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순부터 내년 초순까지에서 길일을 잡아주세요.” 딸의 결혼 날짜를 잡아달라는 60대 초반 부부의 주문사항이다. 딸과 예비사위의 사주를 내놓으며 내친김에 하나 더 묻는다.
“그런데 아이들 궁합은 어때요?”
“이미 결혼시키려고 날짜를 잡는데 궁합이 뭐가 궁금하세요? 궁합이 나쁘면 이제라도 승낙 안 하시려고요?”
“그래도 잘 살지, 못 살지 궁금하잖아요. 나쁘다면….” 노부부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린다.
결혼 시즌인 요즘 철학관에서는 이런 상담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기독교(개신교)인 남녀의 13%, 가톨릭교인 남녀의 22.1%, 불교인 남녀의 47.8%가 궁합을 본다. 기독교인이나 가톨릭교인에게는 궁합 보는 행위가 비신앙적인 일인데도 이 같은 수치가 나오니 비신앙인의 경우엔 말할 것도 없다.
결혼을 앞둔 남녀나 부모에게 궁합은 계륵(鷄肋)과도 같다. 보자니 그렇고 안 보자니 뭔가 아쉽다. 다행히 좋게 나오면 안심이 되지만, 행여 나쁘게 나오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부모 처지에선 궁합이 나쁘다고 결혼을 노골적으로 반대하자니 시대착오적인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다’는 표정을 짓기도 힘들다.
궁합이란 말이 처음 거론된 것은 중국 명나라대 임소주란 사람이 쓴 ‘천기대요’란 책에서다. 궁합의 궁(宮)은 ‘’와 ‘呂’를 합한 것으로 ‘집 실(室)’을 의미하고, ‘합할 합(合)’은 ‘그릇과 뚜껑을 서로 맞춘 형상’을 뜻한다. 문자를 해석해보면 ‘집안의 결합’이 되는데 ‘한 집, 한 방에서 만난다’는 뜻이 담겼다. ‘집 실’을 ‘아기 궁(宮)’으로 해석한다면 ‘합하여 아기를 낳을 수 있는가’의 뜻도 된다.
궁합은 ‘혼인 점’에서 출발한다. 과거의 혼인은 남녀 간의 행복한 결혼이 아니라 장자, 장손으로 이어지는 가족질서에 편입되는 엄격한 의례행위였다. 그래서 혼례의 절차 중에 중매쟁이가 여자 쪽의 부모와 신부의 생년월일을 묻는 ‘문명(問名)’의 절차가 있었다. 신부의 생년월일을 입수하면 남자 쪽 부모는 사당에 가서 ‘여자의 덕’에 대해 마땅한지, 아닌지 점을 쳤다. 이런 절차가 이뤄진 근저에는 혼인에 제사권, 재산상속 등의 문제가 긴밀히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혼인 점에서는 시집오게 될 며느리가 자손을 잘 낳아 집안을 번성시키고 조상의 제사를 잘 모실지에 대해서만 길흉을 점쳤다. 그런데 사주 명리학이 등장하면서 음양오행 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궁합법이 생겨났고, 좀더 세밀한 방법으로 궁합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에 사주 명리학이 도입됐다. 조선 초에 왕족이나 일부 계층에서 암암리에 사주로 궁합 보는 법이 통용되다 중기부터 일반 민중에게도 퍼졌다.
천생배필은 하늘이 점지?
서울 양천구에 사는 주부 황모(40) 씨는 12년 전 궁합 때문에 연인과 헤어졌다. 당시 연인의 어머니가 “궁합이 나쁘다”며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 어머니는 황씨를 불러 “네게 백호(흰 호랑이에 물려 피를 흘리고 죽는다는 나쁜 기운)가 있어 결혼하면 내 아들이 죽게 되는 궁합이다. 아들을 사랑한다면 제발 헤어져달라”는, 협박에 가까운 간청을 했다.
결국 연인과 헤어진 뒤 지금의 남편과 만나 잘 살고 있다. 지인을 통해 가끔 옛 연인의 안부를 듣는데, 그도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황씨는 ‘그때 만일 우리가 우기고 결혼했다면 그 사람이 죽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내게 연인을 죽게 하는 기운이 있다면, 지금의 남편도 갑자기 죽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인연은 상대적인 것이라 A와 맞지 않아도 B와는 맞을 수 있다. 황씨와 옛 연인의 궁합은 황씨의 백호살이 강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는 반면, 황씨와 남편의 궁합은 황씨의 백호살이 약화되는 궁합일 수 있다. 궁합은 이처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주 명리학의 고서인 ‘적천수’에는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라는 말이 나온다.
