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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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정보 ‘수집’만 잘하면 뭐 하나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7-05-21 1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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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내부에 강한 ‘후폭풍’이 몰아칠 태세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수사과정과 관련해 경찰청이 감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경찰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가장 큰 이유는 수사가 한 달여나 지연된 점이다. 3월26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오모 경위가 범죄 첩보보고서를 올렸지만, 경찰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4월 말 이후에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누구의 판단 착오로 수사가 늦어졌는지, 경찰 안팎의 부적절한 개입은 없었는지는 감찰에서 가려질 것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뛰어난 정보수집 능력을 지닌 경찰이 정작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는 점이다.

    정보학에서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로 손꼽는 사례 중 하나는 사용자가 정보에 대해 자의적 해석과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정보 활동은 크게 ‘수집`→`분석`→`생산`→`소비’의 네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아무리 수집·분석된 정보가 많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소비’하지 않으면 그 활동은 ‘무용지물’이 된다. 나아가 사용자가 수집된 정보를 오용(誤用)하거나 왜곡할 경우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런 의미에서 김승연 회장 사건에 대한 경찰의 늑장 수사는 ‘정보 실패’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전국 10만명의 방대한 인원을 거느린 경찰은 막강한 정보력을 지녔다. 시골 마을의 농민 집회에서부터 대기업의 최신 인사 소식까지 전국의 시시콜콜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 방첩, 안보 분야에 치중하는 국가정보원의 정보가 거시적·분석적이라면, 경찰 정보의 힘은 ‘거대 조직’과 ‘생생한 현장감’에서 나온다. 그러나 경찰이 최고 민생치안 사령탑으로 거듭나려면 정보수집뿐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정보를 소비할 것인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자는 경찰의 정보보고서를 취재하면서 경찰 정보 네트워크의 위력을 절감했다. 한 경찰 정보관에게 전화를 걸면, 얼마 되지 않아 직·간접적으로 취재 진행을 걱정하는 경찰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전달됐기 때문이다. 기자의 취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정보력이라면 치안 정보 활동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가 아닐까. 경찰의 대단한 정보 네트워크가 부디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적극 활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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