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회’
그런데 막회에 관련된 글들(기사나 인터넷에 올라 있는 음식평 등)을 보니 몇 가지 오해가 있는 듯하다. 막횟집들이 너나없이 영덕, 포항, 울진, 강구 등 경북의 해안 지명을 쓰고 있어 막회가 경북 향토음식으로 잘못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애초 막회는 한반도 모든 바닷가에서 흔히 먹던 음식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보면 조선시대 수병들이 생선을 된장에 찍어 날로 먹는 장면이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랬을 것이다. 된장이야 삼국시대부터 있어온 음식이고 초고추장은 당시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재배됐다).
내 고향 마산에서는 생선회용 막장을 따로 담갔는데, 된장에 고춧가루가 조금 들어간 것이었다. 이 막장은 생선회와 매운탕에만 쓰고 다른 음식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뭉툭뭉툭 썬 회를 막장에 찍어 먹거나 잘게 썬 채소 위에 회를 놓고 막장으로 척척 치대 먹었다. 이른바 막회다. 여기에다 물을 부으면 물회가 되며, 밥이나 국수를 말아 먹기도 했다.
예전에는 다들 생선회를 이렇게 먹었다. 우리는 가끔 잊는다. 한반도 역사상 온 민족이 굶지 않게 된 것이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논밭이 없는 어촌은 더 가난했다. 선주가 아니고서는 끼니 때우는 일도 버거웠다. 그러니 생선회를 먹어도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끼니로 먹었을 것이다. 그게 요즘의 막회다.
어촌에서 아무렇게나 먹던 회 … 우리 민족 미각의 결정판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도시에서 생선회는 귀한 음식이었다. 양식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횟감이 무척 비쌌고, 그 격에 맞게 고급 일식집에서나 회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 90년대 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광어와 우럭 양식이 일반화되고 물고기를 살려 보관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중적인 횟집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그런데 음식 내는 스타일은 일본식을 따랐다. 그래야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식당 주인들은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일본식을 따른 것도 아니었다. 생선을 너부데데하게 썰어 무채 위에 깔고 고추냉이(와사비)와 간장을 함께 내놓는 것은 같았다. 그 옆에는 막장과 초고추장을 올려 우리식 맛을 볼 수 있게도 했다. 또 상추, 깻잎, 풋고추, 마늘을 내놓아 일식에 우리의 쌈 방식을 가미했다.
2000년대 들어 우리는 ‘미친 듯이’ 회를 먹고 있다. 대형 횟집에 앉아 두툼한 광어와 우럭을 쌈 싸먹는 가족의 모습은 일상화됐다. 1980년대 후반 붐이 일었던 ‘고기 뷔페’를 연상시킨다.
최근 막회가 유행하는 것을 보면 이제 회에 대한 한풀이가 대충 끝나감을 느낀다. 회를 물리도록 먹게 되면서 더 이상 고급 음식으로 여기지 않게 되고, 따라서 어촌에서 아무렇게나 먹는 회에 대해서도 ‘한번 먹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간혹 이런 말을 듣는다. 생선의 그 여린 생살 맛을 제대로 보려면 두툼하게 썰어서 고추냉이를 곁들여 간장에 찍어 먹는 일본식 회만한 것이 없다고.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미각은 낱낱의 맛을 즐기려는 일본인들의 미각과 큰 차이가 있다. 비빔밥이 좋은 예인데, 나물 하나하나를 간을 해 대접에 밥과 함께 썩썩 비벼 먹는 민족이다. 그러니까 입 안에서 온갖 맛이 요동을 치게 해 그 맛의 충돌을 즐기는 것이다. 막회를 비벼놓고 보면 가관이다. 양파, 돌미역, 미나리, 부추, 마늘, 풋고추에 초고추장이나 막장까지. 이렇게 강한 음식 재료들 속에서 언뜻언뜻 입 안을 치는 생선의 여린 생살 맛을 즐기는 우리 민족! 정말 뛰어난 미각을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