부부의 인연은 오랜 생전의 인연, 즉 하늘에서 정해진 것임을 시사한다. 흔히 하늘에서 정해준 인연을 ‘천생배필’이라고 한다. 조선 예종 때 남이 장군은 요괴를 보는 신통력이 있었는데, 어느 날 요괴가 앉은 홍시 광주리를 이고 좌의정 권람의 대문으로 들어가는 처자를 보았다.
불길한 마음에 따라갔다가 홍시를 먹고 죽어가는 권람의 넷째 딸을 구했는데 그 인연으로 혼담이 오가게 됐다.
권람이 홍계관이라는 장안의 이름난 술객에게 궁합을 물었더니 ‘천생배필’이라고 말했다.
“25세에 병조판서에 오르고 28세면 죽을 것이지만, 대감의 딸은 그보다 단명하고 후사도 없을 것이니 이보다 더한 배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홍계관의 말대로 권람의 딸은 남이 장군보다 단명했고, 남이 장군 역시 28세에 모함을 받아 죽었다.
이 고사는 궁합이 맞느냐, 안 맞느냐를 논하기 전에 내게 맞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와 맞는 천생배필과는 어떤 궁합인지, 그것만 찾아 잘 맞추면 고민할 것이 없다. 문제는 궁합 보는 방법을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방법도 다양하고 풀이하는 학자마다 주안점이 다르다. 사주로 궁합을 보는 방법 중 널리 이용되는 몇 가지를 추려보자.
첫째는 ‘납음오행법’이다. 육십갑자의 음(音)을 인간 세상에 배속해 우주 자연의 전개 과정을 설명한다. 갑자(甲子)·을축(乙丑)생은 해중금(海中金), 병인(丙寅)·정묘(丁卯)생은 노중화(爐中火)라는 식의 원칙에 따라 남녀를 막론하고 갑자생과 을축생은 오행이 금(金), 병인·정묘생은 오행이 화(火)가 된다.
납음오행법은 이런 오행을 가지고 남녀의 상생·상극 여부를 따져 인연이 맞고 맞지 않음을 판단한다. 이를테면 남녀가 태어난 해의 간지가 각각 ‘목(木)과 화(火)’(목생화), ‘화(火)와 토(土)’(화생토), ‘토(土)와 금(金)’(토생금), ‘금(金)과 수(水)’(금생수), ‘수(水)와 목(木)’(수생목)이 되면 상생관계의 좋은 궁합으로 본다. 반면 ‘목(木)과 토(土)’(목극토), ‘토(土)와 수(水)’(토극수), ‘수(水)와 화(火)’(수극화), ‘화(火)와 금(金)’(화극금), ‘금(金)과 목(木)’(금극목)은 상극관계를 이뤄 좋지 않은 궁합이라고 판단한다.
‘속궁합’과 ‘겉궁합’은 하나
그런데 상극이라도 남자의 간지가 여자의 간지를 극하는 상황이면 크게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 반면, 여자가 남자를 극하면 좋지 않게 여긴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시대에 ‘여극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시대에 뒤처진 측면이 있다. ‘납음오행법’은 ‘겉궁합’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널리 유포돼 있다.
둘째는 ‘연지법’이다. 남녀 사주의 연지(태어난 해의 지지)와 연지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 알아보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삼합(三合·서로 화합하는 지지 3개가 만나는 것. 원숭이·쥐·용, 돼지·토끼·양, 호랑이·말·개, 뱀·닭·소가 해당)이나 육합(六合·서로 화합하는 2개의 지지가 만나는 것. 쥐·소, 호랑이·돼지, 토끼·개, 용·닭, 뱀·원숭이, 말·양 6개가 해당)은 좋은 배합으로 본다.
연지끼리 상극이면 불리한 배합이고 상생이면 좋은 배합이다. 다만 충(서로 대립하는 지지가 만나는 것으로 연지끼리 충을 하면 뿌리를 뽑아버리는 형상과 같게 돼 흉하다고 본다. 쥐·말, 소·양, 호랑이·원숭이, 토끼·닭, 용·개, 뱀·돼지가 해당)이나 원진(서로 안 볼 때는 그리워하다가도 막상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미워하는 기운. 쥐·양, 소·말, 호랑이·닭, 토끼·원숭이, 용·돼지, 뱀·개가 해당) 관계면 상생이라도 불리한 배합으로 본다(상자 기사 참고).
