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통의동)서 밥 먹을 날도 얼마 안 남았어.”
3월 23일 저녁 무렵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 식당.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관계자들이 식사 자리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대화를 나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김치찌개가 식탁에 올라오면서 가라앉았다. 침묵을 깬 것은 일행 중 한 명의 감탄이다. “하! 이 집도 맛있네.”
이곳은 인수위 사무실 인근에 위치한 김치찌개 맛집 ‘뚱낙원’. 9000원에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어 주변에서 일하는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인수위 관계자들도 자주 찾는다. 이날도 서로 인사를 주고받거나 흘깃흘깃 쳐다보며 식사를 이어갔다.
김치찌개 사랑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 1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 인근 음식점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도부와 함께 점심식사로 김치찌개를 먹고 있다. 윤 당선인이 방문한 김치찌개 식당과 이곳의 메인 메뉴(위부터). [사진 제공 · 윤석열 당선인 측, 최진렬]
윤 당선인의 김치찌개 사랑은 각별하다. ‘최애 메뉴’ 질문을 받으면 망설임 없이 김치찌개를 꼽는다. 그는 3월 23일 통의동 집무실 앞 천막 기자실을 방문해 “그 집 김치찌개가 시원하다”고 말하며 김치찌개 사랑을 일관되게 드러냈다. 이날 한 기자가 “한 번도 혼밥을 안 했느냐”고 질문하자 “아침은 혼자 가끔 먹는다. 근데 아침에도 뭘 먹으려고 하면 (강아지가) 와서 딱 쳐다보고 있다. 걔네들 나눠주고 같이 먹는다”고 대답했다. 이어 “(용산 청사에) 프레스룸을 1층에 둘 것”이라며 “청사를 마련해서 가면 내가 하루 저녁 구내식당에서 (김치찌개를) 한 번에 양 많이 끓여서 같이 한 번 먹자”고 말했다.
“밥 같이 먹자”는 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혼밥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수시로 냈다. ‘혼밥 논란’을 겪은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됐다. 윤 당선인은 선거 후에도 ‘식사 정치’로 불리는 행보를 이어왔다. 당선 닷새째부터 꼬리곰탕, 짬뽕, 김치찌개, 피자, 육개장을 순서대로 먹으며 사람들을 만났다.
윤석열 당선인이 3월 14일 당선 후 첫 외부 공식 일정으로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아 상인회 회장단과 간담회를 마친 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윤 당선인이 방문한 꼬리곰탕 전문점과 이곳의 메인 메뉴(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뉴스1, 최진렬]
윤 당선인이 들른 식당이 공개되면서 인터넷에 ‘윤석열 맛집’ 리스트가 공유되는 현상도 생겼다. 평소 ‘먹잘알’(먹거리를 잘 안다) 이미지가 있어 신뢰가 간다는 반응이다. “아무래도 맛집이 아닐까 싶어서 찾았다” “경복궁역 맛집이라고 하니 성지순례 가봐야겠다” 같은 게시물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식당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방문한 이후 식당 손님이 조금 늘었다”고 귀띔했다.
前 대통령 비공개 식사와 차이
윤 당선인의 ‘식사 정치’는 전임 대통령들의 인수위 기간 행보와도 차이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부터 시작된 인수위 기간 비공개 행보를 이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지도부와도 식사 자리를 가졌으나, 오찬은 비공개로 이뤄졌다. 이에 기자들이 유리창 너머로 사진을 찍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경호와 인선 등을 이유로 동선을 최소화했다. 이 전 대통령 역시 통의동에 집무실을 마련했고 식사는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했다. 인수위 인선 등의 문제로 측근들과 식사해야 할 때는 인근에 위치한 삼청동 안가에서 해결했다.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외에도 이재오 전 의원, 이방호 전 사무총장 등과 식사는 비공개로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과 전임 대통령들의 인수위 기간 식사 유형이 다른 것은 향후 선거 일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윤덕노 음식평론가는 “6·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윤 당선인 측이 인수위 기간에도 ‘식사 정치’를 해야 한다고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의 경우 외부에 공개되는 식사 자리는 ‘잘 짜인 쇼’일 수 있다. 하지만 소통 측면에서 볼 때 혼밥을 하는 리더보다 타인과 어울리며 식사하는 리더가 여러모로 낫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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