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디자인(Recycle Design)의 선두주자인 스위스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은 이렇듯 우연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두 명의 젊은 디자이너가 재미삼아 트럭 덮개천막으로 만든 재활용 가방은 현재 유럽 전역은 물론, 북미 일본 중국에 매장을 열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프라이탁 이후 세계 곳곳에서 재활용 디자인에 도전하는 여러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다. 낙하산과 버려진 구두밑창 등으로 스니커즈를 만드는 영국의 테라 플라나(Terra Plana), 자동차 좌석벨트를 가방 끈으로 활용하는 미국 시애틀의 앨커미 굿스(Alchemy Goods), 남성 드레스셔츠를 재활용하는 뉴욕 디자이너 요(YO)가 대표적인 예다. 뉴욕의 ‘이미테이션 오브 크라이스트(Imitation of Christ)’는 중고의류를 활용한 드레스로 큰 화제를 불러모아 고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종류의 재활용 디자인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재활용 패션 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를 비롯해, 서울 올림픽공원 내 새로운 볼거리인 디자인하우스의 ‘페이퍼테이너뮤지엄’, 폐자재만으로 모든 인테리어를 소화한 삼청동 카페 ‘비늘’ 등이 있다. 디자인그룹 ‘오프닝 스튜디오’도 폐지와 자투리 실 등을 이용한 재활용 디자인 제품을 내놓아 눈길을 모은다.
재활용 디자인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이 아니다. 낡고 오래됐으며 버려질 물건을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체해 새로운 제품으로 변신시키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유행 지난 양복 저고리와 낡은 면바지는 에코파티메아리의 디자이너들에 의해 기발한 가방으로 다시 태어났다. 폐자재를 즐겨 사용하는 건축가 원희연 씨와 그의 동생 철연 씨는 버려진 드럼통 80여 개를 모아 철연 씨의 카페 ‘비늘’의 독특한 외관을 완성했다.
<b>1</b>_벽면 철거 과정에서 나온 철근은 망치로 두들겨 구부리고 우레탄 코팅을 입혀 카페 ‘비늘’만의 독특한 와인랙이 되었다.<br><b>2</b>_폐자재를 건축에 활용하기로 유명한 건축가 원희연 씨가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세운 다세대주택 ‘12주(住)’의 화장실. 벽과 바닥의 타일은 원희연 씨가 을지로 타일상가들을 돌며 주워온 깨진 타일조각으로 제작됐다.<br><b>3</b>_감사원 가는 길에 있는 삼청동의 카페 ‘비늘’의 외관. 가지각색의 버려진 드럼통 80여 개를 하나씩 자르고 펴서 벽면에 붙였다. 이 카페는 정식 간판이 없다. ‘비늘’은 외관을 장식한 드럼통의 모양이 생선비늘 같다고 해서 손님들이 붙인 별칭.<br><b>4</b>_12주의 외관. 사용되지 않는 거푸집을 활용해 거친 느낌의 외관을 만들었다. 독특한 외관 때문에 동네 사람들에게 ‘도깨비집’이라 불린다.<br><b>5</b>_디자인그룹 ‘오프닝 스튜디오’는 양말공장에서 버려진 자투리 실을 이어 재활용 양말을 만들었다.
재활용 디자인이 각광받는 이유는 로하스적인 삶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기호와 맞아떨어져서는 아닐까. 현수막으로 만든 가방을 사는 일은 현수막을 불태울 때 생기는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과 같은 행위다. 깨진 타일조각을 활용해 화장실 벽면을 꾸미는 일은 그만큼 지구를 청결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물론 재활용 디자이너들은 ‘지구를 살리자’는 거대한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낡은 물건이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좋아서, 또는 독특한 재료를 찾다 보니 ‘쓰레기’를 뒤지게 됐다고 한다. 아무렴 어떨까 싶다. 만들기에 즐겁고 보기에도 좋은 재활용 디자인 제품이 많아질수록 지구는 건강해질 테니 말이다.
<b>6</b>_서울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내 ‘페이퍼테이너뮤지엄’을 떠받치는 기둥은 모두 재생종이로 제작됐다.<br><b>7</b>_국내 첫 재활용 패션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의 인사동 쌈지길 매장 전경. 중고옷을 활용해 만든 의상들이라 같은 옷이 한 벌도 없다.<br><b>8</b>_양복 안감을 활용해 만든 가방과 자투리 천으로 만들어진 고릴라 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