셋째는 ‘일간법’이다. 남녀 사주의 일간(태어난 날의 천간)과 일간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를 보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삼합이나 육합이면 좋다고 본다. 넷째는 ‘일지법’이다. 남녀 사주의 일지(태어난 날의 지지)와 일지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연지법에 준해서 길흉을 본다. 일명 ‘속궁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심층판단이 아니라 단식판단이다. 사주에 나타난 두 사람의 글자를 비교해보고 공식에 맞추듯 대입하는 방법으로는, 단순한 옛 사회라면 몰라도, 현대사회의 결혼생활에서 필요나 요구사항의 충족도를 정확히 판단해내기 어렵다. 또 궁합을 속궁합과 겉궁합으로 나눠 속궁합이 좋아야 화목하게 잘 산다는 말도 되짚어봐야 한다.
물론 속궁합, 이른바 잠자리 궁합이 좋으면 좋겠지만 다른 불만이 산적한데 잠자리 궁합만 좋다고 해서 그 결혼이 언제까지 온전할지 장담하긴 어렵다.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 역시 속설에 불과하다. 네 살 차이는 삼합에 해당하는 궁합으로, 남녀가 만나서 화합할 확률이 높다. 가치관이 맞고 대화가 잘 통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만으로 무조건 좋은 궁합이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일찍이 청나라 시대의 명리가인 장남은 궁합의 모순을 간파한 뒤 ‘명리정종’이란 책에서 “오늘날 혼인을 택하고 그 명을 선택하는 일은 모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과하다”며 궁합을 맹신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인연을 알아볼 수 있을까. 답은 ‘내 사주 안에 있다’다. 사랑하는 남녀가 내 안에 너를 품듯, 내 사주에 배우자가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사주 여덟 글자에 배우자가 어떤 사람일지 암시돼 있다. 약한지, 강한지, 탁한지, 청한지가 예견돼 있다. 먼저 이를 잘 살펴보고 무리한 욕심은 내지 않는 것이 좋다. 내 사주 모양은 뒤로한 채 무조건 배우자만 잘 만나면 된다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내 사주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필요한 음양오행의 기운이 무엇이지 점검하는 게 우선이다.
예를 들어 물의 기운이 부족하면 물의 지혜를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불의 기운이 부족하면 불의 따스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상대가 나타나면 각자의 성격, 금전이나 직업 등에 대한 가치관, 자녀계획, 건강, 잠자리 궁합, 후천적인 운의 흐름 같은 조화 여부를 면밀히 따져 평생 살아가면서 무엇이 문제 될지 체크해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궁합법이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엔 한 번 기도해도 좋지만, 결혼을 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 기도에는 상대방에 대한 요구사항만 있는 게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헌신도 있다. 천생배필의 찰떡궁합은 이런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 궁합은 어때요?”
“이미 결혼시키려고 날짜를 잡는데 궁합이 뭐가 궁금하세요? 궁합이 나쁘면 이제라도 승낙 안 하시려고요?”
“그래도 잘 살지, 못 살지 궁금하잖아요. 나쁘다면….” 노부부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린다.
결혼 시즌인 요즘 철학관에서는 이런 상담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기독교(개신교)인 남녀의 13%, 가톨릭교인 남녀의 22.1%, 불교인 남녀의 47.8%가 궁합을 본다. 기독교인이나 가톨릭교인에게는 궁합 보는 행위가 비신앙적인 일인데도 이 같은 수치가 나오니 비신앙인의 경우엔 말할 것도 없다.
결혼을 앞둔 남녀나 부모에게 궁합은 계륵(鷄肋)과도 같다. 보자니 그렇고 안 보자니 뭔가 아쉽다. 다행히 좋게 나오면 안심이 되지만, 행여 나쁘게 나오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부모 처지에선 궁합이 나쁘다고 결혼을 노골적으로 반대하자니 시대착오적인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다’는 표정을 짓기도 힘들다.
궁합이란 말이 처음 거론된 것은 중국 명나라대 임소주란 사람이 쓴 ‘천기대요’란 책에서다. 궁합의 궁(宮)은 ‘’와 ‘呂’를 합한 것으로 ‘집 실(室)’을 의미하고, ‘합할 합(合)’은 ‘그릇과 뚜껑을 서로 맞춘 형상’을 뜻한다. 문자를 해석해보면 ‘집안의 결합’이 되는데 ‘한 집, 한 방에서 만난다’는 뜻이 담겼다. ‘집 실’을 ‘아기 궁(宮)’으로 해석한다면 ‘합하여 아기를 낳을 수 있는가’의 뜻도 된다.
