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6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서울대 정치학과, 외교학과 총동창회의 조찬모임 강연을 마치고 벨뷰룸을 나서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팔을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참석자가 붙잡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장관을 잘못 알고 있었네. 이제 안심이 되네.”
이 장관을 ‘향북(向北) 선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연을 듣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의미였다. ‘향북 선생’은 이 장관이 북한 편만 든다고 해서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이 붙인 별명이다.
이 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저는 진보나 보수 차원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하더라도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밝히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합 추진 의혹’에 대해선 “평화라는 조건이 없는데 무슨 통합, 통일이 있느냐”며 일축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른바 ‘동맹파’나 북측과의 통합 논의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보수 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발언이었다.
이 장관은 또 남북정상회담과 대통령 선거의 상관관계에 대해 “북한이 대선을 앞두고 정상회담을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임기 말인데 (정상회담은) 차기 대통령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이 장관은 2월10일 취임해 4월26일까지 이 같은 내용의 강연을 9차례 했으며, 7차례에 걸쳐 방송사들과 인터뷰를 했다. 학계, 종교계, 시민단체, 유관기관의 인사들과 면담을 한 횟수는 53차례에 달한다.
이렇게 강연과 인터뷰, 면담을 할 때마다 이 장관은 “‘균형외교’라고 했지 ‘자주외교’라는 말은 쓴 적이 없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3년간 계속 ‘우물 안 개구리라서 자주외교를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일할 때부터 ‘실리 위주’의 대미, 대북정책을 입안했는데도 반미, 친북정책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납북자 송환·경제지원 공론화
이 같은 주장은 올 1월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NSC 상임위 회의록의 외부 유출사건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을 얻게 됐다. 회의록을 유출한 사람은 이 장관이 NSC 사무차장으로 활동하면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미국과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불만을 가졌던 외교안보 라인 내 ‘자주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다는 게 청와대의 자체 조사 결과다.
이 장관은 오해가 정부와 언론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던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가 취임사에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함께하는 정책’을 강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장관은 3월 중순 한 언론사의 전직 간부를 초빙해 통일부 팀장급 이상 전 간부를 상대로 강연을 하도록 했다. 언론을 활용하기 위해 언론을 먼저 알자는 취지였다. 전략을 중시하는 이 장관의 면모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그의 ‘언론을 활용하는 전략’은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의 반대급부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공장 건립 등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을 하는 방안을 공론화한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해결은 이 장관의 정책 우선순위 중 가장 위에 올라 있다.
이 장관이 이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얘기를 처음 꺼낸 것은 3월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 2층 회의실에서 통일부 기자단과 간담회 도중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거론하며 “기존의 생각을 넘어선 창조적 발상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국민에게 보고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요하면 독일 사례도 참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지원’이란 표현은 직접 쓰지 않았다. 그러나 동·서독 시절, 서독이 동독에 현물을 지급하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범을 서독으로 이주시킨 ‘독일 사례’를 언급해 구상 중인 정책의 방향을 짐작케 했다. 이후 약 한 달간 이 장관은 강연이나 인터뷰 등을 하면서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해결 방안을 얘기하더라도 진전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4월7일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 일정이 같은 달 21~24일로 잡히자 회담의 주요 의제인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에 관심이 모아졌고, 4월10일 ‘동아일보’가 1면에 ‘정부가 송환의 반대급부로 대규모 경제 지원을 추진 중’임을 보도했다. 그러자 이 장관은 4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 “정전협정 직전에 북한군에 잡혀간 국군포로를 우선 송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4월1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북에 과감한 경제 지원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민감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한 달여에 걸쳐 언론 보도와 여론의 반응을 살피면서 단계적으로 정책 공개의 수위를 높여간 것이다. 자신이 제시한 방안에 대해 일부 비판도 있었지만 찬성 여론이 대세를 이룬 것을 확인한 뒤에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는 전략이었다.
