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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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디플레이션 수출에 맞서 美 ‘슈퍼 301조’ 카드 꺼낸다

대선 앞둔 바이든과 트럼프, 경쟁적으로 ‘중국 때리기’ 나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5-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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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플레이션 수출’은 경기침체를 겪는 중국이 과잉 생산된 제품들을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 초저가로 수출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내수 소비가 부진해 재고가 폭증하는 디플레이션을 겪게 되자 자국 제품을 헐값에 내다 팔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저가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중국 직접구매(직구) 기업이 전 세계 소비시장을 휩쓸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제공]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저가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중국 직접구매(직구) 기업이 전 세계 소비시장을 휩쓸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제공]

    “중국, 경쟁 아니라 부정행위 해”

    중국산 초저가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들은 물가하락으로 경제 회복이 더뎌지는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더욱이 초저가 제품이 대량 수입되면 그만큼 해당 국가의 산업 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당장은 값싼 제품을 소비하는 장점이 있지만, 경쟁에서 밀린 해당 국가의 산업이 붕괴되면서 고용과 소비 감소 등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중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 저가 제품을 대거 수출하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중국 저가 제품을 수입한 나라들은 제조업 기반이 붕괴하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하는 이른바 ‘제1차 차이나 쇼크’를 겪었다. 해외 각국이 지난해 말부터 중국산 초저가 제품의 대규모 수입에 따른 ‘제2차 차이나 쇼크’로 경제난에 직면해 있다. 자국 기업이 값싼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려면 밑지는 수준으로 가격을 낮춰야 한다. 결국 각국 기업은 파산할 수밖에 없으며,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업률도 급등하게 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 17일(이하 현지 시간) 철강 산업 메카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방문해 철강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면서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를 현행 7.5%에서 25%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철강업체들은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많이 주기 때문에 이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들은 경쟁하는 게 아니라 부정행위를 한다”고 지적했다.

    백악관 측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지시가 USTR이 중국에 대한 무역법 301조 적용을 검토한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슈퍼 301조’로 불리는 무역법 301조는 교역상대국의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인 무역 행위 또는 특정 수입 품목으로 미국 내 산업에 차질이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대통령 권한으로 무역 보복을 허용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미국 의회는 1988년 무역법 301조에 슈퍼(super)라는 단어를 추가한 슈퍼 301조를 새롭게 통과시켰다.



    슈퍼 301조는 외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에 대한 보복을 규정한 무역법 301조보다 더욱 강력한 제재 조항을 담고 있다. 가령 장난감을 덤핑했을 경우 장난감 외 다른 품목의 수입도 제한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오죽하면 ‘전가의 보도’로 불릴 정도다. 당초 슈퍼 301조는 2년 한시 특별법이라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인 1990년 폐지됐지만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활시켰다. USTR은 그동안 슈퍼 301조를 적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 때 시행했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조치를 갱신할지 여부를 검토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중국의 과잉 생산에 따른 저가 제품 수출, 이른바 디플레이션 수출을 막기 위해 슈퍼 301조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백악관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 등 지원 정책에 따라 철강·알루미늄 등 저가 제품이 양산되고 있다면서 미국의 고품질 제품이 저평가받고 불공정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한 보복 조치 준비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맨 앞)이 4월 17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방문해 중국산 철강 관세를 3배 올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맨 앞)이 4월 17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방문해 중국산 철강 관세를 3배 올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백악관 지적처럼 중국 정부 측에 디플레이션 수출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또한 중국 정부가 경기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자국 제조업을 강화하고 저가 제품을 해외에 대량 수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실제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4월 4일부터 10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과잉 생산에 대한 미국 정부 측 우려를 전달했다. 중국 정부가 이를 무시하자 슈퍼 301조 카드를 꺼낸 셈이다.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4월 16일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의 불공정한 정책이 미국 전역 노동자와 산업을 황폐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이 대표는 또한 “중국 정부가 특정 상품의 생산을 중국으로 집중시켜 공급망을 약화하고 장기적으로 공정한 경쟁이 가져올 혁신과 선택권을 박탈해 소비자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중국의 불공정하고 비시장적인 관행에 맞서 계속 싸울 것”이라며 “이를 위해 슈퍼 301조를 포함한 보복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USTR은 전미철강노조를 비롯해 5개 노조단체가 조선·해운·물류 분야에서 중국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관행을 조사해달라고 청원한 것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작했다. 5개 노조단체는 4월 12일 USTR에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그 내용은 슈퍼 301조에 근거하고 있다. USTR은 청원서를 접수하면 45일 내로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타이 대표는 “조선·해운·물류 분야를 중국이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전면적이고 철저한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USTR이 조사를 마무리하면 슈퍼 301조를 적용해 중국에 보복 조치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USTR은 바이든 대통령 지시에 따라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우회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제품도 조사할 방침이다. 중국 등에서 제조한 철강·알루미늄 제품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멕시코를 통해 면세를 받은 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관세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경제 회복을 이유로 들지만 실상은 초저가 제품의 대량 수출 덕분이다. 중국 해관총서의 1~2월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총수출입액은 6조6100억 위안(약 1247조5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7% 늘었다. 특히 수출액은 3조7500억 위안(약 707조73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3%나 증가했다. 중국 초저가 제품은 동남아 시장 질서를 망가뜨린 데 이어 중남미까지 퍼졌고, 미국과 유럽연합 등 각국에 물밀듯이 들어가고 있다.

    중국은 최근 수요가 둔화했음에도 가격을 대폭 인하해 전기차와 배터리 등 첨단 제품도 대거 수출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이 선진국을 넘어 개발도상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제1차 차이나 쇼크 때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이 커진 만큼 파급력 역시 커지리라 전망한 것이다.

    노동자 표심 잡아라

    1990년대만 해도 중국의 전 세계 제조업 점유율은 10% 아래였고 수출도 5% 미만이었다. 2022년 기준으로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31%, 전체 제품 수출의 14%를 차지했다. 데이비드 오터 미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 경제학 교수는 “중국이 과거와 달리 전기차, 컴퓨터, 반도체 등 첨단 제품을 저가에 대량 수출할 경우 제2차 차이나 쇼크로 선진국들의 첨단 산업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슈퍼 301조 카드를 꺼내 든 것은 11월 5일 시작되는 대선을 염두에 두고 ‘경합 주(swing states)’의 노동자 표심을 겨냥한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 대선에서 최대 변수로 꼽히는 경합 주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북동부 공업지대다.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20명), 미시간(16명), 노스캐롤라이나(15명), 위스콘신(10명), 오하이오(17명) 등이 여기에 속한다. 미국 역대 대선을 보면 경합 주들에서 승리한 후보가 대권을 차지해왔다.

    러스트 벨트에선 중국산 제품 때문에 지역 사회가 공동화되면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일자리 200만여 개가 사라진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 표심을 끌어오고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이에 대해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경합 주 노동자들이 이번 대선 결과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전환 정책 폐지,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 부과 등 과격한 공약을 내걸고 노동자 표심을 공략하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에 따른 제2차 차이나 쇼크를 막으려면 슈퍼 301조라는 강경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WSJ는 “두 후보 사이에서 최고 보호무역주의 통수권자가 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두 후보 모두 중국에 대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제한을 둘 계획이 없다”고 분석했다. 두 후보는 더욱 경쟁적으로 ‘중국 때리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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