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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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서 기본소득 지급하니 부동산이 올랐다

[돈의 심리] 노동시간·수입 크게 줄어 정책 효과 의문… 정신적 안정은 긍정 효과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4-04-0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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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시민에게 매달 살아갈 수 있는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사람은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능력과 소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생계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고, 나아가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본소득 반대자들은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돈이 지급되면 많은 사람이 그냥 놀고먹으려고만 할 것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놀고먹으려고만 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고, 그래서 도움은 정말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줘야 한다는 논리다.

    단기 기본소득 제공 효과 없어

    다양한 실험을 통해 기본소득 지급 효과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GETTYIMAGES]

    다양한 실험을 통해 기본소득 지급 효과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GETTYIMAGES]

    기본소득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건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직접 실험해봐야 한다. 그래서 유럽 몇몇 나라가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핀란드는 2000명에게 2년 동안, 스페인은 1000명에게 2년 동안 기본소득을 제공해봤다.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았고, 수입도 늘지 않았다. 부가 축적되지 않았으며, 국가 전체적으로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기본소득이 별로 의미 없다는 이런 결과에 대한 가장 큰 반론은 실험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제공한 기본소득은 한 달에 약 80만 원으로 용돈 수준이었다. 기본소득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주었을 때 효과가 있지, 용돈 수준으로만 줘서는 제대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기본소득 제공 기간이 2년뿐이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2년 동안만 돈이 들어온다고 예상하면 사람들의 행동이 크게 변하기 힘들지만, 장기간 생활비를 대체할 돈이 들어온다면 기본소득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런 반론은 일리가 있다. 다만 유럽에서 장기간 이런 실험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든다.

    대안이 있다. 생활비가 적게 드는 지역에서 실험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한 달에 몇만 원만 있어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기브 디렉틀리(Give Directly)라는 비정부기구(NGO)는 2016년부터 아프리카 케냐에서 제대로 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케냐 주민 약 5000명에게 생활비로 충분한 돈을 12년 동안 지급하는 실험이었다. 이외에 7000명에게는 2년 동안만 지급해 기본소득의 장단기 효과를 살펴보려 했다. 그동안 기본소득 실험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단기간 지급, 용돈 수준의 지급 한계를 보완한 것이었다. 케냐 기본소득 실험에 대해서는 언론에 많이 소개가 돼왔다. 기본소득으로 창업한 사례, 빈곤에서 벗어난 사례,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실질적으로 삶이 나아지는 효과 등 긍정적 사례가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개별적 사례가 아니라 전체적 효과다. 기브 디렉틀리의 케냐 기본소득은 중요한 실험이다. 이 정책 실험의 효과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정기적으로 나오고 있다. 2016년 정책 실험이 시작되면서 바로 1년 이내 단기 효과가 어땠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고, 2018년에는 1년 이상 장기 효과에 대한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다시 기본소득의 장기 효과에 대한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해는 케냐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한 지 7년째다. 이제 기본소득의 장기 효과를 논의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됐다. 장기간 기본소득을 제공한 결과 어떤 변화가 발생했을까. 우선 기업이 늘어났다. 기업 수익이 늘고 순이익도 증가했다. 12년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2년간 지급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업이 늘어나고 수익과 이익이 증가되는 효과는 단기 지급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장기간 지급에서만 나타난 현상이었다.

    장기간 기본소득 제공에도 소득 그대로

    이를 보면 장기간 기본소득 지급은 분명 긍정적인 것 같다. 그런데 노동시간, 전체 수입 등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케냐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은 증가하지 않았다. 전체 소득도 늘지 않았다. 기업이 늘어나고 기업 소득과 이익도 크게 증가했는데, 전체 소득이 늘지 않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임금 노동자는 일하는 시간과 수입이 크게 줄었다. 기업 소득은 늘었지만 그만큼 임금 노동자의 수입이 줄었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소득은 그대로였다. 임금 노동자 수입이 줄어든 것은 일하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노동자가 기본소득을 받자 직장을 그만두고 더는 일하지 않은 채 놀고먹는 삶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2년 동안 단기 기본소득이 지급될 때는 노동시간이 줄지 않았다. 하지만 12년간 기본소득이 지급되자 사람들의 노동시간과 수입이 크게 줄었다.



    언론에서는 기본소득 지급으로 많은 사람이 창업을 했다고 얘기한다. 최종 결과를 보니 초기에는 자기 사업체를 창업해 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수익은 늘지 않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자기 사업 비중이 증가하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지급된 초기에는 창업을 많이 했지만 정작 이익은 내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자 사업체를 정리했다는 의미다. 이해하기 힘든 결과도 있다. 사람들의 소비가 늘지 않았다. 기본소득으로 돈을 더 많이 가지면 당연히 소비가 늘어나야 하지 않나. 단기간에는 소비가 늘어 음식도 더 많이 먹고 교육도 더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기간이 길어지자 교육 관련 소비는 별로 변화가 없었다. 음식을 더 많이 먹기는 했지만 전체 소비 수준은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 돈을 더 많이 받았는데 소비가 늘지 않았다는 건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돈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 돈이 어디로 갔을까.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기본소득 지급은 소비 증가보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증가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기본소득이 사회의 불공평을 치유했을까. 이것도 영향이 없었다. 부의 불공평도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소득과 소비의 불공평성도 이전과 차이가 없었다. 물론 차이가 생긴 것도 있었다. 주식, 저축 등 부동산을 제외한 가계 자산의 경우 불공평도에 차이가 발생했다. 그런데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차이가 생겼다. 자산 측면에서 불공평도가 더 심해진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지급되는 돈을 모으는 사람과 돈을 쓰기만 하는 사람 간 차이가 커졌다는 의미다.

    기본소득 지급으로 아주 긍정적 변화가 발생한 부분이 있다. 바로 정신 건강이다.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줄고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는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항상 나타나는 효과다. 만족도 증가는 케냐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기본소득 실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기본소득은 분명 사람들의 만족도를 키우는 효과가 있다. 기본소득 실험 결과 보고서들은 계속해서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브 디렉틀리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단체이니 기본소득에서 가장 긍정적 결과가 나온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먹을 빵이 없어요” “돈이 있으면 학교를 다닐 수 있어요” “돈이 있으면 사업을 해서 가족이 먹고살 수 있어요”라고 한다면 돈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주면 제 기분이 좋아져요”라고 한다면 이때는 돈을 줄 수 없다. 정신적 만족도가 높아지니 기본소득을 제공하자고 한다면 그 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반발할 것이다.

    돈 필요한 이들을 지원하는 게 나아

    결국 케냐의 장기적인 기본소득 효과를 따져보면 열심히 뭔가 해보려는 사람은 기본소득으로 큰 이익을 봤다. 반면 대다수 사람에게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돈을 그냥 주니 더 많이 먹고, 자산 가격이 증가하며, 기분이 좋아졌을 뿐이다. 이것도 긍정적 효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기본소득 지급으로 엄청난 돈을 썼다는 점을 고려하면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냥 처음부터 돈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지원을 해주는 게 나았을 것이다. 케냐 기본소득 실험 결과 보고서를 읽으면서 얻은 결론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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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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