언론을 활용하는 방식은 또 있다. 이 장관은 기자들을 자주 만나 자세히 설명하되 엠바고(보도유예)나 오프(비보도)를 요청한다. 정보를 공유해 정부와 언론 간의 결속력을 높이면서 기사가 보도되기 전까지 언론을 먼저 설득하겠다는 의도다.
對국회 전략은 최대한 몸 낮추기
이 장관은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통일부 장관실이나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거나 남북회담사무국에서 기자들과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정책을 설명하고 토론한다. 물론 엠바고나 오프가 전제된 대화다. 그는 NSC 사무차장 때도 청와대, 통일부, 외교통상부를 취재하는 기자들과 돌아가면서 정기적으로 만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전략 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한편 이 장관의 대(對)국회 전략은 최대한 몸을 낮추는 것이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나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존경하는 쭛쭛쭛 의원님의 질의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한다. 의원의 질의에 처음 한 번만 ‘존경하는…’을 붙이는 게 아니라 질의를 받을 때마다 그렇게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야당 의원은 ‘말로만 존경한다고 하지 말고 답변을 좀 시원하게 하라’며 비꼬기도 한다. 이런 공격을 받아도 이 장관은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야당 의원들이 비판해도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이는 이 장관의 학계 지인들이 전하는 이 장관의 성격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한 교수는 그에 대해 “고집 세고 지기 싫어해 논쟁을 벌일 때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이 장관은 입각한 뒤 ‘의원과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북한은 달래고 얼러서 끌고 가야 할 대상이지 윽박지른다고 따라올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그가 펴는 반론을 보면 그런 생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웃 간에 싸울 때는 서로 별소리를 다 해도 상관이 없다. 정말 가깝다면 오해가 안 생길 것이므로 어떤 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싸우다가 이제 화해하자고 해서 살얼음판을 지나는데 아무 말이나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원칙 중 하나도 ‘북한이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판을 흔들거나 깨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는 또 회담을 앞두고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인 납북자 김영남 씨 문제를 놓고 일본과 공동 대처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역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가 여전히 “북한에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장관을 잘못 알고 있었네. 이제 안심이 되네.”
이 장관을 ‘향북(向北) 선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연을 듣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의미였다. ‘향북 선생’은 이 장관이 북한 편만 든다고 해서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이 붙인 별명이다.
이 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저는 진보나 보수 차원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하더라도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밝히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합 추진 의혹’에 대해선 “평화라는 조건이 없는데 무슨 통합, 통일이 있느냐”며 일축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른바 ‘동맹파’나 북측과의 통합 논의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보수 진영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발언이었다.
이 장관은 또 남북정상회담과 대통령 선거의 상관관계에 대해 “북한이 대선을 앞두고 정상회담을 제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임기 말인데 (정상회담은) 차기 대통령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이 장관은 2월10일 취임해 4월26일까지 이 같은 내용의 강연을 9차례 했으며, 7차례에 걸쳐 방송사들과 인터뷰를 했다. 학계, 종교계, 시민단체, 유관기관의 인사들과 면담을 한 횟수는 53차례에 달한다.
이렇게 강연과 인터뷰, 면담을 할 때마다 이 장관은 “‘균형외교’라고 했지 ‘자주외교’라는 말은 쓴 적이 없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3년간 계속 ‘우물 안 개구리라서 자주외교를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일할 때부터 ‘실리 위주’의 대미, 대북정책을 입안했는데도 반미, 친북정책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납북자 송환·경제지원 공론화
이 같은 주장은 올 1월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NSC 상임위 회의록의 외부 유출사건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을 얻게 됐다. 회의록을 유출한 사람은 이 장관이 NSC 사무차장으로 활동하면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미국과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불만을 가졌던 외교안보 라인 내 ‘자주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다는 게 청와대의 자체 조사 결과다.
