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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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에 감동 먹고 영화에 내 인생 걸었죠”

  • 입력2006-05-04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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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스토리’에 감동 먹고 영화에 내 인생 걸었죠”
    수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은 많이 알지만 남자는 처음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맨발의 기봉이’를 데뷔작으로 만든 권수경 감독은 진짜 남자처럼 생겼다. 이런 표현이 외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87학번인 권 감독은 고르바초프의 동방정책에 의해 동구권이 대몰락하는 세계사적 격변기에 대학을 다녔다. 경희대 국문학과를 나온 그가 왜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까? 시인 유하, 소설가 이창동처럼, 혹은 시인이며 소설가였던 하재봉처럼 활자 문화에서 영상 문화로 중심 이동되고 있는 문화의 흐름을 읽고 변신한 것일까? 그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영화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가 너무 강해서 차선책으로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국문과에 진학했다. 그렇다면 고등학생이었던 그에게 영화를 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광고회사에서 영상제작 기초 다진 뒤 중국 유학

    에릭 시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아서 힐러 감독이 영화화한 ‘러브 스토리’가 바로 그 계기였다. 1970년 만들어진 이 고전적 사랑 이야기가 고등학생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TV 명화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권 감독은 고백했다.



    ‘내 인생의 영화’가 ‘러브 스토리’라는 것은 권수경 감독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러브 스토리’는 신파적 코드를 갖고 있었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당시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던 파라마운트사를 일약 영화사 순위 1위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권수경 감독이 가장 만들고 싶은 영화도 슬픈 멜로 영화다.

    “‘러브 스토리’에 감동 먹고 영화에 내 인생 걸었죠”
    1995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곧바로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그가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줄 알고 있던 한 선배가 그에게 광고회사 입사를 권했다. ‘빡세게’ 하드 트레이닝을 하지만, 영상 제작의 기초를 튼튼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97년 3월까지 약 2년 동안 그는 100여 편의 광고를 만들었다. 최진실, 심은하, 김지호를 모델로 한 신원 에벤에셀의 의류 광고는 거의 다 찍었다. 콘티 짜고 세트 설치하고 장비 빌리고 촬영하는 과정을 모두 경험했다. 영화는 각 분야가 분업화되어 있지만 광고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밑바닥 일을 배우는 데는 오히려 광고 쪽이 더 좋다는 것이다.

    광고회사를 그만둔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중국으로 영화 유학을 떠났다. 장예모나 첸 카이거 등 중국 5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특히 권 감독이 좋아한 감독은 장예모였다. 1년 넘게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중국어를 익힌 뒤 1998년 9월, 1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베이징영화학교 대학원 연출과에 합격했다. 총 정원은 5명. 3명은 중국인, 2명은 외국인 학생이었는데 권 감독과 함께 뽑힌 사람은 프랑스 여학생이었다.

    “‘러브 스토리’에 감동 먹고 영화에 내 인생 걸었죠”

    ‘맨발의 기봉이’

    베이징 유학 시절 그는 소중한 경험을 두 가지 했다. 하나는 장예모 감독이 만들던 ‘책상서랍 속의 동화’ 촬영 현장에 현장 실습을 나가서 약 2주 동안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의 작업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촛불도 안 들어오는 산간 벽지에서, 영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캐스팅해서 찍은 ‘책상서랍 속의 동화’의 촬영 현장은 권 감독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에게 연기를 시키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뒤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으며 촬영을 하는 장예모의 모습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은 중국 올 로케로 찍은 한국 영화 ‘비천무’의 연출부로 일한 것이었다.

    2001년 9월, 3년제인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닌 3년 동안 그는 매년 단편영화 하나씩을 만들었다. ‘건배’ ‘에피소드 1, 2’ ‘에피소드 3’ 등 3편이었다. 학년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매 학년 마지막에 제출하는 단편영화가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졸업 논문은 ‘임권택, 장예모 감독의 비교론’이었다. 두 거장 감독의 공통점은 자기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간혹 오리엔탈리즘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두 감독은 그런 목적이 아니라 실제로 민족 문화에 대한 무한한 애착과 자긍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두 감독의 차이점은, 장예모 감독이 임권택 감독에 비해서 도회적이고 세련된 기법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귀국 후 권수경 감독은 두 편의 영화가 엎어지는 경험을 했다. 첫 번째 작품은 김수로, 김선아가 캐스팅된 ‘내 사랑 브루스 리’였다. 이소룡을 동경하는 무술인과 가수를 지망하는 음치가 만나 각자의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였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캐스팅까지 마친 이 영화는 2004년 촬영 직전 제작 투자가 중단되어 결국 엎어졌다.

    다음 작품은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였다. 감우성, 장나라, 봉태규가 캐스팅됐지만 배우들이 약하다는 이유로 촬영이 무산됐다. 지금 같았으면 김수로든, 김선아든, 감우성이든 제작자들이 반색을 하며 투자했겠지만 당시만 해도 제작자들은 이들의 티켓 파워가 약하다고 판단했다.

    ‘비천무’의 연출부 경험은 권수경 감독에게 신현준이라는 친구를 만들어주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마음이 맞았고 이때의 인연이 ‘맨발의 기봉이’로 이어졌다. 권 감독의 작품이 연이어 엎어지는 것을 본 신현준은 VHS로 녹화된 테이프 5개를 주었다. 그것을 본 권수경 감독은 곧바로 영화화를 결심했다. 2003년 2월 KBS-TV ‘인간극장’에 방송된 엄기봉 씨 이야기였다. 원래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권수경 감독은 다른 방향으로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다시 쓰겠다고 제안했고, 방송된 기봉 씨 이야기 중 어머니의 틀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비천무’ 통해 신현준과 인연 … 의기투합 ‘맨발의 기봉이’ 만들어

    ‘맨발의 기봉이’는 2004년 프리 프러덕션을 시작해 2005년 10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석 달 반을 찍었고, 한 달 반 동안 후반 작업해서 시사회를 가졌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도마뱀’ ‘사생결단’과 같은 주에 개봉한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모르지만, 세 편의 영화 모두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예측을 하기 힘들다.

    ‘맨발의 기봉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현준의 변신이다. 카리스마 넘치던 황 장군은 어디로 갔는지, 입에 보철을 낀 채 히죽거리며 웃는 기봉 역의 신현준은 약간의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실제 주인공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권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정성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초지일관 캐릭터를 유지하자는 감독의 말을 신현준은 충실히 따랐고 거의 NG 없이 촬영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은 NG를 낸 사람은 권 감독이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너무 웃었기 때문이다.

    “슬프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웃음과 감동을 주는 게 기본 설정이었다. 웃음은 자신 있는데 감동은 잘 모르겠다.”

    한국의 어머니 김수미는 현장에 100인분의 간장게장을 가지고 나타나 스태프들을 즐겁게 했다. 모두 3그릇씩 밥을 먹었다고 한다. 직접 담근 김치나 총각김치를 촬영지인 경남 남해까지 가지고 와서 스태프들에게 제공한 김수미는 진정 한국의 어머니였다.

    “이 영화는 실화가 갖고 있는 리얼함으로 감동을 준다. 영화화되면서 실제 주인공인 두 분의 삶에 파문이 일어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 없이 살아갈 효자와 팔순 노모가 언론에 오르내리면 좋은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이 생긴다. 실제 기봉 씨에게는 혹이 있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심장병으로 바꿨다.”

    ‘맨발의 기봉이’를 만든 권수경 감독은 당분간 쉬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해보겠다고 했다. 삶의 깊이를 영화적으로 드러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이제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다. 그는 쉬는 동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 해답을 찾아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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