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3월29일. 그는 조용히 잠들었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프랑스, 49세, 베르나르 줄리 - 사망.’
- 마라톤 5일째. 죽음의 땅 사하라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1971년 대구에서 태어난 유재준 씨는 두 아들의 아버지로 현대커머셜(옛 현대캐피탈) 대구지점에서 일한다.
그곳에 나는 가리라.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넘어지고 쓰러져도 끝내 BIG DUNE을 넘으리라.
열사를 밟으리라, 열풍을 가르리라!
알라의 신이 거부한다 해도
가슴속 오롯한 꿈 하나 보듬고
어린 왕자 영혼 찾아 박동치는 심장이여, 열정무한이여!
아니,차라리 운명이여!
작열하는 태양이여
나의 꿈 그대로만큼이여.
휘니쉬 라인 얼굴 감싸고 흐느낄 적,
흘러내리는 한 줄기 와디여….
그대 정화된 영혼이여.
마침내 ‘어린 왕자’여!
손종태 사하라사막 마라톤 틀럽 오아시스 고문 · 제18회 사하라사막마라톤대회 완주자
알라의 가호를 빌며 출발대에 선 필자(왼쪽). 사하라사막마라톤대회는 매년 모로코 일원에서 열리는 울트라 마라톤대회다.
북아프리카에 웅크린 세계 최대의 사막, 죽음의 땅 사하라에서 펼쳐지는 221km 7일간의 레이스. 그 광활한 대자연에 도전하기 위해 35개국 752명의 마라토너가 사하라로 모여들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부터 밑도 끝도 없이 종을 울려대며 뛰는 사람, 만국기를 들고 세계 평화를 외치는 건각까지…. 나라도 얼굴도 모습도 각양각색인 752명 참가자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기에 이곳에 왔을 것이다.
사하라사막 마라톤 클럽 ‘오아시스’ 멤버 4명도 사하라 땅을 밟았다. 인생의 중반,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고 싶다는 김재휴(46)와 조영찬(42).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는 윤석영(49). 그리고 철인 3종 경기, 매킨리 등반 등 극한을 즐겨온 내가 사하라에 섰다.
도전과 모험이 그저 좋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맛보는 느낌이 좋았고, 그래서 운동을 멈출 수 없었다. 221km의 모래사막을 7일간 달려야 하는 대장정. 일주일간 먹고 자고 입는 데 필요한 물품을 배낭에 짊어지고 달려야 한다. 그 무게만 10~15kg!
사하라사막마라톤은 달리는 게 다가 아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를 견뎌야 하고, 50℃의 폭염을 이겨내야 한다. 사막의 일교차는 40℃가 넘는다! 칼바람과 함께 몰려오는 추위도 이겨내야 한다.
뛰고 걷고 기고, 또 뛰고 걷고 기고…. 사막을 걸을 때마다 발끝에서 전해지는 고통은 평생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 발톱이 빠지고, 신발 안으로 들어온 모래에 살은 무를 대로 무르고, 발가락과 뒤꿈치는 물집투성이가 되고 만다.
3월25일 모로코 리사니를 출발해, 하루 이틀 대회가 진행될수록 부상자와 탈락자가 속출하는 고통의 나날들. 어느덧 대회 4일째. 일정의 최대 고비요, 백미인 롱데이(Long-day). 48시간 동안 70km를 뛰어야 하는 이날은 그동안의 피로와 부상이 축적된 도전자들에게 최대 난코스다. 무박 2일의 코스. 한낮의 레이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달리는 밤 코스가 관건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사막의 밤. 헤드랜턴이 비추는 작은 땅만을 바라보며 뛰고 걷고 기어가야 한다.
