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작일까. 진품일까. ‘주간동아’는 위작 논쟁에 휘말린 이중섭-박수근의 작품2800여 점 중 20점의 사진을 공개한다.
- 이 사진은 검찰이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촬영한 것으로, 소장자인 김용수 한국고서연구회 고문에게서 입수했다.
- 사진을 접한 전문가들은 ‘가짜라는 지적과 진품일 수도 있다’는 상반된 견해를 보인다. 과연 2800여 점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수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40여 년간 고서화 수집과 보존 등 우리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커 이 상을….”
김씨는 졸업 50주년을 맞은 경동고 13회 동창회가 뽑은 ‘자랑스러운 경동인’이다. 동창회가 그를 자랑스러운 경동인으로 뽑은 이유는 그가 우리 문화를 지키고 보존했기 때문이다.
고서화 수집과 보존으로 문화 발전에 기여한 김씨는 그러나 3년째 위작 및 위작범 혐의를 받는 피의자이기도 하다. 김씨는 2005년 6월, 자신이 소장한 이중섭-박수근의 작품 2800여 점이 위작으로 몰리면서 검찰과 감정협회 일부 관계자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당시 검찰은 감정협회 관계자들의 주장에 따라 그의 그림을 모두 압수했다.
그러나 금방 결론이 날 것 같던 위작의혹사건 수사는 지금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서너 달이면 위작범을 잡을 것”이라던 검찰은 위작범을 잡지 못했다. 작품 소장자인 김씨가 위작 제작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소장자 vs 검찰-감정사 진실 공방
그 사이 담당검사는 네 번 바뀌었고 사건은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검찰이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을 수사하는 데 걸린 시간은 6개월여. 단순 위작의혹 사건을 3년씩이나 끌고 가는 검찰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위작 시비에 휘말린 이중섭과 박수근의 미공개 작품 2800여 점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김씨가 이중섭-박수근 작품과 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 초. 63년 서울대를 졸업한 김씨는 곧바로 건설업과 수출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김씨는 당시 한국을 찾은 바이어들이 비즈니스 외에 도자기와 고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주목했다. 특히 일본 바이어들은 미친 듯이 인사동 골목을 뒤지고 다녔고, 김씨는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 후 김씨는 그것이 ‘돈이자 우리 문화’임을 깨달았다. 당시 먹고사는 데 바빴던 우리는 문화와 문화재에 대해 개념이 없었다. 고서나 그림 등을 벽지와 장판지로 사용했다. 헐값에 외국으로 빠져나간 것도 부지기수였다.
김씨는 문화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서화나 그림이 몰리는 서울 인사동, 전북 전주, 대구 등지를 찾아다녔다. 헌책방이나 고서화를 파는 사람들에게 그는 꽤나 큰 ‘컬렉터’로 소문이 났다. 그렇게 해 고서 10만 권, 고서화 글씨 3만 점, 골동품 2000여 점을 사모았다. 중구 신당동 그의 아파트(50여 평) 거실과 베란다, 4개 방은 고서화와 도자기 등으로 가득하다. 인근에 사무실 겸 창고를 구했다. 수출과 건설업으로 번 돈은 대부분 이렇게 고서와 그림, 도자기로 바뀐 채 창고에 쌓여 있다.
당시 상인들은 돈이 될 만한 물건이 들어오면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중섭-박수근의 작품도 이렇게 만났다. 그의 설명이다.
“전화를 받고 가게에 가보니 보자기에 싼 그림 보따리가 있었다. 이중섭의 그림이었다. 드로잉, 에스키스(습작화) 상태의 작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 서울의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내고 그림을 인수했다.”
박수근의 그림도 같은 경로로 김씨와 연결됐다. 김씨는 이렇게 확보한 그림을 2005년 세상에 내놓았다. 이중섭 50주기 기념전시회가 목적이었다. 이중섭-박수근 50주기 기념 미발표작전시준비위원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한 방송사와 공동개최 계약까지 맺었다.
그림값만 1조원대 육박
전시회를 앞둔 김씨는 방송사 관계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갔다. 이중섭의 아들 태성 씨에게 소장하던 작품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림을 본 태성 씨는 ‘아버지의 작품’임을 확인해주었다.
