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결혼한 30대 초반 직장여성 A씨는 최근 또래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갔다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친구들 고개가 일제히 꾸벅꾸벅 떨어져 내린 것.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피곤해서 저런가 싶던 A씨의 짐작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졸음은 배란유도제 복용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친구야 그렇다 쳐도, 좀더 신혼 재미를 만끽해도 될 성싶은 1년차 미만의 친구까지 약을 먹어야 할까?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죽비로 정수리를 후려치듯 했다.
“너 요즘 일곱 쌍에 한 쌍이 불임인 거 몰라? 더구나 서른 넘어 결혼한 여자들은 서둘러야 해.” 아이를 가지지 못할까 염려하는 ‘불임불안’이 신종플루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신혼부부 사이에 파고들고 있다. 인터넷 주부게시판에는 임신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젊은 여성들의 체험담이 넘쳐난다.
결혼 1년도 안 된 새댁들조차 ‘검사받으러 병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배란날짜를 받아와야겠다’며 조바심친다. 산부인과에서 배란일을 받아오는 것쯤은 더 이상 유별난 광경이 아니다. ‘숙제 다 했는데, 증상놀이만 실컷 하다가 임테기엔 뚜렷한 한 줄이더라’처럼 암호 같은 말들이 일상어처럼 통용된다.
지나친 조바심 ‘불임클리닉’ 문전성시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에 임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다 보니 부부관계조차 배란일을 중심으로 ‘숙제’하듯 해치운다. 숙제를 하고 났더니 어쩐지 몸도 으슬으슬 춥고 졸음도 쏟아지는 것 같고, 혹여 임신 초기 ‘증상’ 아닌가 마음 설레기도 부지기수. 그러다 ‘임신 테스트기’에 임신이 아니라는 뜻의 ‘한 줄’이 그어지면 ‘증상놀이만 실컷 했다’며 입맛을 다신다. 불임불안은 이처럼 임신을 둘러싼 부부관계는 물론 병원 등 관련 산업의 풍속도까지 바꿔놓고 있다.
불임불안증후군이 나타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갈수록 늦어지는 결혼연령.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25.5세이던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008년에는 29.3세가 됐다. 주위에 서른 넘어 결혼하는 여성을 찾아보기란 식은 죽 먹기다. 마흔 전후로 식을 올리는 여성도 별종이 아닌 세상이다.불임 전문 마리아병원 이원돈 원장은 “통계적으로 여성의 난소 기능은 35세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40세가 넘어가면 급격히 저하한다”고 말했다.
늦은 결혼으로 가임기가 짧아진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조바심에 사로잡힌다. 몇 달 애써도 임신이 안 되면 너도나도 병원 문부터 두드리며 좌불안석이다. 덕분에 불임클리닉은 호황을 맞았다. 서울 마리아병원에 따르면 1998년 하루 각각 10~15명, 150여 명에 그치던 초진, 재진 이상 환자 수가 2008년엔 25~30명, 300여 명으로 10년 새 2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지나친 조바심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움여성한의원 문현주 원장은 “여성 신체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월경을 주의 깊게 살펴 심한 생리불순, 덩어리혈, 통증, 하복부 냉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1년 정도는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30대 초반 여성이라면 1년간 정상적 부부관계를 가져본 뒤 병원을 찾아도 늦지 않다”며 “다만 35세가 넘은 여성이라면 되도록 빨리 전문병원을 찾아 기본진단을 받는 것이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결혼 10개월차인 20대 후반의 B씨는 요즘 가시방석에 앉은 심정이다. “이번 휴가엔 다른 계획 세우지 말고 나하고 건강검진 받으러 가자”는 시어머니 전화를 받고부터다. 회사에서 이미 했는데 또 무슨 건강검진? 의아해하는 B씨에게 어머니는 넌지시 속내를 비쳤다. “이참에 불임 검사도 좀 받아보고….”
몇 달 동안 병원에서 배란일을 받아가며 ‘노력’해봐도 아기가 들어서지 않던 C씨. 병원에서도 남편과 자신 모두 이상이 없다는데 왜 그럴까 속을 끓이다 지쳐 당분간 마음을 비우기로 하고 병원 발길을 딱 끊었다.
그런지 한 달 만에 C씨는 거짓말처럼 드디어 임신이 됐다. 만혼, 환경호르몬 등으로 불임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가 매스컴을 달구면서 모두가 불임 전문가가 됐다.
그러다 보니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닌 듯한데도 시댁 어른들부터 초조해한다.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 주위의 은근한 독촉까지 감내하려니 여성의 스트레스는 두세 배로 커진다.
