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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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 정보력 FBI도 울고 갈걸!

경찰 정보보고서 대한민국 거미줄 파악 … 생생한 현장감, 구체성 지녀 민심 풍향계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7-05-23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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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강 정보력 FBI도 울고 갈걸!
    시작은 한 경찰관의 첩보보고서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4월 말 언론보도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을 인지한 것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오모 경위가 3월26일 첩보보고서를 올리면서부터다. 이 보고서가 없었다면 언론보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보고서에는 재벌 회장이 경호원 6명과 폭력배 25명을 동원해 피해자들을 납치 감금한 뒤 폭행했다는 범죄 사실이 ‘6하원칙’에 맞게 담겨 있다. 김 회장의 이름과 피해자인 북창동 S클럽 조모 사장의 이름이 적시된 것은 물론이다. 경찰수사 결과 이는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김 회장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시시콜콜 집회부터 인사정보까지

    하지만 구속된 한화 진모 경호팀장은 오 경위를 피의 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오 경위가 김 회장의 내사 사실을 언론에 흘린 것 같다”는 게 진 팀장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오 경위가 언론에 첩보를 유출했는지 여부는 경찰 내부 감찰에서 밝혀질 예정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보고서를 작성한 오 경위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 3.에 규정된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라는 경찰관의 직무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경찰 정보보고서가 갖는 ‘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찰 수뇌부의 첩보 은폐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재벌 총수가 경찰에 의해 폭력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경찰의 정보력이 밑바탕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10만명이 넘는 전국 경찰의 레이더에 포착된 정보는 실로 막대하다. 경찰 조직에서 정보수집을 전담하는 인원만 1만명을 훌쩍 넘어선다. 정보 형사의 공식명칭은 ‘정보관’인데, 국가정보원의 정보요원보다 그 수가 훨씬 많다. 정보관이 아닌 경찰관들도 보통 한 달에 4~5건의 정보보고를 하는 것을 감안하면 경찰이 수집하는 정보량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동(洞) 단위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집회부터 대기업의 최신 인사정보까지 대한민국의 이면을 보여주는 모든 정보가 수집되는 셈이다.

    경찰 정보관들은 정당, 관청, 기업, 노동계, 시민단체, 언론사 등 사회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민심의 동향을 파악한다. ‘카더라’ 수준의 설(說)에 그치는 정보는 구두로 보고하지만, 문서로 올릴 정보는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인된 것이어야 한다. ‘A4 용지 1면 17줄’을 기본으로 하는 이 보고서에는 핵심 관계자의 코멘트가 꼭 들어가야 한다. 그만큼 정보가 왜곡될 확률도 적다는 이야기다.

    경찰청 정보국장은 이렇게 수집된 정보 중 알짜배기를 추려 ‘청와대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가 경찰청장의 이름으로 대통령 비서실에 올리는 보고서는 국가정보원, 기무사 등 다른 정보기관이 작성하는 것처럼 ‘특급 정보’로 분류된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15~20건의 정책 동향 정보가 청와대에 전달된다고 한다. 과거 김대중(DJ) 정권 시절엔 1999년 무렵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A보고’가 부활됐으나 노무현 대통령이 경찰의 정보 보고를 직접 읽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경찰의 정책정보를 ‘참고’한다는 징후는 발견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지방을 시찰할 때 경찰 정보보고서에 근거한 질문을 던지면, 함께 수행하던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미처 대답을 준비하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도 벌어진다고 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각 지역 출입처의 터줏대감인 정보관이 작성한 정보보고서는 관료들이 들어보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벌어진 일이라는 것. 한 경찰 정보관은 “요즘 들어 국무총리실이나 재정경제부에서도 경찰 정보 열람을 강력히 원하지만, 경찰은 수집 정보의 배포에 신중을 기한다”고 말했다.

    경찰 정보의 힘은 ‘방대한 인원’과 리얼타임으로 이뤄지는 ‘상황보고’에서 나온다. 경찰 수뇌부에서 “재래시장의 현황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전국 각지의 정보관들은 같은 시간에 자기가 맡은 재래시장에 대한 보고서를 올린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부터 산간 오지 5일장까지 전국 각지의 재래시장 상황이 실시간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국정원 정보에 비해 저평가됐던 경찰 정보가 ‘뜨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특히 ‘부동산 대책’과 ‘월드컵 대책’에 관한 경찰의 정보보고서가 청와대의 신임을 얻으며 경찰 정보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 다음은 한 중견 경찰 정보관의 분석이다.

    막강 정보력 FBI도 울고 갈걸!

    경찰이 뒤늦게 공개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오모 경위의 ‘범죄첩보보고서’(사진 위). 5월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 발부를 받고 남대문경찰서로 향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사진 가운데).

