘베라 루빈’과 추론 특화 칩 ‘그록(Groq) 3’ 언어처리장치(LPU)를 공개했다.
“칩 기업 아닌 플랫폼 기업”
이날 황 CEO의 공격적인 성장 전망도 시장 이목을 끌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엔비디아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누적 매출 최소 1조 달러(약 1486조 원)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GTC에서 제시한 5000억 달러 대비 2배 늘어난 수치다. AI 모델이 단순 프롬프트 기반을 넘어 추론, 계획, 행동이 가능한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진화하면서 칩 수요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베라 루빈의 실물이 공개됐을 땐 현장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베라 루빈은 중앙처리장치(CPU)인 베라 36개와 GPU 루빈 72개를 하나로 묶은 AI 통합 플랫폼이다. 초대형 AI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구동할 수 있다. 기존 블랙웰과 비교해 추론 성능은 5배 높고, 토큰당 비용은 10분의 1 수준으로 낮다. AI 시장 중심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맞춰 최적화된 성능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황 CEO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연산 능력이 4000만 배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8년 출시 예정인 차세대 GPU 파인만도 함께 언급했다.
황 CEO는 지난해 12월 200억 달러(약 30조 원)에 인수한 스타트업 ‘그록’의 기술이 적용된 ‘그록 3’ LPU도 공개했다. 그록 인수는 엔비디아 창사 이래 최대 규모 딜이었다. 2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법인 전체가 아닌 창업자·CEO·임원들만 선별해 채용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GPU는 원래 그래픽 처리용으로 설계된 범용 칩으로, AI 학습과 추론을 모두 수행한다. 반면 LPU는 AI가 단어를 순차적으로 생성하는 과정, 즉 추론에 특화됐다. 이 때문에 사용자가 체감하는 응답 속도는 GPU 대비 최대 10배 빠르다. 그록 3는 올해 3분기 양산을 목표로 생산되고 있다.
한국 기업과 동맹 전면에
올해 GTC에선 지난해와 달리 국내 기업들과의 협력 관계도 부각됐다. 황 CEO는 기조연설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그록 3 칩 생산을 맡고 있다고 처음 공개하며 감사를 표했다. 현대차도 자율주행 로보택시 분야의 핵심 파트너로 언급했다. 엔비디아 AI 플랫폼과 현대차의 차량 기술을 결합해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연설 외 행보도 주목받았다. 황 CEO는 SK하이닉스 전시 부스를 직접 찾아 최신 메모리 기술을 확인했다. 양사가 협력한 베라 루빈 장비에는 ‘JENSEN ♡ SK Hynix’라는 사인도 남겼다.국내 기업 역시 적극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GTC 일정에 맞춰 7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E)를 처음 공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VIP석에서 기조연설을 지켜봤다. 최 회장은 부스에서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의 최대 고객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반도체 주가도 반응했다. 이란 사태로 급락했던 삼성전자 주가는 GTC 첫날인 3월 18일 20만 원을 다시 넘어섰다. SK하이닉스도 개장과 동시에 100만 원을 넘었다.
월가 역시 엔비디아의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매출 1조 달러 전망은 자신들의 추정치와 일치하거나 그 이상이라며, 특히 데이터센터 사업이 핵심 성장축이 될 것이라고 봤다. 미국 IB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애널리스트는 1조 달러 매출 전망은 블랙웰과 루빈의 수주 잔고만을 반영한 수치라고 판단했다. 이를 감안하면 데이터센터 전체 매출액은 이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27년 말까지 아직 분기 7개가 남은 만큼 매출 흐름이 더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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