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슬슬 여름휴가 스케줄을 챙겨야 할 때다. 주5일 근무제 정착으로 인해 최대 10일 정도의 여름휴가가 보편화된 요즈음, 여행정보와 투어상품은 흘러넘칠 만큼 많은데 정작 그 속에서 알짜배기 정보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 올여름에는 여행사의 개성 없는 패키지여행보다는 나만의 ‘아주 특별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 남해안의 푸른 바다를 찾아갈 수도 있고, 티베트나 인도의 명상지를 갈 수도 있으며, 큰마음 먹고 스칸디나비아의 백야를 체험하러 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1년 만에 찾아온 휴가를 가장 즐겁게, 후회 없이 보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나머지 1년간 힘내서 일할 수 있을 테니까. ‘주간동아’가 1년간의 ‘에너자이저’가 될 만한 특별한 여행 스케줄을 챙겼다.
- 자, 열심히 일한 당신, 마음에 드는 곳으로 떠나라
① 베이커 거리의 셜록 홈스 박물관. ②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 ③ 햄스테드 히스의 키츠 하우스.
템스 강 남단, 테이트 모던 미술관 옆의 ‘글로브 극장’은 셰익스피어가 배우이자 극작가로 소속돼 있던 극장이다. ‘햄릿’을 비롯한 그의 4대 비극이 모두 이 극장에서 초연됐다. 그런데 현재의 글로브 극장은 대작가의 숨결이 남아 있는 장소는 아니다. 셰익스피어 당시의 극장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고 현재의 글로브는 과거의 극장을 복원해서 1996년에 다시 문을 연 것이다.
‘4대 비극 초연’ 글로브 극장 과거 모습으로 복원
최초의 글로브 극장은 1599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극장이었다. 그러나 겨우 14년 만인 1613년, ‘헨리 8세’ 공연 중 대포에서 튄 불똥이 짚으로 만든 극장 천장에 옮겨붙었다. 불탄 극장은 곧 재건됐지만 두 번째 글로브 극장의 운명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청교도혁명을 일으킨 크롬웰은 1642년 글로브를 비롯한 영국의 모든 극장을 폐쇄했다. 현재의 글로브 극장은 원래 극장이 있던 자리에서 200야드쯤 떨어진 자리에 재건한 것이다. 1996년 열린 재개관 기념 공연 ‘베로나의 두 신사’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참석했다고 한다.
글로브 극장에서는 낮시간 동안 방문객을 위한 투어 가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400년 전의 극장을 그대로 재현한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극장 1층 객석은 의자도 없는 흙바닥 그대로다. 노천극장이기 때문에 비가 오면 공연은 바로 중단된다고 한다.
극장을 나와 런던 지하철 노선도에 회색으로 표시된 주빌리 라인을 타고 웨스트민스터 역으로 향한다.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올라오면 흐린 하늘을 지붕처럼 등에 업은 고딕 양식의 웨스트민스터사원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시인의 코너’가 있는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
사원 내부의 지도를 펼쳐들고 긴 회랑을 따라 걷다 일순 발걸음을 멈췄다. 바닥에 낯익은 이름들이 쓰여진 묘석이 깔려 있었다. 루이스 캐럴, D.H. 로렌스, 바이런…. 어느새 사원의 남쪽 회랑, 시인의 자리에 들어와 있다. 바닥의 묘석은 계속 이어진다. T.S. 엘리엇, 헨리 제임스, 테니슨, 로버트 브라우닝, 오든, 존 맨스필드, G. 엘리엇…. 다 셀 수가 없다. 바닥의 묘석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진짜 무덤들이다. 위대한 재능을 담고 있던 육신들이 모두 이 바닥 아래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감히 그 위를 밟고 지나갈 수가 없다.
왼쪽 벽 중앙에는 셰익스피어의 전신상이 우뚝 서 있다. 그 모습만으로도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긍심이 느껴진다. 벽에는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셸리와 키츠, ‘올드 랭 사인’의 작가 로버트 번스의 기념패가 서 있다. 시인의 자리 입구에는 고개를 수그린 채 앉은 대리석상이 있다. 호수의 시인 워즈워스다. 평생 겸손하고 안온한 삶을 살았던 시인은 이 찬란한 자리에 앉아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못내 겸연쩍은 모양이다.
시인의 자리에 묻힌 마지막 예술가는 ‘햄릿’의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다. 그가 1989년에 이곳에 묻힌 이후, 아직까지 시인의 자리에 안식할 만큼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은 없었다고 한다.
런던 북쪽의 주택가인 햄스테드 히스로 가려면 지하철 노던 라인을 타고 한참이나 올라가야 한다. 맥도날드도 스타벅스도 없는 한적한 이 주택가에는 시인 존 키츠가 1819년부터 2년 동안 살았던 집이 ‘키츠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바깥에서 보면 그저 희고 아담한 2층집이다. 집도 2층에 있는 손바닥만한 시인의 침실도 무덤처럼 고요하다.
키츠는 이 집에서 옆집에 살던 약혼녀 패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의 ‘3대 오드’로 불리는 세 편의 걸작,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가’ ‘나이팅게일에게’ ‘우울에 대한 송가’는 모두 이 집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폐결핵을 앓았던 키츠는 1820년 이 집에서 최초의 각혈을 한다. 어머니와 동생을 이미 같은 병으로 잃은 시인은 자신의 어두운 운명을 절감한다. 그해 겨울, 약혼녀를 남겨둔 채 로마로 요양을 떠난 시인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로마의 프로테스탄트 묘지에 묻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런던 중심가로 돌아와 베이커 거리로 향한다. 베이커 거리 하면 많은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셜록 홈스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베이커 거리의 ‘셜록 홈스 박물관’은 1990년에 문을 연 장삿속 뻔한 박물관이지만, 매년 15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으로 홈스의 흔적을 찾으러 온다. 지하철 베이커스트리트 역에서부터 홈스의 실루엣, 홈스의 동상, 홈스의 빵집(?) 등이 수없이 나타난다.
템스 강에서 바라본 런던 시내. 왼쪽에 국회의사당과 빅벤이 보인다.
베이커 거리 ‘셜록 홈스 박물관’ 매년 150만명 찾아와
그런데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거실 소파에 놓여 있던 검은 양복의 마네킹(?)이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씨익 웃는 게 아닌가! 헉! 그는 껄껄 웃더니 ‘닥터 왓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넓지 않은 거실은 소설에서 보던 그대로다. 한쪽에 홈스의 바이올린과 화학 실험도구 테이블이 있고 가운데 탁자에는 홈스가 애용하는 둥근 체크 모자가 놓여 있다. 2층 옆방은 홈스의 침실, 3층은 왓슨 박사와 허드슨 부인의 침실이 꾸며져 있다. 3층에는 ‘6개의 나폴레옹 동상’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상도 있다.
소설 속에서 홈스는 ‘런던 최악의 하숙인’이라고 할 만큼 방을 어지르고 사는 사람으로 묘사돼 있지만 이 거실은 그런대로 말끔히 정리돼 있다. 실내에서 사진 한 장도 못 찍는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이곳은 사진촬영은 물론 ‘홈스의 소장품’도 만지고 써볼 수 있다. 자칭 ‘왓슨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 일본, 스페인,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박물관을 많이 찾는다. 요즘들어 한국 방문객의 수도 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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