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거리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여기는 파리의 생 라자르 역.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역인 생 라자르는 파리 북쪽에 위치한 작은 역이다. 부지발이나 아르장퇴유, 노르망디 등으로 가는 기차가 여기서 출발한다. 오후의 역사는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오는 사람들로 붐볐다. 레일 위에는 날씬한 기차들이 이들을 태우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생 라자르 역 연작 소장한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150년 전, 저 레일 위에는 최신식 고속열차 대신, 푸욱푸욱 증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차들이 들어차 있었다. 기관차들이 내뿜는 증기는 역사 안을 구름처럼 부유하고, 역사는 자욱한 증기 때문에 한증막 속처럼 흐릿했을 것이다.
이 증기가 화가 클로드 모네를 매료시켰다. 당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인상파 화가 모네는 생 라자르 역 근처의 몽세 가 17번지에 스튜디오를 하나 얻었다. 그리고 이사하자마자 기차역을 소재로 한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1877년 4월 모네는 제3회 인상파전에 생 라자르 역을 그린 여덟 점의 연작을 출품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생 라자르 역 연작에 대해 “이 그림들에서는 기차의 굉음이 들리는 듯하고, 증기가 역사를 더듬으며 뭉실뭉실 떠가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고 호평했다.
파리 서쪽의 주택가인 라 무에트 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이 나온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모네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실상 모네의 개인 미술관이다. 왜 명칭이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인가 하면, 이 미술관이 마르모탕 일가가 만든 사립미술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66년 모네의 둘째 아들 미셸이 모네 집안에 남겨진 그림을 몽땅 마르모탕 미술관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이 해부터 미술관의 이름이 아예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에게 ‘인상파’라는 이름을 붙여준 그림 ‘해돋이-인상’도 이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지하에 마련된 모네 전시실은 생 라자르 역 연작 여덟 점 가운데 두 점, 런던 국회의사당, 루앙 성당 연작, 지베르니 정원의 다양한 풍경 등등 모네의 그림들로 가득하다. 특히 모네가 ‘물위의 정원’이라고 부른 지베르니의 연못과 그 위에 뜬 연꽃을 그린 작품들이 많다. 생 라자르 연작에서는 기관차의 증기가 대기에 흩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은 화가의 관찰력과 스피디한 터치가 돋보인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서 좀더 서쪽, 파리 시의 서쪽 경계선 부근까지 가면 센강 위에 놓여 있는 미라보 다리와 만난다. 미라보 다리는 센강의 다른 다리들처럼 멋지고 우아하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녹색의 철제 다리다. 하지만 미라보 다리에 얽힌 시인과 화가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 이 평범한 다리도 어딘가 달라 보인다.
1907년, 시인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화가 로랑생을 만났다. 두 사람은 모두 피카소가 ‘두목’으로 있는 집합 아틀리에 ‘세탁선’의 멤버였다. 두 사람은 세탁선의 수요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사랑을 키워갔다. 아폴리네르는 로랑생과 연애하던 당시 미라보 다리 근처에 살았다. 그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수없이 이 다리를 건넜을 테고, 마음은 곧 연인을 만나게 될 기대로 두근거렸을 게다.
◁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의 사연이 담긴 미라보 다리. <br>▷ ‘해돋이-인상’이 소장된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몽마르트르 아틀리에 ‘세탁선’에 피카소·로랑생 흔적 남아
피카소의 집합 아틀리에 ‘세탁선’.
그러나 이 빛나는 창작의 산실은 더 이상 관광객에게 문을 열지 않는다. 이곳의 내부는 1970년 일어난 화재로 모두 불타버렸다. 화가들이 좋아했던 미로 같은 내부에 막상 불이 붙으니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었다. 다행히 여기서 그려진 대부분의 그림들은 인근의 몽마르트르 미술관으로 옮겨진 뒤였다.
세탁선의 쇼윈도에는 젊은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의 흑백사진과 연필로 그려진 로랑생의 자화상이 전시돼 있다. 언제나 술에 취해서 몽마르트르의 카페에 나타났다는 모딜리아니,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담긴 그의 옆얼굴이 우수에 젖어 있다. 젊은 날의 피카소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미남이다.
로랑생의 연필 자화상에는 그녀의 서명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까만 눈동자의 그녀는 꿈꾸는 듯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그녀는 독일 남자와 결혼한 탓에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프랑스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는 기구한 삶을 살다 1956년 사망했다.
세탁선의 놋쇠 손잡이를 가만히 잡아본다. 피카소와 모디(모딜리아니의 별명)와 로랑생, 그리고 브랑쿠시와 아폴리네르가 젊은 꿈을 묻었던 이 공간. 이 문을 열고 안으로 성큼 들어설 수만 있다면….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햇살만이 세탁선의 초록 문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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