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최근 호주에서는 친딸을 30년 넘게 성폭행하고 4명의 아이까지 낳게 한 60대 남성이 기소됐다. 사실 근친상간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헤라는 남매이면서 남편과 아내 사이였다.
구약성서도 불바다가 된 소돔을 피해 달아난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두 딸의 근친상간 사실을 언급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역시 근친상간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물론 오이디푸스의 경우는 서로가 모르고 저질렀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근친상간과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근친상간은 왜 발생할까.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의 용어를 빌려 아들과 딸이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경쟁심리가 작용해 근친상간이 빚어진다고 설명한다. 또는 공생적(symbiotic) 성격을 갖고 있어 근친상간을 애정표현으로 여기고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근친상간이 벌어진다거나, 정신병질이나 성도착증 때문에 근친상간이 저질러진다고 설명한다.
“한 번이나 백 번이나…”
그러나 이러한 심리학적 설명과 함께 범죄학적으로도 근친상간의 원인을 분석해볼 수 있을 듯하다. 우선 많은 범죄는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다. 범인의 주거지는 일반적으로 범행 장소에서 반경 5km를 벗어나지 않는다. 왜? 범인이 주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범죄자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무엇이겠는가. 자신이 붙잡힐 가능성이다. 때문에 어디가 범행이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곳이고 어디가 안전한 곳인지 잘 아는 장소에서 범죄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근친상간이 자신이 사는 집에서 벌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근친상간은 범행 장소의 안전성 측면에서 탁월하다. 일반 성폭행은 노출과 목격의 가능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위험하다. 이처럼 모든 범죄는 계산에 의해 이뤄진다. 범행 후 잡혀 처벌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일부 확신범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근친상간은 여느 범죄에 비해 안전하다. 범행 장소도 ‘안전’하고 피해자가 신고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양심과 터부(taboo)를 잠시만 어디다 맡겨놓는다면 발생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범죄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금기시하는 행동을 꺼린다. 어려서부터 머리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금기시하는 행동을 하다 적발되면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대가가 크다는 점도 잘 안다. 그렇다고 금기시하는 행동을 모두 다 자제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통제력이 떨어지고 충동성이 큰 사람에게는 충동에 의해 사회 금기의 선을 넘는 경우가 생긴다.
자제력이 떨어지고 충동성이 강한 휘발성 인간들에게 불씨 노릇을 하는 것이 술, 약물과 같은 촉진제라 할 수 있다. 즉 술을 마시고 흥분하는 탓에, 술만 마시지 않았어도 면할 수 있었을 근친상간이라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아무래도 술을 마신 상태에서는 이성의 통제력이 약해지므로 충동과 본능에 휘둘리기 쉽다. 살인 같은 극단적인 범죄 역시 마찬가지다. 제임스 윌슨과 리처드 헤른스타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살인사건의 60% 정도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벌어진다.
영화 ‘몽상가들’에서 프랑스인 쌍둥이 남매 이자벨(위쪽)과 테오(왼쪽)가 미국인 친구 매튜와 함께 알몸으로 누워 있는 장면. 매튜는 게임 벌칙으로 남매에게 함께 잘 것을 명령한다(위). 변태성욕 살인마가 면도날, 도끼, 전기톱을 휘두르는 피칠갑의 영화 ‘엑스텐션’의 한 장면(아래).
그래서 언론 보도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10년 넘게 딸을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아버지’ 같은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다. 너무나 큰 범죄라고 생각하기에, 한 번이나 백 번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쉽게 말해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다. 근친상간이 대개 오랜 기간 지속되는 것은 이처럼 일단 시작하면 자포자기하고 합리화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가는 속성 탓이다.
가족 앞에선 작동 안 하는 ‘브레이크’
이번에는 ‘범죄 기회’라는 측면에서 근친상간을 살펴보자. 범죄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춰졌을 때 발생한다. 범죄 동기가 부여된 범죄자, 적절한 대상,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보호자의 부재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부족하면 범죄는 발생하지 않는다. 근친상간은 이 세 조건이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다른 범죄보다 높다. 무엇보다 범행 대상이 만만하다. 범행 대상이 범죄자에게 저항하기가 쉽지 않고 어차피 계속 같은 장소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도망갈 데를 찾기도 어렵다.
신고의 가능성도 낮으며 지켜줄 사람도 별로 없다. 피해자에게는 최악의 조건인 셈이다. ‘그래도 가족인데…’라고 안심하면 오산이다. 심각한 범죄일수록 가족 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심각한 범죄라고 할 살인의 경우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며, 그중에서도 가족 등 친족에 의한 살인이 가장 많다. 우리나라의 살인 피해자 10명 가운데 6명은 자신과 잘 아는 사람에게 피살된다.
아는 사람 중에는 가족을 포함한 친족이 가장 많다. 살인 피해자 4명 중 1명은 친족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이다. 또 함께 사는 친족에게 많이 당한다. 함께 살수록 피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범죄는 범죄자와 피해자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야 발생하므로 같이 사는 가족 사이에서 범죄 가능성은 높아진다. 가장 믿을 수 있고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서 살인이나 근친상간 같은 인면수심의 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것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가족은 남이 아니니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대하지 않게 된다. 남 같으면 양보하고,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도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대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평상시에는 잘 듣는 브레이크가 이상하게 가족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살인, 근친상간 같은 비극이 발생한다. 물론 매우 일부분이고 극단적인 경우지만. 무엇보다도 근친상간은 가족을 자신과 똑같은 인격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자식이든 누구든 가족의 일원을 인격체로 대하게 하는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