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9

2007.08.21

카리스마 부재가 ‘그들’을 불렀다

전현직 대통령 4인 대권 입김 가열 … 저마다 다른 후보 지원 ‘막후 전쟁’

  • 최진 고려대 연구교수·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입력2007-08-14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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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리스마 부재가 ‘그들’을 불렀다

    7월29일 충북 청주 라마다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가칭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 충북도당 창당식에 참석한 대선주자들(아래).

    요즘 대형 서점 신간코너에 가면 ‘두 눈 부릅뜨고 살아 움직이는 박정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총 13권짜리 ‘박정희 대전집’을 비롯해 ‘박정희를 말하다’ ‘박정희 다시 태어나다’ 등 마치 28년 전 고인이 된 그가 책으로 부활한 듯하다.

    특히 ‘박정희 다시 태어나다’의 표지는 “육영수 여사가 평소 좋아했던 목련을 모티프로 디자인했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포스트 박정희 신드롬의 도래’를 강조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박근혜 신드롬’과 ‘박근혜 카리스마’라는 제목의 책이 보여 부녀지간에 정치적 자산을 대물림하는 느낌을 준다. 신간코너에는 이 밖에도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홍보성 저서와 심지어 전두환 만화, 노태우 회고록 같은 책도 있다.

    어느 대선보다 복잡한 양상

    이번 대선은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현직 대통령 4명이 저마다 다른 방향에서 다른 후보를 지원하는 ‘대통령들의 막후전쟁’ 양상을 띠고 있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서 6억원을 수수한 사건이 쟁점화할 경우, 자칫 5명의 대통령이 대선 정국에 휘말릴 수도 있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동선(動線)을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관전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카리스마적 리더들의 재등장 현상이다. 요컨대 박정희=박근혜, 김영삼=이명박, 김대중=범여권 후보, 노무현=친노(親盧) 후보를 지원하는 4인4색의 용호상박 형국이다. 동시에 해묵은 박정희 대 김영삼-김대중 대결구도, 양김의 경쟁관계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노무현, 이명박, 손학규 등 3인의 충돌구도가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지역성과 같은 복합적 요소들이 잠복해 어느 대선보다 복잡하다.



    특히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대선 예비후보의 경우 김영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혼신을 다해 지원하는 모양새다. 이 후보는 몇 가지 정치적 부담에도 부산 경남의 상징성과 옛 민주계 인사들의 당내 지지기반 확대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과 손잡았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이 후보에 대해 사실상 공개 지지선언을 했고, 상도동계 사람들은 총출동 명령을 하달받은 듯 이명박 캠프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박 후보의 경우 비록 고인이 된 아버지이지만 ‘박정희 신드롬‘과 ‘박정희 향수’ ‘박정희 후광’의 이름 아래 살아 있는 누구보다 전폭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다만 아버지의 후계자나 다름없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26 직후 제공했다는 6억원은 여전히 대선 정국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박 후보는 아버지 사후 18년 동안 칩거의 나날을 보내며 권력의 허무함과 배신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는데, 그런 소회에는 3공과의 차별화를 꾀했던 전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김심(金心)’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특정인에 대한 호불호를 유보한 채 범여권 대통합을 촉구하고 있다. 동교동계 핵심인 설훈 전 의원이 손학규 캠프에 참여하면서 ‘김심=손학규’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정치 9단인 김 전 대통령이 그렇게 빨리 특정 주자를 지지할 리 만무하다. ‘김대중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책 제목처럼 김 전 대통령은 대통합의 막판까지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시점에 극적인 방식으로 범여권 단일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의 경우 이미 고건 정운찬 김근태에 이어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에 대해서도 기관총을 난사하듯 전방위 공세를 퍼붓고 있다. 결론적으로 눈에 보이는 김심과 노심 외에 박심과 또 다른 김심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형국이다.

    국민 정서상 부정적 여론 우세

    아마 우리나라 대선 역사상 이번처럼 전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깊이 개입한 적도 없을 것이다. 97년 대선 때 이인제의 박정희 흉내내기, 퇴임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돌출발언이 있었지만 현직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선 적은 일찍이 없었다. 미국의 경우 2004년 대선 당시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아들인 현직 대통령 부시를 지원하고, 민주당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존 케리 후보를 지원했으며, 케리 후보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활용하려 애썼던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감정대립 양상은 아니었다.

    이번 대선에 유난히 전현직 대통령이 개입하게 된 이유는 우선 카리스마 부활심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양김시대 이후 정치권의 구심점이 없어졌고, 범여권 후보가 난립하는 진공 상황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전현직 지도자들이 재등장하게 됐다. 이어 권위주의 해체와 더불어 도래한 권력의 개방화 현상이다. 현직 대통령의 총선 출마설이 나올 정도로 권력의 틀이 바뀌어 이제는 누구나 대선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정권재창출 강박감도 한몫한다. 2008년 총선과 퇴임 이후의 포석을 의식한 노 대통령이 대선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국민 정서상 전현직 대통령들의 대선 개입에 대해선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전현직 대통령의 현실정치 개입 수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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