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종합병원 신종플루 진료실. ‘검사결과가 2~3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문구로 미뤄 이 병원도 정확도가 떨어지는 신속항원검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에 써 있는 그대로입니다.”(간호사)
9월22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 고열과 기침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김모(41) 씨는 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검사를 받으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한 장의 안내문을 손에 쥐었다.
검사법 안내서에는 두 가지 선택사항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는 신종플루 신속항원검사(RAT)였고, 두 번째는 신속항원검사와 확진검사(PCR)를 묶은 것이었다. 가격은 전자가 3만원, 후자는 13만원.
안내문에는 ‘신속항원검사는 1시간 이내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으나 양성률이 평균 50%로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음성이라도 인플루엔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속항원+확진검사는 가장 정확한 배양검사로, 결과를 알기까지는 2~4일 소요되며 결과는 추후에 알려준다’고 적혀 있었다.
김씨가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면 신속항원검사를 왜 받아야 하나. 확진검사만 받으면 비용도 더 싸질 것 아니냐”고 묻자 간호사는 “원래 묶음으로 돼 있다. 더욱이 초진이라 진료비에 진료담당 교수님의 특진비(선택진료비)가 붙고, 검사비에는 진단 쪽 선생님의 특진비가 붙는다”고 설명했다. 따질 게 많았지만 빠르고 확실한 결과를 알고 싶었던 김씨는 어쩔 수 없이 13만원짜리 묶음 검사를 선택했다. 이틀 후 받은 검사결과는 ‘신종플루 음성’.
3만~17만원 ‘고무줄 검사비’의 실체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뒷북 행정이 신종플루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확산시키고 의심환자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부 병·의원은 신종플루에 대한 정부의 애매한 치료 기준 및 지침을 상술과 자기 보신에 이용해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지탄받고 있는 부분이 신종플루 검사비. 일부 병·의원은 신속항원검사의 오진율이 50% 이상인 데다, 이 검사에서 양성 판정이 나와도 검출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신종플루인지, 일반 계절성 독감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환자의 급한 마음을 이용해 검사를 강권하고 있다.
일부 대학병원은 이에 더해 진료의사와 진단의사의 특진비가 붙은 검사비를 받고 있는 상황. 병·의원별로 검사비와 진료비가 3만원에서 17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관별로 확진검사비에 대한 보험 적용의 가산율(의원 15%, 종합병원 25%, 대학병원 30%)과 본인부담률(30%, 50%, 60%)이 크게 차이 나는 데다, 신속항원검사 실시 여부와 특진비에 따라 또 차이가 벌어지는 것. 김씨의 경우에는 신속항원검사비 3만원에 확진검사비 중 본인부담금 5만원, 초진 특진비 2만원, 검사 특진비 3만원이 붙었다.
특진비를 더 받는 대학병원의 경우 검사비가 총 17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의심환자들은 좀더 정확한 검사를 받기 위해 거점병원이나 의원보다 특진비를 내고라도 대학병원을 찾는 게 현실이다. 이에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는 ‘신속항원검사는 확진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받을 필요 없다’는 보도자료를 내고 진화에 나섰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 환자가 원해서 받은 경우라면 비보험이기 때문에 병·의원을 단속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검사비에 포함된 대학병원의 특진비에 대해선 “환자가 정말 교수를 선택했는지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단속할 처지가 못 된다”고 했다. 복지부가 신속항원검사에 대해 이런 입장을 처음 밝힌 시점은 9월9일. 신경장애를 가진 한 고등학생이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고 퇴원했다가 일주일 만에 중증환자가 된 다음에야 확진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낸 것.
하지만 이 보도자료는 병·의원에 내린 지침이나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구속력을 갖지 못했다. 한 대학병원의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7월부터 전문가들이 수차례 지적했는데도 정부는 병·의원의 검사비 벌이를 방치했다. 내가 소속해 있는 대학병원도 특진비를 받는데, 이건 정부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전했다.
각 대학병원은 ‘주간동아’가 취재에 들어가자 하나둘 특진비를 검사비에서 빼고 있다. 일부 대학병원은 특진비 포함 여부에 대해 답변을 피했다. 한 대학병원은 “감염내과 교수들이 모두 학회에 가서 답변이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종플루 확진환자만 1만5000명을 넘어서고 한 주에 병원을 찾는 의심환자만 수백명에 달하는 시점에 감염내과 의사가 단체로 자리를 비운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의사들 “타미플루 처방하기 싫다”
신종플루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처방하는 데 있어서도 혼선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재까지 정부가 병·의원과 약국에 공급한 타미플루는 52만명분(현재 총 540만명분 보유). 당초 정부는 하루 2만 건까지 투약이 이뤄지리라 예상했지만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 한 달 사이 투약 건수는 5만여 명분에 그쳤다. 동네의원이나 거점병원이 확진판정이 나지 않은 급성열성 호흡기 증상(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 환자에게 타미플루 처방을 극히 꺼리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초 각 병·의원에 내려보낸 지침을 통해 노인, 소아, 각종 만성질환을 가진 고위험군, 그리고 급성열성 호흡기 증상이 있는 다중공동이용시설 거주자 중 최근 일주일 이내에 그 거주지에서 2명 이상의 급성열성 호흡기 질환자가 발생한 경우, 급성열성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에게만 타미플루를 처방하도록 했다. 그리고 처방 시에는 환자 이력이 자세히 담긴 투약보고서를 보건소에 제출하도록 했다.
거기에 ‘부당처방 3회 이상 적발 시에는 항바이러스제 처방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엄포도 놓았다. 이 지침의 처방 기준은 병·의원급 의사가 실제로 증명하거나 확인하기에 쉽지 않은 것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원이나 거점병원의 의사들이 웬만하면 타미플루 처방을 대학병원으로 미루는 일이 벌어졌다. 신종플루 확진환자 중 중증환자 대부분이 병·의원을 전전하다 병을 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9월9일 보도자료를 통해 고위험군의 경우에는 단서 없이 즉시 처방하고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발열, 기침과 가래, 호흡곤란 등이 지속될 경우에는 처방과 투약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선 보도자료와 전혀 다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병·의원에 하달된 지침은 보도자료의 내용과 거리가 멀었던 것.
9월4일 병·의원에 전달된 항바이러스제 처방 기준을 보면 보도자료와 달리, 고위험군 환자에 대해선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이라는 전제가 붙었고, 고위험군이 아닌 환자에 대해서도 ‘폐렴 등 중증의 소견을 보이는(지속되는 열, 기침과 가래, 호흡곤란 등)’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매일 처방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처방권 제한 경고문구도 변하지 않았다.
서울시내 한 내과의원의 원장은 “신종플루 의심환자 중 고위험군의 합병증 발생 확률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폐렴 등 중증 소견을 각종 검사 없이 어떻게 의원급 의사가 낼 수 있겠나. 이런 지침이라면 타미플루를 소신껏 처방할 수 있는 의원급 의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답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