사건 초기 검찰 주변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2800여 점의 그림값을 다 합하면 1조원대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이 나돌면서 검찰도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2005년 10월 검찰은 1차 수사 발표를 통해 ‘위작으로 의심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위작범을 검거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방침도 공개했다.
시간을 보내던 검찰은 최근 2800여 점의 그림 감정을 피고소인 신분인 최명윤 감정가에게 의뢰했다. 최씨는 2005년 당시 이중섭-박수근 그림을 위작이라고 처음 주장한 인물. 이를 문제삼아 김씨가 그를 고소했다. 그는 최근 압수품 2827점이 모두 위작이라는 감정 소견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에 강하게 반발한다. ‘가짜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에게 감정을 의뢰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 제3의 기관이나 감정가를 동원해 공정하게 감정하자는 게 김씨의 요구사항이다.
국내 화랑가는 팽팽한 긴장감
김씨는 검찰이 열린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주길 기대한다. 그림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견해를 밝힌 그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화를 지킨다는 소명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화랑가에서는 이렇게 대규모 위작을 그린 위작범들이라면 수사과정에서 꼬리를 드러낼 것이라고 본다. 이들은 위작범들을 색출해 처벌해야 미술시장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위작범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이 작품들이 위작이 아니라면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검찰은 진품이 위작 의혹에 휘말린 과정을 되짚어야 한다. 유럽에서는 진품을 위작이라고 감정하는 행위를, 가짜를 진품으로 둔갑시킨 것보다 더 큰 범죄로 본다. 위작 평가를 받은 작품은 폐기되기 때문이다. 한번 폐기된 문화재나 작품은 복원이 불가능하다.
얼마 전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변시지 이만익 씨 등의 작품을 베껴 팔아온 위조 조직이 경찰에 적발돼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다. 올 초 화랑가의 통합감정기구로 출범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중견작가 변시지 씨가 위작으로 지목한 ‘조랑말과 소년’을 진품으로 판정해 논란이 일었다.
이중섭-박수근 위작의혹 사건을 바라보는 5월의 화랑가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지검 한 간부는 ‘수사 및 감정 중이라 견해를 밝히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과연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것인가.
감정협회 관계자 주장 | 김용수 씨 주장 | |
물감 재료 | 김씨 소장 그림에는 금속성 색깔을 내는 산화티탄 계통의 ‘펄’ 물감 안료가 들어갔다. 이 안료는 90년대 이후 국내에 들어왔다. | 펄 재료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가 없다. 과학자를 모아 공개토론하자. |
금속성 안료 | 이중섭이 40~50년대 그림에 금속성 안료를 붙였다면 지금은 상당 부분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김씨 소장 그림들은 열화실험 결과 금속성 안료가 변색조차 되지 않고 온전히 붙어 있다. | 그러면 고려시대 금으로 쓴 ‘금니반야바라밀다심경’ 같은 사경(寫經)의 종이에 붙은 금속 성분은 어떻게 1500년을 견디는가. 보관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
서명 도상 | ‘중섭’ ‘둥섭’이 뒤섞여 날인된 이중섭의 서명을 초정밀 촬영한 결과, 글자의 뼈대를 베껴 적은 심과 그 주위에 덧칠해 가짜 서명을 만든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 어느 작가든 자신이 좋아하는 도상, 표현하고 싶은 대상 등은 반복적으로 그려 넣는다. 베껴 쓰기나 덧칠 등의 전사기법은 이중섭 선생의 주요 작품기법의 하나다. 진품으로 확인된 작품 가운데도 진사기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은 많다. |
종이 품질 | 이중섭이 담배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의 경우, 김씨 소장 은지화들은 접힌 자국 등에서 당시 담배 은박지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다. | 이중섭 선생은 형편이 여의치 못해 양담배 은박지 등을 주워 그림을 그렸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은박지가 많다. 종이 품질은 확인하면 금방 해답이 나온다. |
향후 감정 방법 | 페인트(물감)를 좀더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위작 여부를 가릴 수 있다. | 2800여 점에는 모두 이중섭-박수근의 서명과 사인이 들어 있다. 이를 토대로 필체 확인을 제의한다. 또 박수근의 유화그림에는 다섯 손가락의 지문이 그대로 묻어 있는데,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소장된 박수근의 진품으로 감정받은 작품에 묻은 지문과 대조해보자. 가짜라면 위작범이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