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영유권이 일본에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 인사들.
“일본의 우파가 미디어를 교묘히 이용해 국가주의를 자극하면서 일본인의 90%에 달하는 무관심층을 극우세력으로 포섭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음 날 오전 ‘주간동아’에 독도 문제를 다룬 일본 기사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보내왔다. 김 부장이 우리말로 옮긴 한 주간지의 기사는 일본 우익의 생각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한국이 실력행사에 나서 일본 배와 충돌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일본의 극우세력이 의도적인 도발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독도 문제를 국제분쟁으로 키울 기회였다”면서 한-일 간의 충돌이 미국의 중재로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는 일본 우파의 정체는 무엇일까?
‘일본 우파의 여론 조작’을 연구해온 김 부장은 일본 정계 및 관계, 재계를 장악한 강경파들의 가계(家系)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3대째 이어온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국가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독도는 일본 우파의 꽃놀이패”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아시아 국가와 갈등을 빚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재일본대한민국청년회가 분석한 ‘일본판 네오콘’의 뿌리는 다소 충격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후손들이 하나 둘씩 정계를 장악해가고 있으며, 한국인을 강제연행해 부를 축적한 기업이 극우파에 돈을 대고 있다는 것. 우경화의 고삐를 쥔 인사들의 가계 및 현재 일본 정·관·재계에서의 영향력은 일본의 우경화 속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현재의 일본 내각은 ‘전범의 후손’ 등 역사 왜곡 세력이 사실상 ‘점령’했다. “독도 문제는 영유권 문제이지 역사문제와 관계가 없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담화(4월25일)를 정면으로 반박한 아소 다로 외무상은 강제징용으로 부를 쌓은 아소광업 가문의 후손이다. 그는 일본의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에 있던 아소광업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을 혹사한 곳으로 유명하다. 아소탄광 강제동원 피해자 1만623명 중 절반가량은 현장감독의 학대와 작업 중 사고 등으로 도주하거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7개 탄광을 운영한 아소광업은 석탄산업에서 손을 뗀 뒤 회사 이름을 ㈜아소로 바꿨고, 현재 아소 외무상의 동생인 아소 유타카가 사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제정의 배후로도 거론되는 아소 외무상은 아소시멘트 사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일본 언론에 실린 그의 발언들을 들여다보면 일본 외교 수장의 과거사 인식이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창씨개명(성명 강요)’은 조선인이 원해서 일본이 일본식 이름을 주었던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 폐하가 참배하는 것이 최고다”라고 말했다.
아소탄광의 강제동원 피해자(1만623명) 수는 미쓰비시광업(1만3390)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아소탄광에 끌려가 고된 노동을 해야 했던 강제동원자 가운데 첫 생존자로 확인된 강성향(84·경북 영주시) 씨는 “사죄라도 받지 못하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면서 “탄광에서 죽은 한국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시체를 나르는 수레가 수시로 탄광을 들락거렸다”고 회고했다(동아일보 2006년 3월17일자 참조).
강제동원자를 가장 많이 고용한 미쓰비시는 요즘 극우 세력의 ‘돈줄’ 노릇을 하고 있다. 아이카와 겐타로 미쓰비시중공업 회장은 왜곡된 역사 교과서의 열렬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미쓰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점령지의 탄광도 장악하고 있었는데, 미쓰비시가 관할한 일본 본토와 점령지의 탄광 등에서 목숨을 잃은 강제연행자의 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미쓰비시는 과거사에 대한 아무런 반성 없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극우단체 막강한 자금력 자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정치가들은 국정을 맡을 자격이 없다.”
