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공군이 운용하던 MIG-23 전투기. [위키피디아]
최근 우크라이나 일선 부대 장병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문제는 올해 초 이후 급격히 증가한 러시아군의 공습이다. 개전 초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우크라이나군의 서방제 방공무기에 큰 피해를 입은 러시아 항공우주군은 화력 투사 면에서 크게 위축된 터였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이 전투기·공격기 운용 전술과 무기를 바꾼 후 전력 손실이 크게 줄었고, 반대로 우크라이나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우크라이나군 드론도 전세 역전에는 역부족
우크라이나군 장병이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미래 전력으로 각광받는 드론도 대규모 화력 공세에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러시아군은 옛 소련 시절부터 포병 화력을 대단히 중시해왔다. 군단급 부대인 제1근위전차군의 경우 예하 각 사단에 포병연대를 하나씩 두고, 이와 별개로 군단 직할 포병여단과 미사일여단을 둘 정도다. 각 사단 포병연대는 108문의 자주포와 18~36문의 다연장로켓시스템이 편제돼 있고, 군단 직할 포병여단과 미사일여단에는 대구경 다연장로켓이나 이스칸데르 같은 전술탄도미사일이 배치돼 있다. 러시아는 신속기동부대 성격으로 감편(減編) 편성한 대대전술단(BTG)에도 자주포와 다연장로켓포 각각 1개 포대를 배속할 만큼 포병에 ‘진심’이었다.
그런데 러시아군의 오랜 포병 중시 전략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겪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포병 전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데는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평시에 화포와 탄약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명중률이 급감한다는 것이다. 화포가 오래돼 포신이 심하게 마모되거나, 추진 장약 불량 탓에 약실에서 불완전연소가 일어날 경우 포탄은 제대로 날아가지 못한다. 화포는 기상 상황 영향도 많이 받는다. 목표 상공 일대 기상 조건을 사격 제원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최대 ㎞ 단위 오차가 생기기도 한다.
개별 포탄 위력이 생각보다 약한 점도 한계다. 152㎜ 또는 155㎜ 곡사포탄 1발은 40~44㎏ 수준인데, 여기서 폭발물은 7㎏ 정도이고 나머지는 금속외피 무게다. 7㎏ 폭발물이 터지면서 나머지 금속외피를 사방으로 비산시켜 살상력을 얻는 것이다. 이 포탄 1발의 유효 살상 반경은 50m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러시아 항공폭탄이 전장을 지옥으로”
반면 가장 흔히 쓰는 500파운드급 항공폭탄 1발은 폭발로 생기는 화구 직경만 8m에 달하고, 반경 250m에 유효 피해를 입힌다. 항공기에 실리는 항공폭탄은 정밀 조준돼 투발되기 때문에 명중률도 높다. 위력도 강력해서 표적에 소량만 투하해도 된다. 반면 포병 포탄은 공산오차와 위력 부족 등을 감안해 많게는 수십 발을 쏴야 한다. 러시아군이 개전 초 엄청난 양의 포탄을 쏟아부으며 우크라이나군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게 이 때문이다. 포탄 위력이 약하고 명중률도 낮다 보니 우크라이나군의 요새화된 참호 진지에 ‘유효타’를 꽂기가 어려웠던 것이다.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는 포병 화력 의존도를 줄이고 전투기·공격기로 항공폭탄을 투발하기 시작했다. 당초 러시아의 항공화력지원 전술은 로켓탄 발사기를 장착한 항공기가 적진 위로 진입해 2~3㎞ 거리에서 로켓을 쏘고 이탈하는 방식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공포나 지대공미사일 위협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를 파악한 러시아는 지난해 말 전술을 바꿔 짧게는 10~20㎞, 길게는 70㎞ 떨어진 지역에서 미국 항공직격탄(JDAM)이나 한국형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유도폭탄(KGGB) 같은 활공유도폭탄을 투하하고 나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데 쓰고 있는 FAB-1500 활공유도폭탄. [러시아 국방부 제공]
전장에서 활공유도폭탄이 위력을 떨치자 러시아는 항공 화력 투발 플랫폼을 크게 늘리기로 결정했다. 가장 싸고 빠르게 전력을 강화할 카드로 꺼내 든 게 퇴역 전투기 복원이다. 최근 미국과 폴란드 군사 전문매체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1990년대 초 퇴역한 MIG-23과 MIG-27을 유도폭탄 투발 플랫폼으로 복원하고 있다. 유도폭탄 플랫폼으로 MIG-23과 MIG-27이 선택된 이유는 이들 기종이 엔진 하나짜리 단발 전투기인 데다, 퇴역 후 보관 중인 기체와 부품이 넉넉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날개가 움직이는 가변익 전투기라 비교적 짧은 활주로나 임시 비행장에서 운용하기 쉽고, 저고도 고속 침투가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날개와 동체 하단에 최대 4t의 각종 무장을 탑재할 수 있어 화력도 강한 편이다. 격추되더라도 어차피 치장 물자에서 꺼내 온 자산이기에 비용 부담도 적다.
