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방조제 전경.
“와! 대단하긴 대단하다.”
“역사적 현장이라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네.”
4월25일 오후 2시.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가력도. 배수갑문 조작실이 자리한 한국농촌공사(사장 안종운·이하 ‘농촌공사’) 건물 앞에서 방조제와 바다를 몇 번이고 번갈아 둘러보는 관광객 30여 명의 입에서 탄성이 그치지 않는다.
4월21일, 마지막 미연결 구간인 가력도 방면 60m의 물막이 공사(2공구)를 끝으로 마침내 부안군과 군산시를 잇는 연륙(連陸) 길을 완성한 새만금 방조제의 총길이는 무려 33km.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시화방조제(경기 화성시)의 길이가 12.6km, 서산 A·B지구 방조제(충남 서산시)가 7.6km, 삽교천 방조제(충남 아산시)가 3.3km임을 감안하면, 그 엄청난 규모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관광객들 “대단하긴 대단하다”
가력 배수갑문.
방조제는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가력도-군산시 신시도-야미도-비응도를 잇는다. 이 중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구간은 부안의 가력도 개방구간 4.6km와 군산 비응도-야미도 구간 11.4km.
가력도 개방구간은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다. 일반인의 출입도 허용된다. 반면 비응도-야미도 구간은 비포장도로로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돼 있다. 대신 전북도가 관람객을 위한 셔틀버스를 하루 2회(오전 11시, 오후 3시) 운행한다.
가력도 인근의 새만금전시관을 찾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다. 1995년 건립돼 새만금사업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게 한 이곳을 방문한 연인원은 100만명. 4월25일 오후에도 전북 번호판을 단 개인차량은 물론 관광버스가 쉴 새 없이 몰려왔다. 자매결연을 맺은 경남 통영과 전주의 여성 의용소방대원들을 태운 견학버스도 눈에 띄었다.
세계 토목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누구보다도 자긍심을 갖는 이들은 방조제 건설의 당사자인 농촌공사 직원들. 취재팀이 찾아간 4월25일에도 농촌공사 이사들이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그들의 이구동성은 “역사적 현장에서 일하느라 수고가 많았다”는 것.
해수를 유통시키는 통로다. 가력도 개방구간의 방조제 위를 산책하는 관광객들. 방조제 단면 보강공사 작업(왼쪽부터).
1992년부터 방조제 공사에 참여해온 농촌공사 공무팀 오진휴(46) 과장은 “대법원 판결로 3월16일에야 겨우 막바지 공사가 재개됐는데 풍랑주의보가 내려질 만큼 기상여건이 좋지 않았다. 만일 방조제가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사정을 털어놨다.
이번 물막이 공사는 7392대의 육상장비, 바지선 등 618대의 해상장비가 동원될 만큼 간척 사상 유례없는 난공사였다고 한다. 농촌공사 새만금사업단 직원들은 공사기간 내내 인근 숙박업소 신세를 져야 했다. 식사도 거의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그러면서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작업에 뛰어들었다. 휴일도 따로 없어 조를 짠 뒤 교대로 집에 다녀오곤 했다.
간척 사상 유례없는 난공사
농촌공사로선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도 험난한 시련이었다. 방조제 공사를 진두지휘한 농촌공사 정한수(57) 새만금사업단장의 말이다.
“1999년 5월부터 시작된 민관 공동조사로 인해 2년 5개월간 공사를 중단했을 때와 2003년 7월 환경단체 측이 제기한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또다시 공사가 중단됐을 때 참으로 많은 회의를 느꼈다. 비록 당시 본공사는 못했지만, 이미 만들어둔 방조제의 유실 대비책을 강구하는 등 일은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쨌든 환경단체의 문제제기는 친환경적 개발을 위한 ‘소금’ 구실을 했다고 생각한다.”
새만금사업단 직원들은 환경단체 회원들이 새만금사업 반대 시위 때 함께 온 자녀들에게 “저 아저씨들은 생태계를 해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비하하던 일에 마음을 상한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다. 이때는 ‘건설역군’이라는 자긍심이 온데간데없을 만큼 괴로웠다고 한다.
가력도의 농촌공사 건물은 새만금사업단이 물막이 공사를 위해 상황실을 마련한 임시 근무처다. 공사추진반, 기술지원반, 상황반 등 3개 반으로 나뉜 70여 명의 직원이 3월13일부터 4월25일까지 이곳에서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일해왔다. 이제 이 건물은 방조제의 완공으로 가력 배수갑문 조작시설로 쓰인다. 새만금사업단은 4월26일 전북 김제시 신풍동의 농촌공사 건물로 원대복귀했다.
농촌공사 측의 도움을 받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방조제 구간을 승용차로 달려봤다. 부안에서 군산까지 방조제를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0분 남짓.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비포장길. 차가 요동칠 때마다, 빌려쓴 탓에 머리통보다 다소 큰 안전모가 차 지붕에 쿵 하며 부딪힌다. 전방과 후방은 온통 황톳빛. 좌우엔 짙푸른 바다뿐. 길 가장자리 곳곳엔 사석(沙石) 더미와 무게가 3t이나 되는 돌망태(많은 암석을 철선으로 엮은 그물 속에 넣어 복주머니 형태로 죄게 한 돌더미. 호안, 하천, 제방 등에서 급류를 제어하거나 생태계 보호용으로 쓰인다), 바다에서 퍼 올린 해사(海沙) 무더기가 사열대의 장병처럼 빼곡히 늘어서 있다. ‘장병들’ 틈으로 고군산 군도의 섬들과 고깃배들, 바지선이 드문드문 보였다가 이내 사라진다. 방조제에 갇힌 내륙 쪽 바다는 이미 잔잔한 호수로 변해 있다.
