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주고 싶어도 시큰둥한 黨](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9/09/30/200909300500007_1.jpg)
9월16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선진화를 추구하는 초선의원 모임에 참석한 정몽준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9월22일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된 직후 친박 진영의 한 의원과 엔빅스팀 멤버들이 여의도의 식당에 모였다. 당연히 화제는 ‘정운찬 청문회’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 후보자로 발탁하자 곧바로 ‘박근혜 대항마’로 뽑혔다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정 후보자를 그다지 경계할 필요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청문회에서 불거진 백화점식 의혹들도 그렇지만,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계획의 원안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함으로써 그의 고향인 충청권에서 완전히 눈 밖에 난 까닭이다.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때마다 캐스팅 보트를 쥐는 충청권의 민심이 등을 돌리면 대권으로 가는 길은 까마득해진다. 정 후보자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청문회에서 “대통령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친박 진영에선 이 같은 발언을 계기로 정 후보자가 대권주자군에서 탈락한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좋은 징후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오히려 모처럼 조성된 긴장감이 풀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 전 대표가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시기를 되돌아보면서 경쟁자 없는 독주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자각을 하던 터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엔빅스팀 모임에서는 또 한 명의 ‘박근혜 대항마’로 꼽히는 정몽준 대표를 흔들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전언이다.
의원들과 잇단 회동, 勢 키우기 열심
모임에 참석한 친박 진영의 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 초기와 달리 지금부터는 박 전 대표가 ‘포스트 MB’ 구도에서 독주할 경우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혼자 맞게 된다”며 “여권 내부나 야권의 공격 목표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정 대표를 도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 진영의 또 다른 의원은 좀더 노골적으로 정 대표를 배척해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차피 친이(親이명박) 핵심에서도 정 대표를 사석(捨石·바둑에서 버리는 돌)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초에 있을 조기 전당대회까지만 여당을 이끌어갈 관리형 대표로 생각할 뿐 친이 진영이 내세울 차기 주자로 여기진 않는다. 우리 처지에선 괜히 정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 힘을 소모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정 대표의 생각과 각오는 다르다. 당 대표를 언제까지 할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에는 자리를 충분히 활용해 자신의 최대 약점인 당내의 세(勢) 부족을 조금이나마 만회하겠다는 생각이다. 취임 직후부터 소속 국회의원들을 상임위별, 지역별로 번갈아 만나고, 박 전 대표와 단독 회동을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9월23일 단행한 당직개편을 보면 정 대표의 ‘당 속으로 파고들기’ 전략을 대강 읽을 수 있다. 정 대표는 당내 친이·친박 세력의 반발을 사지 않으면서 몇 명 안 되는 인원이지만 자신의 측근들을 전진 배치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대표와 식사권 경품 해프닝
![鄭 주고 싶어도 시큰둥한 黨](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9/09/30/200909300500007_2.jpg)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계진 이성헌 의원, 정몽준 대표 측근인 전여옥 신영수 홍정욱 의원(좌측위부터). 친이계로 분류되는 장광근 진수희 권택기 조해진 의원, 심규철 제2사무부총장 (우측위부터).
이들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한나라당 질서의 기본 틀을 깨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사무총장과 부총장들은 10·28 재·보궐선거의 공천 작업을 벌이고 있는 시점이다. 정 대표는 그 대신 중위 당직에는 ‘MJ계’로 분류할 수 있는 측근들을 모두 불러 포진시켰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정 대표가 창당한 ‘국민통합 21’에 당무위원으로 참여했던 전여옥 의원은 이명규 의원을 밀어내고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았다. 현대건설 임원을 지낸 신영수 의원은 대외협력본부장, 처조카 사위인 홍정욱 의원은 국제위원장이 됐다. 정 대표와 가까운 의원 중에 당직을 맡지 않은 사람은 울산 동구 지역구를 물려받은 안효대 의원 정도다.
정 대표는 이와 함께 이재오 계열의 권택기 의원을 기획위원장, 친박 진영의 이계진 의원을 홍보기획본부장으로 기용하는 등 친이·친박 진영을 아우르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이번 인사 직전에는 대변인에 MB 직계인 조해진 의원을 임명했다. 조 의원은 이명박 후보 대통령 만들기의 산실이던 ‘안국포럼’ 출신으로, 정 대표가 친이 진영의 소장파를 끌어안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 대표의 친이·친박 포용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해 그에게 대권 고지로 가는 날개를 달아줄지는 미지수다. 정 대표가 아직 차기 주자로서의 확고한 인식을 당내에 심어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정치적 리더십에 의문을 품는 분위기도 없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9·23 당직개편에서 정보위원장에 기용된 이철우 의원은 “정 대표와 함께 국회 정보위원회에 소속된 인연으로 발탁된 것 같다”며 “정 대표 체제에서 정보위원장을 맡았다고 ‘MJ 계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당 사무처 실무진 사이에서도 정 대표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한 탓에 정권을 놓쳤다는 악감정이 남아 있는 데다, 최근 발생한 ‘대표와의 식사권’ 해프닝으로 일부 사무처 요원들이 불쾌감마저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정 대표는 최근 사무처 요원들과 상견례를 겸한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5명을 추첨해 경품을 나눠줬는데, 경품이 대표와 다시 식사할 수 있는 ‘티켓’이어서 실소(失笑)를 자아냈다. 이런 기류와 더불어 당내 일부 중진급 의원들마저 정 대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9월 초 정 대표가 취임한 이후 공식회의 외에 대표가 참석하는 외부 행사에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고위당직자는 최근 단행한 당직개편의 내용을 보고 정 대표의 용병술에 상당한 실망감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친이 진영의 공격에 맞서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친박 진영과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임시 관리형 대표로 여기는 친이 진영, 그리고 당직자들의 부정적인 평가 속에서 정 대표는 과연 한나라당 내에서 ‘의미 있는’ 뿌리내리기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