하지만 순조로운 임신에 이런 스트레스가 가장 큰 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배란장애, 나팔관 및 자궁경련 등을 초래하는 불임의 주범이다. 문현주 원장은 “임신 관련 호르몬을 분비하는 시상하부는 스트레스 조절의 중추이기도 한데, 과도한 스트레스는 호르몬 분비에 이상을 일으켜 임신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마음이 편해야 임신이 잘된다는 말은 속설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인 셈. 일산병원 산부인과 김의혁 교수도 “C씨의 경우는 배란일을 맞추려 노력하기보다 배란일에 신경 쓰는 스트레스를 없애는 쪽이 임신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라면서 “나이가 많다고 조바심 내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나이 자체보다 더 임신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아직 아기가 없는 D씨는 고교 동창 모임에만 갔다 오면 머리가 복잡하다.
‘아침마다 굴을 먹었더니 애가 들어서더라’ ‘잉어찜, 붕어탕이 좋다더라’ 등 친구들의 온갖 훈수를 듣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솔깃해지는 자신의 마음도 얄궂기만 하다. 잉어, 붕어, 전복, 굴 등은 한방에서는 보음(補陰)하는 음식으로 통한다. 음이 허하고 혈이 부족해서 임신이 안 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하지만 모든 이에게 일괄 적용할 수는 없다. ‘과잉의 시대’인 현대에는 보하기보다 해독하고 덜어내야 하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
문 원장은 “마른 이는 찌워야 하지만 살찐 이는 살을 빼야 임신이 된다”며 “아무리 좋은 음식도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처방을 받아야겠지만 조바심에 배란유도제나 호르몬 주사 등을 남용하는 것도 절대 금물이다. 착상률을 떨어뜨리고 외부 호르몬 의존율을 높여 오히려 난소 기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돈 원장은 “요즘은 조금만 불임 기간이 길어져도 인공시술,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는 추세인데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했다.
임신은 삶의 목표 아닌 과정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은 ‘건강한 여성이면 누구나 건강한 출산을 할 수 있으니 초조해하지 말라’다. 병원과 속설에 의지해 전전긍긍하기보다 아기가 찾아올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게 먼저다. 커피, 담배, 농약성분이나 성장호르몬 등 유해물질을 멀리하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잘 먹고, 유산소 운동으로 가볍게 몸을 단련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성실히 생활하다 보면 임신의 축복은 어느 결엔가 찾아든다.
무엇보다 임신이 종착점인 듯 매달리는 것은 여성 스스로에게 너무 서글픈 일이다. 문 원장은 “결혼, 출산이 목표가 아닌 스쳐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여성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지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피곤해서 저런가 싶던 A씨의 짐작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졸음은 배란유도제 복용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는 친구야 그렇다 쳐도, 좀더 신혼 재미를 만끽해도 될 성싶은 1년차 미만의 친구까지 약을 먹어야 할까? 하지만 친구의 대답은 죽비로 정수리를 후려치듯 했다.
“너 요즘 일곱 쌍에 한 쌍이 불임인 거 몰라? 더구나 서른 넘어 결혼한 여자들은 서둘러야 해.” 아이를 가지지 못할까 염려하는 ‘불임불안’이 신종플루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신혼부부 사이에 파고들고 있다. 인터넷 주부게시판에는 임신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젊은 여성들의 체험담이 넘쳐난다.
결혼 1년도 안 된 새댁들조차 ‘검사받으러 병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배란날짜를 받아와야겠다’며 조바심친다. 산부인과에서 배란일을 받아오는 것쯤은 더 이상 유별난 광경이 아니다. ‘숙제 다 했는데, 증상놀이만 실컷 하다가 임테기엔 뚜렷한 한 줄이더라’처럼 암호 같은 말들이 일상어처럼 통용된다.
지나친 조바심 ‘불임클리닉’ 문전성시
깨가 쏟아져야 할 신혼에 임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다 보니 부부관계조차 배란일을 중심으로 ‘숙제’하듯 해치운다. 숙제를 하고 났더니 어쩐지 몸도 으슬으슬 춥고 졸음도 쏟아지는 것 같고, 혹여 임신 초기 ‘증상’ 아닌가 마음 설레기도 부지기수. 그러다 ‘임신 테스트기’에 임신이 아니라는 뜻의 ‘한 줄’이 그어지면 ‘증상놀이만 실컷 했다’며 입맛을 다신다. 불임불안은 이처럼 임신을 둘러싼 부부관계는 물론 병원 등 관련 산업의 풍속도까지 바꿔놓고 있다.
불임불안증후군이 나타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갈수록 늦어지는 결혼연령.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25.5세이던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008년에는 29.3세가 됐다. 주위에 서른 넘어 결혼하는 여성을 찾아보기란 식은 죽 먹기다. 마흔 전후로 식을 올리는 여성도 별종이 아닌 세상이다.불임 전문 마리아병원 이원돈 원장은 “통계적으로 여성의 난소 기능은 35세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40세가 넘어가면 급격히 저하한다”고 말했다.