새만금사업에 반대해온 계화도 주민들이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 거대한 방조제를 쌓기 위해 투입된 연인원은 189만명. 중장비도 덤프트럭 22만7000대를 비롯, 총 82만8000대가 동원됐다. 바다에 쏟아부은 흙과 돌의 양은 9410만t 에 이른다. 이런 초대형 공사를 진행해왔으니 현장에서 안전사고도 빈발했을 성싶은데 동승한 농촌공사 오 과장은 의외의 답변을 던진다.
“믿기 힘들겠지만, 단 한 건의 인명피해도 없었어요. 보다시피 신호수들을 제외하곤 공사과정의 대부분을 기계가 대신하잖아요. 사람은 조작만 합니다. 그러니 트럭이나 굴삭기가 바다로 추락하지 않는 한 인명피해가 없을밖에요.”
내륙 쪽 바다는 이미 잔잔한 호수
새만금지역 위성사진. 점선 안 부분이 4월21일 완료된 마지막 물막이 공사 지역이다.
농촌공사와 전북도청은 물막이 공사가 끝난 4월21일에 이어 24일에도 새만금 방조제 중심부에 위치한 군산시 야미도 광장에서 ‘새만금 방조제 끝막이 성공 범도민 축하행사’를 열었다.
하지만 축제가 지나간 한쪽에선 시름도 한층 깊어져 있었다. 새만금 연안에 자리한 부안군 내 계화도. 이곳 주민들은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올 3월부터 3차례 해상시위를 벌여 공사를 일시 중단시키는 등 새만금사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수그러든 듯 시위 때 썼던 플래카드 하나가 계화초등학교 교문 앞에 달랑 걸려 있다. 방조제 완공 당일인 4월21일에 계획했던 해상시위도 강풍 때문에 철회했다.
계화초교 맞은편의 ‘새만금 연안 피해주민 대책위원회’ 사무실. 민봉환(54) 위원장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10명의 주민은 한결같이 실의에 빠진 표정이었다. 대뜸 방조제 연결 이후의 심경부터 물었다.
“막막하지. 우린 폐허 속에 남은 거야. 바다와 뻘이 우리 논밭인데 이젠 다 없어지게 됐잖아. 지금도 썩은 꼬막들이 막 나와. 새만금 연안의 어선 1200여 척 중 지금 조업하는 배는 10척 남짓이야. 이걸 무엇으로 보상할 건데? 우린 고기 잡고 조개 캐도 1년에 1500만∼2000만원씩 벌었어.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가 보상금이라고 내놓은 건 가구당 평균 650만원이야. 그걸로는 두세 달 먹고 살면 땡이야. 우린 속상해서 방조제 근처엔 가지도 않아.”
전체 450여 가구의 90%가량이 어업에 종사하는 계화도 주민의 주 수입원은 숭어, 뱀장어 치어, 백합, 죽합, 바지락 등이다. 하지만 방조제가 연결되면서 조수간만의 차가 없어져 패류 채취는 언강생심이다. 더는 산란을 하지 않으니 개체수가 점점 줄어 요즘 잡아내는 패류가 끝물인 셈. 백합과 바지락을 잡아 하루 6만∼7만원, 많게는 12만원씩 수입을 올리던 아줌마들이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오래 작업해도 2만∼3만원 버는 게 고작이라고 한다.
계화도 주민들은 한때 환경단체와 연대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계대책이 최우선이다.
“환경? 환경단체는 환경단체고 우리는 우리야.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환경?” 주민 전정일(60) 씨는 “물막이 공사 이후 조업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세상에서 가장 긴 방조제 인근에 사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 서글픈 사람들이 돼버렸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최근 10년간 새만금사업을 반대해온 전북환경운동연합(전주시 중노송동)은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직후인 4월24일부터 29일까지 사무실을 폐쇄해버렸다. 전북환경운동연합 김진태 사무처장은 “시대착오적인 간척사업에 대한 항의, 방조제 공사 이후 죽어갈 새만금의 갯벌과 뭇 생명을 애도하는 뜻에서 사무실을 잠정 폐쇄했다”며 “대법원의 공사재개 판결로 그동안 환경단체들이 기울인 노력은 물거품이 됐지만, 앞으로 수질오염 부분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수질오염 지속적 모니터링”
서울로 돌아오는 길목. 부안군 해창면의 작은 포구에서 주민 서넛이 백합과 바지락을 캐고 있다. 포구 주변엔 새만금 연안 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새만금사업 반대 시위를 벌이던 컨테이너 가건물도 늘어서 있다. 건물 벽면엔 스프레이를 뿌려 쓴 시위 구호들이 빛바랜 낙조 아래 퇴색해가고 있었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인가, 단군 이래 최대 생명파괴극인가. 방조제는 연결됐지만 사람들은 가고 없다. 농촌공사 직원들이 떠났고, 환경단체 회원들도 떠났다. 어민들은 정중동(靜中動)이다. 그러나 곧 돌아올 것이다.
2조1000여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투입된 공사. 그럼에도 조성될 간척지의 용도는 미정이다. 농촌공사가 2011년까지 방조제 내부 개발을 마칠 예정이지만, 간척지가 당초 목적대로 농지로 사용될 현실성은 희박하다. 국토연구원 등 5개 기관이 6월 말까지 토지이용 계획을 마련해야 그 윤곽이 조금이나마 드러날 판이다.
문득 가수 김광석의 노랫말 한 구절이 입안을 맴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새만금 갈등’은 2라운드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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