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을 관통하는 야라강 전경.
첫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신문을 읽을 때면 호주 여행상품에 눈이 갔다. 여행사 광고에는 골드코스트, 시드니, 뉴질랜드 남북 섬을 연결하는 여행상품이 즐비하다. 하지만 멜버른에 대한 상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멜버른에 가려면 다른 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멜버른(Melbourne). 호주 제2의 도시, 교육의 도시, 이민장려 정책으로 호주 내에서도 한국 이민자와 유학생이 꾸준히 증가하는 곳.
멜버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자동차 번호판이었다. 차 주인의 개성을 나타내는 단어들로 이뤄진 번호판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특별요금을 내고 애인 이름, 회사 이름 또는 자기가 원하는 숫자로 차 번호를 조합할 수 있다고 한다. 번호 위, 아래에 써 있는 ‘THE GARDEN STATE’ ‘VICTORIA-THE PLACE TO BE’ 등 멜버른에 대한 애정 가득한 문구도 인상적이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다 만난 한 멜버른 사람은 멜버른을 무척 사랑한다고 했는데, 이곳 멜버른에서도 이 도시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래, 이쯤이면 나도 멜버른을 애정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거야.
멜버른의 날씨는 아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사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올여름에도 기온이 40℃가 넘어서는 날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더운 날에도 그늘에만 들어가 있으면 선선하게 느껴진다. 비가 오는 날도 많지만, 잠시 비를 피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 내리쬔다. 오래된 집들 중에는 난방장치가 아예 없는 집도 있다. 내가 머물던 집이 그랬는데, 새벽에는 추워서 난로를 켜고 낮에는 바다로 해수욕을 하러 가곤 했다.
개성 넘치는 자동차 번호판 … 그레이트 오션 로드 일품
멜버른을 여행하기 위해 차를 빌릴 필요는 없다. 표 한 장만 끊으면 하루 종일 버스, 트램, 기차를 두루 이용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이용 가능한 티켓의 가격은 10호주달러(약 7050원), 2시간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은 약 5호주달러다. 멜버른 중심가만 운행하는 시티서클트램도 있는데, 이 트램은 중심가에 있는 거의 모든 관광명소에 데려다주는데 무료다.
멜버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그레이트 오션 로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 중 하나라고 한다. 여행사의 하루짜리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관광할 수 있는데, 나는 직접 차를 몰고 기분 내킬 때마다 쉬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 때문에 포트 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예수의 열두 제자를 닮았다는 12사도 바위의 수려한 모습은 보지 못해 아쉬웠다.
피츠로이 공원의 평화로운 모습.
일요일마다 장이 열리는 세인트킬다 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천천히 걸어다니다 목이 마르면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호주의 아티스트들이 만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영어 이름을 일본어로 써준다며 붓 들고 앉아 있는 일본인 아가씨도 있다.
퀸빅토리아 마켓은 꼭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은 곳인데, 훨씬 정돈된 느낌이다. 바둑판 모양으로 돼 있어 초행길에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기념품, 옷, 장난감, 장식품, 고기, 채소, 생선 등 안 파는 것이 없다. 그런데 상당 부분의 물건들이 중국산이라고 한다. 이게 세계적인 추세라니 어찌하랴. 그리고 멜버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오래된 집들이었다.
멜버른 시내에는 트램이 많이 다닌다.
멜버른은, 1년을 만나도 10년을 만난 듯하고 10년을 만나도 1년을 만난 듯한 친구처럼 편안한 도시다. 몇 년 전 핀란드인 친구가 고층빌딩들로 둘러싸인 덕수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나는 서울이 이래서 좋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잖아”라고 한 적이 있다. 멜버른 또한 그러하다.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다민족이 공존하며, 다양함을 즐길 수 있는 곳. 너도 이방인이기에 내가 이방인인 것이 어색하지 않은 곳.
공원을 산책하다 마주친 낯선 사람들의 다정한 인사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내 몸과 마음의 여유를 끄집어내 확인해볼 때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