궁합은 ‘혼인 점’에서 출발한다. 과거의 혼인은 남녀 간의 행복한 결혼이 아니라 장자, 장손으로 이어지는 가족질서에 편입되는 엄격한 의례행위였다. 그래서 혼례의 절차 중에 중매쟁이가 여자 쪽의 부모와 신부의 생년월일을 묻는 ‘문명(問名)’의 절차가 있었다. 신부의 생년월일을 입수하면 남자 쪽 부모는 사당에 가서 ‘여자의 덕’에 대해 마땅한지, 아닌지 점을 쳤다. 이런 절차가 이뤄진 근저에는 혼인에 제사권, 재산상속 등의 문제가 긴밀히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혼인 점에서는 시집오게 될 며느리가 자손을 잘 낳아 집안을 번성시키고 조상의 제사를 잘 모실지에 대해서만 길흉을 점쳤다. 그런데 사주 명리학이 등장하면서 음양오행 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궁합법이 생겨났고, 좀더 세밀한 방법으로 궁합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에 사주 명리학이 도입됐다. 조선 초에 왕족이나 일부 계층에서 암암리에 사주로 궁합 보는 법이 통용되다 중기부터 일반 민중에게도 퍼졌다.
천생배필은 하늘이 점지?
서울 양천구에 사는 주부 황모(40) 씨는 12년 전 궁합 때문에 연인과 헤어졌다. 당시 연인의 어머니가 “궁합이 나쁘다”며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 어머니는 황씨를 불러 “네게 백호(흰 호랑이에 물려 피를 흘리고 죽는다는 나쁜 기운)가 있어 결혼하면 내 아들이 죽게 되는 궁합이다. 아들을 사랑한다면 제발 헤어져달라”는, 협박에 가까운 간청을 했다.
결국 연인과 헤어진 뒤 지금의 남편과 만나 잘 살고 있다. 지인을 통해 가끔 옛 연인의 안부를 듣는데, 그도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황씨는 ‘그때 만일 우리가 우기고 결혼했다면 그 사람이 죽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내게 연인을 죽게 하는 기운이 있다면, 지금의 남편도 갑자기 죽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인연은 상대적인 것이라 A와 맞지 않아도 B와는 맞을 수 있다. 황씨와 옛 연인의 궁합은 황씨의 백호살이 강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는 반면, 황씨와 남편의 궁합은 황씨의 백호살이 약화되는 궁합일 수 있다. 궁합은 이처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주 명리학의 고서인 ‘적천수’에는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라는 말이 나온다.
결혼을 앞둔 남녀나 부모에게 궁합은 보자니 그렇고 안 보자니 아쉬운 ‘계륵’과도 같은 존재다.
불길한 마음에 따라갔다가 홍시를 먹고 죽어가는 권람의 넷째 딸을 구했는데 그 인연으로 혼담이 오가게 됐다.
권람이 홍계관이라는 장안의 이름난 술객에게 궁합을 물었더니 ‘천생배필’이라고 말했다.
“25세에 병조판서에 오르고 28세면 죽을 것이지만, 대감의 딸은 그보다 단명하고 후사도 없을 것이니 이보다 더한 배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홍계관의 말대로 권람의 딸은 남이 장군보다 단명했고, 남이 장군 역시 28세에 모함을 받아 죽었다.
이 고사는 궁합이 맞느냐, 안 맞느냐를 논하기 전에 내게 맞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와 맞는 천생배필과는 어떤 궁합인지, 그것만 찾아 잘 맞추면 고민할 것이 없다. 문제는 궁합 보는 방법을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방법도 다양하고 풀이하는 학자마다 주안점이 다르다. 사주로 궁합을 보는 방법 중 널리 이용되는 몇 가지를 추려보자.
첫째는 ‘납음오행법’이다. 육십갑자의 음(音)을 인간 세상에 배속해 우주 자연의 전개 과정을 설명한다. 갑자(甲子)·을축(乙丑)생은 해중금(海中金), 병인(丙寅)·정묘(丁卯)생은 노중화(爐中火)라는 식의 원칙에 따라 남녀를 막론하고 갑자생과 을축생은 오행이 금(金), 병인·정묘생은 오행이 화(火)가 된다.