    방대한 인원과 실시간 상황 보고

    “DJ 정권 말기, 경찰은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집값이 오르기 전의 전조 증상을 목격하고 이에 따른 부동산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관련 부처는 이를 무시했는데, 시간이 흘러 경찰의 예측이 맞았다는 게 증명돼 내부에서 화제가 됐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경찰이 테러 문제, 경기장 경비, 시민 응원 지원 등에 관한 체계적인 정보보고서를 올린 것도 경찰 정보가 신뢰를 얻은 요인 중 하나다. 경찰 정보는 생생한 현장감과 구체성을 지녀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경찰의 정보활동이 아직 국정원의 조직적·분석적 정보 수집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국정원 국내 파트가 점차 약화되면서 경찰 정보활동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서울 일선경찰서의 한 정보계 형사는 “모 대기업 담당 경찰관은 편하게 기업을 출입하는데, 같은 대기업을 담당하는 국정원 요원은 경비원에게 출입을 제지당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더라”고 전했다.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에 소속된 정보관들의 활약은 국정원 요원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본청 정보국 직원이나 서울경찰청 정보관들은 보통 정부 부처와 국회, 대형 시민단체, 언론사 등 ‘고급 정보’가 나올 만한 곳을 출입한다. 기자들이 매일 출입처에서 취재해 기사를 쓰듯 이들도 출입처의 관계자들과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맺으며 알짜배기 정보를 얻는다.

    일선경찰서에 배치된 정보관들의 경우 관내 큰 기업이나 관청을 주요 출입처로 삼는다. 서울 강남서 소속 정보관은 한국전력이나 코엑스를, 서울 중부서의 정보관은 명동성당을 담당하는 식이다. 특히 각 지역 당원협의회 관계자들은 관할 경찰서의 정보관을 중요인물로 관리한다. 지역 주요 단체의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정보관들을 통해 민심의 향방을 읽고 유권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경찰정보 파트는 한때 반정부 인사 감시, 민간인 사찰 등에 악용되기도 했다. 과거 정보 형사들이 국회에 출입한 것도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국회 출입 정보관들(이들은 ‘국회연락관’이란 직함을 갖는다)의 업무도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 14년차 국회 보좌관의 전언이다.

    “과거 정보 형사들은 의원이 언제 지역행사에 참여하고, 해외엔 언제 나가는지 세세한 일정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요즘 경찰 정보관들은 국회의원의 동향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상임위에서 의원이 경찰청장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경찰 조직과 관련된 어떤 법안이 만들어지는지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과거 반대 정파의 정치인을 뒷조사하던 정보 형사의 문화는 사라졌다고 느낀다.”

    경찰의 정보활동이 정책 정보수집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도 DJ 정권 이후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다. 과거 경찰 정보파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고 정치적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차원이었는데 의외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다.

    막강 정보력 FBI도 울고 갈걸!

    3월15일 서울 불광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앞에서 열린 서울시의사협회의 의료법 반대시위. 경찰 정보관들은 이러한 시위가 질서 있게 열리도록 조정하고 이해집단의 움직임을 파악한다.

    정보 유출과 오용 가장 우려

    이에 따라 경찰 정보관들은 정부 정책에 대한 이해집단과 민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이 주요 업무가 됐다. 10년 넘게 정보계통에서 근무한 한 경위는 “장애인 복지와 관련해 올린 보고서 내용이 얼마 후 실현됐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 경찰 정보관은 노숙자 실태에 대한 현장감 넘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일주일간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했을 정도다.

    보통 ‘학원(대학), 노동·재야, 언론’은 경찰 정보관의 ‘3D 출입처’로 통한다. 이들 출입처는 정보를 얻으려면 늘 몸으로 뛰어야 하기 때문에 담당 정보관이 고달프다는 얘기다. 서울 일선경찰서의 한 정보관은 “활동비는 적은데 줄곧 ‘3D 분야’를 주요 출입처로 배정받다 보니 한 달에 50만원씩 빚을 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털어놓았다.

    미제 사건을 해결하거나 범인을 검거한 형사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경찰 정보관들은 화려한 조명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이들에게 ‘보안’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암중비약(暗中飛躍)은 경찰 정보관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미덕이다.

    하지만 이들은 본의 아니게 정보를 유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1년 10월 제주경찰서 정보과 임모 경사가 김홍일 의원이 가족, 지인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해 ‘이용호 게이트’ 당사자를 만났다는 내용의 내부 정보보고서를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관계자에게 건넸다가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궁지에 몰렸다. 사법부는 정보문건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정보교환이고 공무상 비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임 경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그는 파면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이 거듭 발생하면서 경찰은 정보보고서 유출을 막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의 팩스는 수신이 가능하지만 송신은 불가능하다. 인터넷상에서 정보보고서를 작성해도 안 된다. 휴대용 저장장치(USB)에 정보보고서를 담는 것도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정보 오용(誤用)은 경찰 정보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참여정부 초기까지 경찰에 몸담았던 한 전직 경찰간부는 “정보가 경찰관들이 윗선에 줄을 대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일부 정보계통 경찰관들은 중요한 정보를 청와대 쪽이나 다음 정권을 잡을 정치인 측에 의도적으로 흘림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참여정부 들어 적어도 경찰 정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없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는 달리 경찰이 본연의 정보수집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또 그래야만 경찰의 정보활동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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