늦은 결혼으로 가임기가 짧아진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조바심에 사로잡힌다. 몇 달 애써도 임신이 안 되면 너도나도 병원 문부터 두드리며 좌불안석이다. 덕분에 불임클리닉은 호황을 맞았다. 서울 마리아병원에 따르면 1998년 하루 각각 10~15명, 150여 명에 그치던 초진, 재진 이상 환자 수가 2008년엔 25~30명, 300여 명으로 10년 새 2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지나친 조바심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움여성한의원 문현주 원장은 “여성 신체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월경을 주의 깊게 살펴 심한 생리불순, 덩어리혈, 통증, 하복부 냉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1년 정도는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30대 초반 여성이라면 1년간 정상적 부부관계를 가져본 뒤 병원을 찾아도 늦지 않다”며 “다만 35세가 넘은 여성이라면 되도록 빨리 전문병원을 찾아 기본진단을 받는 것이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결혼 10개월차인 20대 후반의 B씨는 요즘 가시방석에 앉은 심정이다. “이번 휴가엔 다른 계획 세우지 말고 나하고 건강검진 받으러 가자”는 시어머니 전화를 받고부터다. 회사에서 이미 했는데 또 무슨 건강검진? 의아해하는 B씨에게 어머니는 넌지시 속내를 비쳤다. “이참에 불임 검사도 좀 받아보고….”
임신을 원한다면 아기가 찾아올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먼저다. 전문가들은 적당한 운동을 권한다.
그런지 한 달 만에 C씨는 거짓말처럼 드디어 임신이 됐다. 만혼, 환경호르몬 등으로 불임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가 매스컴을 달구면서 모두가 불임 전문가가 됐다.
그러다 보니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닌 듯한데도 시댁 어른들부터 초조해한다.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 주위의 은근한 독촉까지 감내하려니 여성의 스트레스는 두세 배로 커진다.
하지만 순조로운 임신에 이런 스트레스가 가장 큰 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배란장애, 나팔관 및 자궁경련 등을 초래하는 불임의 주범이다. 문현주 원장은 “임신 관련 호르몬을 분비하는 시상하부는 스트레스 조절의 중추이기도 한데, 과도한 스트레스는 호르몬 분비에 이상을 일으켜 임신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마음이 편해야 임신이 잘된다는 말은 속설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인 셈. 일산병원 산부인과 김의혁 교수도 “C씨의 경우는 배란일을 맞추려 노력하기보다 배란일에 신경 쓰는 스트레스를 없애는 쪽이 임신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라면서 “나이가 많다고 조바심 내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나이 자체보다 더 임신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아직 아기가 없는 D씨는 고교 동창 모임에만 갔다 오면 머리가 복잡하다.
‘아침마다 굴을 먹었더니 애가 들어서더라’ ‘잉어찜, 붕어탕이 좋다더라’ 등 친구들의 온갖 훈수를 듣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솔깃해지는 자신의 마음도 얄궂기만 하다. 잉어, 붕어, 전복, 굴 등은 한방에서는 보음(補陰)하는 음식으로 통한다. 음이 허하고 혈이 부족해서 임신이 안 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하지만 모든 이에게 일괄 적용할 수는 없다. ‘과잉의 시대’인 현대에는 보하기보다 해독하고 덜어내야 하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
문 원장은 “마른 이는 찌워야 하지만 살찐 이는 살을 빼야 임신이 된다”며 “아무리 좋은 음식도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처방을 받아야겠지만 조바심에 배란유도제나 호르몬 주사 등을 남용하는 것도 절대 금물이다. 착상률을 떨어뜨리고 외부 호르몬 의존율을 높여 오히려 난소 기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돈 원장은 “요즘은 조금만 불임 기간이 길어져도 인공시술,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는 추세인데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했다.
임신은 삶의 목표 아닌 과정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은 ‘건강한 여성이면 누구나 건강한 출산을 할 수 있으니 초조해하지 말라’다. 병원과 속설에 의지해 전전긍긍하기보다 아기가 찾아올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게 먼저다. 커피, 담배, 농약성분이나 성장호르몬 등 유해물질을 멀리하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잘 먹고, 유산소 운동으로 가볍게 몸을 단련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성실히 생활하다 보면 임신의 축복은 어느 결엔가 찾아든다.
무엇보다 임신이 종착점인 듯 매달리는 것은 여성 스스로에게 너무 서글픈 일이다. 문 원장은 “결혼, 출산이 목표가 아닌 스쳐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여성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지는 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