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서울 하이브 본사 건물 앞에 전광판 트럭이 세워졌다. 연예기획사 앞 트럭은 K팝 팬덤이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이번이 조금 다르다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관한 메시지라는 점이다. 시위를 주도한 ‘아미 포 팔레스타인(ARMY 4 PALESTINE)’은 3월 23일(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하이브 아메리카 사옥 앞에서 팬들이 오프라인으로 참석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주된 어젠다는 스쿠터 브라운 하이브 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를 퇴출하라는 것이다. 브라운은 유대민족주의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야외 음악 페스티벌 현장의 하마스 공격을 규탄하고 인질 석방을 요구했으며,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한 미국 연예계 유명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공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이브가 BTS를 비롯해 르세라핌, 뉴진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세븐틴 등 다수의 거물 K팝 아티스트를 보유한 만큼 사안은 더 많은 팬덤으로 번졌다. SNS상에는 팬덤별, 국가별로 팔레스타인 지지 계정이 잇따라 등장해 여러 단체와 연대하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이브 콘텐츠 불매, 이스라엘 아티스트가 참여한 곡 불매, 기타 이스라엘 지지 기업 불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가자지구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데 필요한 전자 심카드 단체 구매, 생필품·의약품 지원 등도 활발하다. 또한 한국과 팔레스타인이 공유하는 식민지로서 역사성을 짚어내기도 하고, 세간의 흔한 논리적 오류를 필사적으로 반박하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민족국가를 건립하는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것이 ‘반유대주의’는 아니라는 점 말이다. 이스라엘인에게 인권과 평화가 중요한 만큼, 팔레스타인인에게도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현실이 된 팬덤 액티비즘

‘아미 포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두른 보라색 고래 이미지를 사용한다. BTS의 곡 ‘Whalien 52’에서 유래한 이 고래는 고립된 자의 외로운 싸움과 연대, 희망을 상징한다. ‘뉴스를 봐도 아무렇지 않다면… 넌 정상 아닌 게 비정상’이라는 ‘Am I Wrong’ 가사를 비롯해 BTS 멤버들의 어록이나 가사에서도 용기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같은 K팝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우리의 평범한 친구들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지켜보는 국내 팬 중 적잖은 이가 공통적으로 충격받은 것이 또 있다. 해시태그 “#하이브시오니스트를제거하다” 등 다국어로 이뤄진 이들의 텍스트에서 한국어가 매우 어색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첫 성명 이후 올해 3월 들어서야 “#하이브는시오니스트를퇴출하라”로 수정됐다. 한국인이 이 운동에 얼마나 무심한지를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분명 K팝에는 정치를 멀리 하려는 관성이 있기는 하다.



세계 곳곳의 민주화운동이나 흑인 인권운동 현장에서 K팝이 들려오고 팬덤이 운동에 적극 가담하는, 일명 ‘팬덤 액티비즘(Fandom Activism)’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치에서 떨어진 순백의 K팝 세계는 이미 불가능해졌다. K팝이 세계의 것이 됐을 때 세계인의 다양한 정체성과 신념에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의 피폭된 폐허에서 BTS 포토카드가 발견된 영상은 이를 웅변한다. 팬덤의 정치 참여가 어디까지 가고, 이 산업과 세계는 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이며, 팬덤은 세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 답은 ‘아미 포 팔레스타인’에서 찾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