구형 전투기 ‘폭탄 배달부’로 개조하는 러시아
사실 러시아가 MIG-23과 MIG-27에 기대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전투기로서 역할이 아니라, 적진에 활공유도폭탄을 떨어뜨리는 ‘폭탄 배달부’에 가깝다. 실제로 이들 모델이 복원돼 임무에 투입된다면 최저 비용으로 최고 효율을 내는 이른바 ‘가성비’ 무기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장에서 드론이 비슷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범용성이나 파괴력 면에서 전투기를 따라갈 수는 없다.MIG-23과 MIG-27을 복원해 전장에 투입하려는 것은 러시아가 별나서가 아니다. 최근 폴란드의 FA-50 구매를 시작으로 유럽 각국이 동급 경전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인 미 공군도 T-7A 훈련기 도입을 준비 중이고, 이와 별개로 고등전술훈련기(ATT) 대량 구매도 추진하고 있다. 찰스 브라운 미 합참의장은 공군참모총장 시절 스텔스 전투기를 슈퍼카에 비유하며 “누구도 회사나 마트에 갈 때 페라리를 타지 않는다. 그건 주말에나 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근접 항공 지원이나 유도폭탄 투발 등 간단한 임무에 획득·유지비가 대단히 높은 5~6세대 전투기를 쓰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서 세계 여러 나라가 하이(high)급 전력으로 5~6세대 전투기를 찾으면서도 지상 화력 지원 임무에 사용할 저렴한 옵션도 함께 물색하고 있다. 이런 옵션으로 각광받는 것이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평시에는 훈련기로도 사용 가능한 ‘전술입문기’ 성격의 항공기다. 현 시점에서 한국 FA-50이 독보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항공기 유형이다.
정부가 FA-50 개량 적극 지원해야
한국 FA-50 경전투기. [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FA-50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최근 4.5세대급 경전투기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 보고, FA-50의 후방석을 제거하고 연료탱크를 추가하는 형태의 단좌형 기체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비 356억 원이 투입되는 이번 개량이 완료되면 내부 연료탱크 용량이 늘어 FA-50의 공대공·공대지 작전 반경은 30%가량 향상될 전망이다. 그런데 356억 원은 항공기 개조 비용으로선 대단히 적은 액수이고, KAI가 발표한 개량 내용 역시 FA-50의 잠재 능력을 100% 끌어내는 수준은 못 된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아무래도 이번 사업이 정부 지원이 아닌, 업체 주도로 추진되다 보니 투자 금액에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세계 전투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국은 시장 수요에 가장 빨리 응할 수 있는 FA-50이라는 최적의 플랫폼을 갖고 있다. 그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선 업체 주도로 진행되는 이번 개량을 정부가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레이더와 항공전자장비, 무장 등으로 개량 폭을 확대한다면 4.5세대 경전투기 역주행 열풍의 최대 수혜국은 한국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