이 장관은 오해가 정부와 언론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책의 방향과 내용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던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가 취임사에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함께하는 정책’을 강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장관은 3월 중순 한 언론사의 전직 간부를 초빙해 통일부 팀장급 이상 전 간부를 상대로 강연을 하도록 했다. 언론을 활용하기 위해 언론을 먼저 알자는 취지였다. 전략을 중시하는 이 장관의 면모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4월23일 평양에서 열린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에 참가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에게 북측 권호웅 내각참사가 대동강 주변 경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장관이 이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얘기를 처음 꺼낸 것은 3월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 2층 회의실에서 통일부 기자단과 간담회 도중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거론하며 “기존의 생각을 넘어선 창조적 발상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국민에게 보고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요하면 독일 사례도 참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지원’이란 표현은 직접 쓰지 않았다. 그러나 동·서독 시절, 서독이 동독에 현물을 지급하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범을 서독으로 이주시킨 ‘독일 사례’를 언급해 구상 중인 정책의 방향을 짐작케 했다. 이후 약 한 달간 이 장관은 강연이나 인터뷰 등을 하면서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해결 방안을 얘기하더라도 진전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4월7일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 일정이 같은 달 21~24일로 잡히자 회담의 주요 의제인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에 관심이 모아졌고, 4월10일 ‘동아일보’가 1면에 ‘정부가 송환의 반대급부로 대규모 경제 지원을 추진 중’임을 보도했다. 그러자 이 장관은 4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정책의원총회에 참석해 “정전협정 직전에 북한군에 잡혀간 국군포로를 우선 송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4월1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북에 과감한 경제 지원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민감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한 달여에 걸쳐 언론 보도와 여론의 반응을 살피면서 단계적으로 정책 공개의 수위를 높여간 것이다. 자신이 제시한 방안에 대해 일부 비판도 있었지만 찬성 여론이 대세를 이룬 것을 확인한 뒤에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는 전략이었다.
언론을 활용하는 방식은 또 있다. 이 장관은 기자들을 자주 만나 자세히 설명하되 엠바고(보도유예)나 오프(비보도)를 요청한다. 정보를 공유해 정부와 언론 간의 결속력을 높이면서 기사가 보도되기 전까지 언론을 먼저 설득하겠다는 의도다.
對국회 전략은 최대한 몸 낮추기
이 장관은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통일부 장관실이나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거나 남북회담사무국에서 기자들과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정책을 설명하고 토론한다. 물론 엠바고나 오프가 전제된 대화다. 그는 NSC 사무차장 때도 청와대, 통일부, 외교통상부를 취재하는 기자들과 돌아가면서 정기적으로 만나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전략 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한편 이 장관의 대(對)국회 전략은 최대한 몸을 낮추는 것이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나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존경하는 쭛쭛쭛 의원님의 질의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한다. 의원의 질의에 처음 한 번만 ‘존경하는…’을 붙이는 게 아니라 질의를 받을 때마다 그렇게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야당 의원은 ‘말로만 존경한다고 하지 말고 답변을 좀 시원하게 하라’며 비꼬기도 한다. 이런 공격을 받아도 이 장관은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야당 의원들이 비판해도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이는 이 장관의 학계 지인들이 전하는 이 장관의 성격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한 교수는 그에 대해 “고집 세고 지기 싫어해 논쟁을 벌일 때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이 장관은 입각한 뒤 ‘의원과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북한은 달래고 얼러서 끌고 가야 할 대상이지 윽박지른다고 따라올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그가 펴는 반론을 보면 그런 생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웃 간에 싸울 때는 서로 별소리를 다 해도 상관이 없다. 정말 가깝다면 오해가 안 생길 것이므로 어떤 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싸우다가 이제 화해하자고 해서 살얼음판을 지나는데 아무 말이나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원칙 중 하나도 ‘북한이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판을 흔들거나 깨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는 또 회담을 앞두고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남편인 납북자 김영남 씨 문제를 놓고 일본과 공동 대처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역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가 여전히 “북한에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