아시아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아사히맥주 나카조 다카노리 명예회장의 말이다. 아사히맥주는 마쓰시다에 버금가는 극우 기업이다. 이밖에도 마일드세븐을 만드는 JT, 도시바, 후지쓰, 캐논, 마쓰다, 브리지스톤, 추카이제약 등이 앞 다투어 우익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김 부장은 기업의 리더가 참여하면서 일부 극우 단체는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일본 우익과 기업은 매우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공건설 사업을 많이 하는 회사가 특히 그렇죠. 가시마건설, 다이세이건설, 시미즈건설 등 대기업 건설 회사의 임원들은 역사를 왜곡하거나 과거사와 관련해 망언을 일삼는 우익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소 외무상 외에도 주요 인사 중에는 강제연행으로 부를 쌓은 전범의 후손이 적지 않다. 납치의원연맹을 이끌며 ‘북한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히라누마 다케오 전 경제산업상의 조부는 히라누마 기이치로 전 총리다. 히라누마 전 총리는 A급 전범으로 기소돼 종신금고형을 선고받은 뒤 복역 중 사망한 제2차 세계대전의 대표적인 전쟁 범죄자.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아베 관방상은 A급 전범 용의자로 투옥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다. 기시 전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조선인 납치와 징용에 관련된 인사로, A급 전범 혐의로 3년간 투옥된 바 있다. “종군위안부(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왜곡된 것”이라는 등 아시아 국가들을 자극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아베 관방상은 “내용이 잘못됐다”면서 NHK의 종군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에 대해 방영 중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오쓰지 히데히사 후생노동상은 일본유족회 부회장을 맡은 극우 인사이며, 같은 날 현직 각료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고이케 유리코 환경상은 ‘역사교과서를 생각하는 초당파 의원 모임’에 속해 있다. 이들은 “대동아 전쟁은 자위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밖에도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역사검토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한 다나가키 사다카즈 재무상 등 일본을 우경화로 이끄는 ‘소장 우익’은 내각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교육의 수장인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A급 전범의 후손인 아베 관방상과 히라누마 전 경제산업상이 조직한 ‘젊은 의원 모임’의 부대표를 지냈다. 젊은 의원 모임은 왜곡 교과서 집필을 주도한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지원한 의원 단체로, 이들은 “일본 역사 교육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른바 위안부 문제가 왜곡돼 전달되고 있다”면서 “국민운동을 다이내믹하게 전개해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카야마 문부과학상은 “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원래 없었다”고 주장한다.
‘보수 본류’를 대신한 ‘소장 우익’이 이끌어가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재일본대한민국청년회가 스크랩한 일본 최대 인기 사이트에 올라온 누리꾼들의 글이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떠드는 것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돈을 뜯어가기 위한 책략 아닌가” “일본식 창씨개명에 저항하지 않고 권력에 아양을 떨었던 게 아닌가” “많은 한국인을 해방시켜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같은 주장들은 과거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 정부 각개 격파가 해결책”
“일본 우익은 앞으로도 영토 문제 혹은 과거사 문제를 이용해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지지율을 높일 것입니다. 독도 문제를 보면 2년 전과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던 독도가 일본에서 유명한 섬이 돼버린 것이죠. 현재는 침략전쟁에 반대해온 매스컴을 포함해 누구도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인정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주장을 했다가는 여론의 돌팔매를 맞을 테니까요.”
김 부장은 한국에 무관심하거나 한류상품을 즐기던 평범한 일본인이 우경화되는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극우 인사의 의도된 도발→한국 여론 및 언론의 반발→일본 언론, 한국 여론 자극적으로 전달→일본 내 반한 감정 촉발→국가주의 고조→외교 관계 정체→의례적인 화해 후 정부 간 관계 정상화의 구조가 반복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지지율 상승)을 보는 쪽은 일본의 우파 정치인이라는 것이다(그림 참조).
일본을 보통 국가로 만들려는 일본 우익들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내달리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전범 국가라는 굴레를 내던져버린 인사들이 이끄는 일본의 도발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듯하다. 김 부장은 “한국 언론과 정부가 일본의 극우 세력과 보통 사람들, 또 과거사를 부정하는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을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면서 “특정인을 꼬집어 공격하거나 특정 세력을 비판하는 형태로 한국 정부와 언론의 대응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