혼자라는 외로움, 공포, 육신의 고통을 떠나 정신의 나약함과 싸워야 한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신호탄을 쏘고 포기를 선택한다. 모두가 포기라는 ‘달콤한 유혹’과 맞서며 한 발 두 발 땅을 디뎠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사람들은 롱데이를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롱데이의 끝에 생각지 못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49세의 프랑스 선수가 다음 날 새벽, 자신의 천막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것이다. 좌절과 슬픔에 빠진 참가자들. 하지만 지체할 겨를이 없다. 아직 대회는 끝나지 않았고, 남은 이틀간 더 달려야 한다. 슬픔을 뒤로한 채 완주를 향해 달리는 선수들. 과연 그들은 죽음과 고통의 땅 사하라를 견뎌낼 수 있을까. 불모의 사하라를 달리며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 3월23일
시차 문제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모로코의 집결지로 떠나기 위해 오전 4시에 기상했다. 샤를드골공항 터미널 3 수속장엔 벌써부터 참가 선수들이 운집해 있었다. 비행 4시간 만인 11시30분 사하라의 관문 와자자테(Ouazazate)에 도착했다.
버스에 나눠 탄 참가자들은 6시간 동안 330km를 달렸다. 바람과 뜨거운 햇빛이 만들어내는 사막의 광활함에 압도당했다. 기가 꺾였다. 버스에서 내린 뒤 군용 차량을 타고 사막 깊숙이 이동했다. 1차 비박(Bivouac·이하 B)에 도착했다. 무수히 많은 별들과 은하수! 사막의 밤은 눈부셨다.
■ 3월24일
새벽 5시, 동쪽 하늘에서 먼동이 튼다. 그 색과 분위기란 참으로 형언키 어렵다. 6시가 되면 고용된 베르베르인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사정없이 누더기 천막을 걷어낸다. 지난밤 혹독했던 추위에 대한 기억도 잠시, 선잠을 깨고 침낭에서 빠져나와 하루 동안 펼쳐질 사하라와의 한판 싸움을 준비한다.
아침과 저녁은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건조동결미로 13끼분을 준비했다. 점심은 배낭의 부피와 무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 행동식으로 해결한다. 행동식은 바(Bar)와 겔(Gel) 타입이며, 한 시간에 1개씩 먹도록 양을 정해왔다.
오전 7시30분, 주최 측에서 제공한 아침을 먹었고 물 4.5ℓ를 배급받았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될 넘버(Number) ‘349’를 받았다. 오후엔 각종 준수 및 필수 사항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생존장비(Survival Kit) 사용법과 경기 포기, 비상사태 발생 시 대처요령도 익혔다.
듄(Dune)의 풍광은 아찔하면서도 황홀하다. 58시간 40분 39초의 기록으로 완주한 필자(오른쪽).
오전 3시 기상. 사하라가 깨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9시35분, 곧 폭발할 것 같은 흥분과 긴장감. 알라의 가호를 빈다. 출발. 용광로에서 뿜어져나오는 쇳물처럼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의 자유의지를 예찬하며 뛰쳐나갔다.
사막은 모래만 끝없이 펼쳐진 곳이 아니었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적갈색 자갈밭과 갈라진 땅바닥의 연속. 언덕 몇 개를 넘고 마을을 지나 첫 CP(Check Point, 12km)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CP간 거리는 대략 10km.
1CP를 출발하자 모래밭이 나타났고 듄(Dune·모래언덕)의 풍광에 황홀해진다. 어느새 신발은 모래로 가득 찼다. 푹푹 빠지는 눈 위를 걷는 듯했다. 2CP(19.3km) 도착 직전 왼발 엄지발톱이 이상했다. 돌을 찬 적도 없는데…. 피멍이 들어 금방이라도 빠져버릴 것 같았다.
테이핑으로 발가락을 감아준 것이 의사가 해준 처치의 전부. 쉰 살이 훨씬 넘어 보이는 아일랜드인 멜과 함께 출발한 지 5시간 30분 만인 오후 3시50분 2B에 도착했다. 고작 하루 일정을 소화했을 뿐인데도 몸은 벌써 만신창이가 되었다.
■ 3월26일 : 스테이지 2, 총거리 35km, CP 3개소
지난밤에 혹독한 바람이 불었다. 어떤 천막은 무너져버렸고 선수들의 물품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주변은 온통 모래투성이. 중요한 장비인 스패츠(모래방지 천)가 사라졌다. 찾지 못하면 레이스를 포기해야 한다. 배낭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스테이지 2는 CP가 3개소로 산악 구간과 빅듄이 있다. 컷오프 시간은 11시간.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진 것은 그만큼 구간이 어렵다는 뜻이다.