납음오행법은 이런 오행을 가지고 남녀의 상생·상극 여부를 따져 인연이 맞고 맞지 않음을 판단한다. 이를테면 남녀가 태어난 해의 간지가 각각 ‘목(木)과 화(火)’(목생화), ‘화(火)와 토(土)’(화생토), ‘토(土)와 금(金)’(토생금), ‘금(金)과 수(水)’(금생수), ‘수(水)와 목(木)’(수생목)이 되면 상생관계의 좋은 궁합으로 본다. 반면 ‘목(木)과 토(土)’(목극토), ‘토(土)와 수(水)’(토극수), ‘수(水)와 화(火)’(수극화), ‘화(火)와 금(金)’(화극금), ‘금(金)과 목(木)’(금극목)은 상극관계를 이뤄 좋지 않은 궁합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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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궁합’과 ‘겉궁합’은 하나
그런데 상극이라도 남자의 간지가 여자의 간지를 극하는 상황이면 크게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 반면, 여자가 남자를 극하면 좋지 않게 여긴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시대에 ‘여극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시대에 뒤처진 측면이 있다. ‘납음오행법’은 ‘겉궁합’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널리 유포돼 있다.
둘째는 ‘연지법’이다. 남녀 사주의 연지(태어난 해의 지지)와 연지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 알아보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삼합(三合·서로 화합하는 지지 3개가 만나는 것. 원숭이·쥐·용, 돼지·토끼·양, 호랑이·말·개, 뱀·닭·소가 해당)이나 육합(六合·서로 화합하는 2개의 지지가 만나는 것. 쥐·소, 호랑이·돼지, 토끼·개, 용·닭, 뱀·원숭이, 말·양 6개가 해당)은 좋은 배합으로 본다.
연지끼리 상극이면 불리한 배합이고 상생이면 좋은 배합이다. 다만 충(서로 대립하는 지지가 만나는 것으로 연지끼리 충을 하면 뿌리를 뽑아버리는 형상과 같게 돼 흉하다고 본다. 쥐·말, 소·양, 호랑이·원숭이, 토끼·닭, 용·개, 뱀·돼지가 해당)이나 원진(서로 안 볼 때는 그리워하다가도 막상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미워하는 기운. 쥐·양, 소·말, 호랑이·닭, 토끼·원숭이, 용·돼지, 뱀·개가 해당) 관계면 상생이라도 불리한 배합으로 본다(상자 기사 참고).
셋째는 ‘일간법’이다. 남녀 사주의 일간(태어난 날의 천간)과 일간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를 보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삼합이나 육합이면 좋다고 본다. 넷째는 ‘일지법’이다. 남녀 사주의 일지(태어난 날의 지지)와 일지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연지법에 준해서 길흉을 본다. 일명 ‘속궁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심층판단이 아니라 단식판단이다. 사주에 나타난 두 사람의 글자를 비교해보고 공식에 맞추듯 대입하는 방법으로는, 단순한 옛 사회라면 몰라도, 현대사회의 결혼생활에서 필요나 요구사항의 충족도를 정확히 판단해내기 어렵다. 또 궁합을 속궁합과 겉궁합으로 나눠 속궁합이 좋아야 화목하게 잘 산다는 말도 되짚어봐야 한다.
물론 속궁합, 이른바 잠자리 궁합이 좋으면 좋겠지만 다른 불만이 산적한데 잠자리 궁합만 좋다고 해서 그 결혼이 언제까지 온전할지 장담하긴 어렵다.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 역시 속설에 불과하다. 네 살 차이는 삼합에 해당하는 궁합으로, 남녀가 만나서 화합할 확률이 높다. 가치관이 맞고 대화가 잘 통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만으로 무조건 좋은 궁합이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일찍이 청나라 시대의 명리가인 장남은 궁합의 모순을 간파한 뒤 ‘명리정종’이란 책에서 “오늘날 혼인을 택하고 그 명을 선택하는 일은 모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과하다”며 궁합을 맹신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인연을 알아볼 수 있을까. 답은 ‘내 사주 안에 있다’다. 사랑하는 남녀가 내 안에 너를 품듯, 내 사주에 배우자가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사주 여덟 글자에 배우자가 어떤 사람일지 암시돼 있다. 약한지, 강한지, 탁한지, 청한지가 예견돼 있다. 먼저 이를 잘 살펴보고 무리한 욕심은 내지 않는 것이 좋다. 내 사주 모양은 뒤로한 채 무조건 배우자만 잘 만나면 된다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내 사주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필요한 음양오행의 기운이 무엇이지 점검하는 게 우선이다.
예를 들어 물의 기운이 부족하면 물의 지혜를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불의 기운이 부족하면 불의 따스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상대가 나타나면 각자의 성격, 금전이나 직업 등에 대한 가치관, 자녀계획, 건강, 잠자리 궁합, 후천적인 운의 흐름 같은 조화 여부를 면밀히 따져 평생 살아가면서 무엇이 문제 될지 체크해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궁합법이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엔 한 번 기도해도 좋지만, 결혼을 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 기도에는 상대방에 대한 요구사항만 있는 게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헌신도 있다. 천생배필의 찰떡궁합은 이런 때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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