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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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 빵빵 그녀들 땀방울도 섹시해!

여자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화제 … 개인 취향·사생활 보장하면서 우승 일궈

  •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6-05-04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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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쭉쭉 빵빵 그녀들 땀방울도 섹시해!

    황연주, 구기란, 전민정(왼쪽부터).

    4월6일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 모인 사람들은 고개를 한참이나 들고 있어야 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무대 위로 키 큰 배구선수들이 연신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선수들이 단체로 무대에 올라서자 참석자들은 목이 아픈 줄도 모른 채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미녀군단으로 불리는 ‘핫핑크 거미’들의 꼭짓점 댄스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예쁘다, 늘씬하다, 게다가 잘한다. ‘예쁜 배구’로 KT&G 2005~2006 V리그 여자부 우승을 거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후폭풍이 거세다. 만년 꼴찌에서 정상에 오른 이들을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자유로움’이다. 헤어스타일을 원하는 대로 다듬고 마음껏 멋을 낸 모습으로 경기를 뛰니 절로 신바람이 날 수밖에 없다. 예쁜 얼굴을 억지로 ‘꼭꼭’ 숨기고 경기에 나선 다른 팀 선수들이 이들 앞에서 기가 죽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 분야는, 그리고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평균적인 문화적 흐름과는 별개의 섬에 사는 듯했다. 학창 시절, 그들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그들은 합숙을 했고, 체전을 준비했으며, 대통령배 대회에 나갔다. 사회에 진출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태릉선수촌에 입촌했으며, 해병대 입소 훈련을 받았고, 은메달을 따면 울어야 했다. 그것이 선수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은퇴를 하거나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청춘을 다 바친 코트나 그라운드를 떠나기라도 하면, 갑자기 맞닥뜨린 사회의 흐름에 제대로 편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핑크스파이더스 후폭풍에서 미뤄볼 수 있듯 스포츠계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팬 층이 두텁고 미디어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축구와 야구에서부터 독특한 캐릭터의 선수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흥행의 사각지대인 배구, 특히 흥국생명 여자배구단에 대한 관심은 경기 외적인 요소까지 더해져 지난 겨울에서 봄 사이, 상당히 많은 팬을 형성했다.

    예쁘다, 늘씬하다, 게다가 잘한다



    흥국생명 배구단의 역사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단 당시 이름은 태광산업. 91년에 현재의 팀으로 재창단했는데, 16년 만에야 우승을 한 것이다. 10년 넘게 흥국생명 팀을 지킨 최고참 구기란은 “내가 처음 입단했을 때만 해도 집합이 있었다. 체벌도 있었고. 그러나 지금은 전부 말로 한다. 그렇게 해도 충분히 된다는 걸 다들 안다”고 말한다.

    흥국생명 배구단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승을 일궈냈다. 이번 시즌 득점(765점)을 포함해 공격 7개 부문 1위에 오르며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 신인상 그리고 MVP까지 휩쓸어 5관왕을 차지한 신예 김연경을 포함해 최고참 구기란까지 흥국생명 선수들은 모두 ‘머리 염색을 할 수 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산업화 시대의 스포츠 정신을 대변했던 커트 머리와 강인한 인상에 비하면 대단히 유연하고 활기찬 팀 분위기다.

    우승의 숨은 주역 이영주는 스스럼없이 남자친구(프로야구 두산베어스 소속 이재우) 이야기를 꺼낸다. 사생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물론, “운동에 방해된다”며 사생활조차 마음대로 가질 수 없었던 예전(혹은 현재)의 직업 선수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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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리그 여자부에서 우승한 흥국생명의 진혜지, 이영주. 김혁규 배구연맹 총재(왼쪽부터).

    최고의 미녀 선수로 꼽히는 진혜지, 전민정, 황연주의 미니홈피에는 매일같이 팬들이 찾아온다. 이들의 자연스런 일상이 묻어 있는 사진 밑에는 격려와 사랑의 글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이들에 대한 팬들의 애정을 질투라도 하는 듯 2m에서 꼭 10cm가 모자란 대형 루키 김연경은 “예쁜 걸로는 3위 안에 든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선 흥국생명 선수단이 주목받는 것도 결국 우승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하위권에 머물렀을 때는 지금과 같은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년 꼴찌 흥국생명을 우승 문턱까지 이끈 황연주 감독을 시즌 막바지에 슈퍼리그 9연패의 김철용 감독으로 긴급 교체한 것에 대해서도 팬과 전문가들의 비판이 있었다.

    그럼에도 ‘핫핑크 거미들’의 성취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만년 꼴찌였지만 그들은 자율적인 팀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우승을 이뤘다는 점이다. 선후배 간의 지나친 격식을 없애고 개인의 취향과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뛰어난 성적을 냈다는 것은 우리의 스포츠 문화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다.

    ‘미녀 군단’ 흠피 팬 관심 쏟아져

    ‘미녀 군단’이라는 별칭도 ‘여성 선수에 대한 성적인 관심’만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다. 이 사회의 문화적 흐름과는 별개로 단체생활에 익숙해 있는 운동선수들이 이제는 좀더 자유롭고 활기차게 선수 생활을 해야 하고, 또한 그렇게 해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팬들이 지지하고 격려하는 표현인 것이다.

    앞으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어떤 성적을 낼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틀림없는 것은 그들의 자유롭고 활기찬 문화는 유지돼야 하며 더욱 확산돼야 한다는 점이다. 스포츠의 특성상 ‘필승의 각오’가 어떤 식으로든 표현돼야 하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똑같은 헤어스타일로 ‘심신을 단련’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흥국생명 선수단이 이미 입증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싱싱한 경기력으로 우승을 이뤄냈고, 그 역동적인 경기를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렇게 우리의 스포츠는 더 젊어지고, 더 열정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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