오늘은 8시45분에 출발했다. 4km 지점에서 산이 나타날 때까지 자갈밭 길이다. 산을 넘는다. 그 산을 넘자 또 다른 산이 버티고 서 있다. 이번엔 오른쪽 엄지발톱이 이상하다. 2CP(20.8km)에 도착해 의사의 처치를 받았다. 어깨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통증이 왔다. 발톱 때문에 어깨 통증을 느끼지 못했는가 보다.
8시간 40여 분 만인 오후 5시20분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그 처참한 과정이 사무치게 아름다웠다. 또 하나의 역설이다.
■ 3월27일 : 스테이지 3, 총거리 32.5km, CP 3개소
두 허벅지는 쪼아붙이는 태양에 화상을 입었다. 띵띵하게 부은 발 때문에 신발은 작아졌고, 그래서 양쪽 새끼발톱도 이상하고 물집 네 군데가 추가로 생겼다. 바늘과 실로 처치했다. 그 탓에 피부 트러블도 생겼다. 몸을 씻을 수도 없고 더러워진 옷을 세탁할 수도 없다. 때를 긁어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주변을 돌아본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 독한 놈들….
어제보다 늦은 9시10분에 출발했다. 평지였다. 마을을 지나갔고 공동묘지를 봤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무척 궁금했다. 그들의 단조로운 삶, 그리고 죽음…. 나무그늘 아래서 오른 발바닥 물집을 다스리고 1CP(10.5km)에 도착했다. 오아시스다. 아름다웠다. 두 눈에 넣어두고 출발한다. 출발한 지 7시간 30분 만인 4시40분에 도착했다. 내일은 완주의 분수령인 롱데이!
■ 3월28~29일 : 스테이지 4, 총거리 70.5km, CP 6개소, 롱데이
간밤의 모래폭풍에 천막 몇 동이 무너졌다. 마(魔)의 스테이지. 이틀에 걸쳐 뛰어야 한다. 오늘은 제대로 즐겨보자는 괜한 오기가 생긴다. 출발선상의 선수들은 모두 흥분해 있다.
1CP(10.5km)를 지나서 2CP(21km)까지 한참을 내달렸다.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모래 속에 파묻힌 동물의 뼈를 본다. 불현듯 청마의 ‘생명의 서’가 입안을 맴돈다.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사하라에 동화돼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란다.
5CP에 도착할 즈음 해가 저물었다. 바람이 거셌고 배가 고팠다. 랜턴을 켰으나 밝지가 않았다. 저녁은 뛰어가면서 먹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거세게 밀려왔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새벽 4시 다시 출발. 나 혼자였다. 외롭다. 그러나 오롯이 사막과 교감할 수 있었다. 사하라가 깨어나는 것을 묵도한다. 이번 레이스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아침이다.
롱데이를 끝냈다. 믿어지지 않는다. 완주한 것처럼 기쁘다. 이날만 30명 넘게 탈락했다. 그리고 1명이 죽었다. 지금까지 45위로 달리던 40대 프랑스인.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는 사하라의 ‘별’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 3월30일 : 스테이지 5, 총거리 42.2km, CP 3개소
마라톤 풀코스에 해당하는 거리다. 롱데이를 거친 덕인지 거리가 멀지 않게 느껴진다. 자갈밭에서 하트 모양의 돌을 주었다. 아내에게 줄 선물이다. 계속 달렸다. 신이 났다. 저녁엔 파리에서 오케스트라가 공수돼 공연을 했다. 자정이 넘어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장작을 하나 둘씩 태우며 아쉬움을 달랜다.
■ 3월31일 : 스테이지 6, 총거리 11.7km, 파이널
오늘 아침은 여느 날과 다르다. 마지막 날이다.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마지막 5km의 사막 듄. 거기서 오아시스를 만났다. 그 길을 울면서 달렸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골인 지점엔 아내가 홀연히 서 있었다. 해낸 것이다. 몸이 성하지 않은 직장동료의 딸 민지 얼굴이 새겨진 깃발을 만져본다. 그 아이의 장애는 나를 달리게 한 원동력이다. 맥주와 담배 한 모금. 나는 구각을 탈(脫)하고 정화된 세상을 얻기 위해 또 다른 세상을 깨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