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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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지원금 25만 원 지급하면 주식·부동산 오른다

[돈의 심리] 인플레이션 유발해 모든 국민이 손실 보는 정책… 부익부 빈익빈 일으켜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4-04-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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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정당이 전 국민에게 민생지원금 25만 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 몇십만 원을 줬던 것처럼, 이번에도 모든 국민에게 25만 원을 지급하자는 얘기다. 고민에 빠진다. 찬성해야 하나, 반대해야 하나. 물론 내가 찬성하거나 반대한다고 해서 민생지원금 정책 시행에 어떤 영향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경제 정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고민이다. 이 정책을 찬성해야 할까, 반대해야 할까.

    몇 년 전이라면 분명 반대했을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때 모든 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에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이와 관련에 신문에 칼럼도 썼다. 혹자는 전 국민에게 주는 재난지원금, 민생지원금에 왜 반대하는지 의문을 표한다.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준다면 반대할 수 있다.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준다고 해도 반대할 수 있다. 세금을 걷어 지원금을 준다고 하면 세금을 내는 사람은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 국민 지원금은 그런 게 아니다. 그냥 모든 국민에게 돈을 나눠준다. 손해 보는 사람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 그런데 왜 반대할까. 전 국민 지원금에 반대하는 이들을 누가 잘되는 걸 못 보는 속이 꼬인 사람, 혹은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일 자체를 반대하는 꼰대로 보기도 한다.

    당장 좋아 보이지만 부작용 야기해

    많은 이가 전 국민 지원금을 찬성하더라도 최소한 경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대부분 반대한다. 나도 경제학을 전공했다. 전 국민 지원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 국민 지원금은 당장은 좋아 보여도, 결국 국민 대부분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득이지만 앞으로 더 큰 손실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면 그런 정책에 찬성할 수 없다.

    유명한 한류 드라마로 ‘별에서 온 그대’가 있다.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은 외계인으로 시간 멈춤, 공간 이동, 염력 등 각종 초능력을 구사할 수 있다. 극 중에서 도민준의 정체를 알고 있는 변호사가 도민준에게 묻는다.

    “그런 능력을 이용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지 않습니까.”



    도민준은 처음 조선시대에 왔을 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도박으로 돈을 잃어 속상해하는 사람을 도와 돈을 따게 해줬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도박에서 큰돈을 버는 손맛을 잊지 못해 도박중독자가 됐다. 나중에는 모든 재산을 도박판에 바치고, 자기 딸을 도박에 거는 파렴치한이 돼버렸다. 처음에 돈을 따지 않았다면 다시는 도박판을 기웃거리지 않았을 텐데, 도민준이 도와주는 바람에 결국 인생이 망한 것이다. 도민준은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결국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굉장히 신중해졌다. 지금 당장 좋아 보이는 일이 나중에 더 나쁜 결과를 야기한다면 결코 실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좋지만 결국 더 나빠지는 것, 경제학에는 그런 일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경제학은 일반인이 좋다 하고 찬성하는 것들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월급이 많아지면 분명 좋은데, 경제학은 모든 국민의 월급이 다 올라가는 데 반대한다. 정부가 나서서 물가가 오르지 않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경제학은 그런 물가 억제를 반대한다. 지금 당장은 좋아 보여도 나중에는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전 국민 지원금을 반대하는 이유도 같다. 지금 당장은 좋다. 하지만 분명 나중에 더 큰 손실이 온다.

    전 국민에게 주는 민생지원금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GETTYIMAGES]

    전 국민에게 주는 민생지원금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GETTYIMAGES]

    물가 1%는 오를 것

    전 국민에게 돈을 나눠 줬을 때 문제점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돈을 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돈을 일률적으로 나눠 주면 대부분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코로나19 사태 때 전 국민에게 인당 몇십만 원의 재난지원금이 지급됐다. 공돈이 생기니 좋다. 재난지원금이 손에 들어왔을 때 싫어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진짜 이득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2022년 물가상승률은 5.1%였다. 코로나19 사태로 돈 풀기가 진행되면서 평소보다 물가상승률이 훨씬 높아졌다. 물가상승률 5.1%면 자기 소득의 5.1%가 그냥 사라진다는 의미다. 2000만 원 소득인 사람은 100만 원가량이 날아갔고, 4000만 원 소득인 집은 200만 원이 날아갔다. 재난지원금으로 100만 원을 받았는데, 이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200만 원이 사라진다면 그건 분명 엄청난 손해다. 차이는 지원금 100만 원은 자신이 인식하는 이득이지만 물가상승,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손해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모르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시스템을 알면 전 국민 지원금을 찬성할 수 없다. 경제 전문가들이 전 국민 지원금을 반대하는 이유이고, 나 역시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다시 한국에서 전 국민 지원금 얘기가 나온다. 그럼 이번에도 나는 반대 입장이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애매하다. 이걸 찬성해야 하나, 반대해야 하나. 인플레이션은 국민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것 외에 큰 부작용이 하나 더 있다. 빈익빈 부익부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경제 정책들은 보통 빈부격차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빈익빈 부익부는 아니다. 가난한 사람의 소득은 조금 오르는 데 반해, 부자의 소득은 많이 올라 빈부격차가 심해진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빈익빈은 아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임금 소득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 임금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적게 오른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은 더 떨어진다. 빈익빈이다. 그 대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주식,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다. 인플레이션보다 더 오른다. 그래서 주식,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인플레이션, 물가상승기에 재산이 늘어난다. 코로나19 사태 때 세계 각국이 돈을 풀었고, 이에 전 세계 주식, 부동산값이 폭등했다. 당시 자산 가격 상승으로 새롭게 부자가 된 사람도 많다. 실제로 나 역시 코로나19 사태 때 재산이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자산시장이 붕괴하면서 주식 등이 대폭락해 엄청난 손실을 봤지만, 세계 각국 정부가 돈 풀기에 나서면서 자산 가격이 급상승해 오히려 재산이 증가했다.

    경제학자라면 민생지원금 반대해야

    지금 정부가 전 국민 지원금을 풀면 어떻게 될까. 물가가 오를 테다. 5%, 10%씩 크게 오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현 수치에서 1%가량은 오를 것이다. 물가가 1% 오르면 주식, 부동산 가격은 이보다 더 크게 상승한다. 자산이 없는 사람은 실질소득에서 손실을 보겠지만, 자산이 있는 사람은 큰 이득을 본다. 이전에는 빈익빈 부익부를 발생시키는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에 반대했다. 소수의 사람만 이익을 보고 국민 대부분은 어려워지는데, 그런 정책을 찬성할 수는 없지 않나.

    다만 지금 나는 인플레이션으로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자산을 가진 소수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 유발 정책, 전 국민 지원금 정책에 적극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전 국민 지원금은 지금 당장 좋아 보이지만,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결국 모든 국민이 지원금보다 더 손실을 보는 정책이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또 양심을 가진 학자로서 결코 찬성할 수 없다. 그런데 개인 입장에서 전 국민 지원금은 내 재산을 다시 한 번 크게 늘릴 수 있는 정책이다. 전 국민 지원금은 물가를 상승시킬 테고, 그럼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나는 큰돈을 벌 수 있다. 나 개인의 이익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데, 국가 전체에 대한 영향이 어쩌고 하면서 반대해야 하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전 국민 지원금에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닐까. 민생지원금을 찬성해야 하나 고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돈 때문에 평생 유지해온 경제 논리와 학자로서 양심을 버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큰돈을 벌게 해주니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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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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