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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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성능 떨어지는 조기경보기 만드는 이유

유사시 평양으로 날아드는 한미연합군 순항미사일 원거리 탐지 목적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력2025-04-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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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3월 27일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기경보기에 탑승했다”며 해당 기체를 처음 공개했다. 뉴스1

    북한이 3월 27일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기경보기에 탑승했다”며 해당 기체를 처음 공개했다. 뉴스1

    현대전, 특히 완전히 개방된 3차원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중전은 상황 인식(situation awareness) 능력이 전투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공중전에서 “먼저 보고 먼저 쏜다”는 말이 승리의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적을 먼저 발견한다는 것은 유리한 속도와 고도를 선점한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적 전투기가 볼 수 없는 측면이나 후방에서 기습 공격을 가할 수 있다. 조기경보기는 바로 이 같은 공중전을 위해 태어난 무기다.

    러시아 IL-76 수송기 기반으로 만든 北 조기경보기

    외형만 보면 조기경보기는 수송기나 여객기에 커다란 레이더를 얹은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제작에 필요한 기술 난도가 높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전 세계에서도 이런 항공기를 보유한 나라가 20개국이 안 될 정도로 보급률이 낮다. 그런데 세계 최빈국인 북한이 3월 27일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기경보기에 탑승했다”며 해당 기체를 처음 공개했다. 북한의 조기경보기 제작 시도가 처음 포착된 것은 2023년 12월 중순이었다.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촬영한 상업용 위성사진에서 고려항공 소속 IL-76 수송기를 개조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당시 위성사진 속 IL-76은 동체 상단에 레이더 탑재를 위한 거치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3개월 만인 올해 3월 중순 해당 기체에 거대한 레이더가 설치된 모습이 포착된 데 이어 북한이 직접 이를 공개한 것이다.

    북한이 조기경보기 제작에 돌입한 것은 북한-러시아의 군사협력이 심화되기 시작했을 때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해당 조기경보기가 러시아의 기술과 부품 지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봤다. 북한 조기경보기가 IL-76 수송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현용 A-50U 조기경보기가 바로 IL-76를 개조한 것이라서 사실상 동형일 개연성이 크다는 관측이었다. 그런데 최근 상업용 위성에 찍힌 북한 조기경보기는 러시아 A-50U와는 여러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레이더가 다르다. 수송기 위에 레이더가 장착된 모습만 보면 북한 조기경보기와 러시아 A-50U가 같은 계열 기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조기경보기는 러시아 A-50U와 달리 고정식 위상배열레이더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A-50U의 레이돔 안에 설치된 베가 시멜(Vega Shmel)-M 레이더는 10초당 1회 회전하는 기계식 레이더다. 반면 북한 조기경보기에는 각각 120도 범위를 담당하는 3면 고정식 위상배열레이더가 설치돼 레이돔 상부에 거대한 삼각형이 식별된다. 레이돔 크기도 A-50U보다 훨씬 크다. 북한 조기경보기의 레이돔은 A-50U는 물론, 러시아 최신형 A-100 조기경보기보다도 크다. 러시아는 IL-76 수송기를 기반으로 A-100 조기경보기를 새로 개발했다. 북한 조기경보기의 레이돔은 여기에 탑재된 베가 프리미어(Vega Premier)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 내장 레이돔과 비교해도 크다. 그런 점에서 북한 조기경보기의 레이더는 러시아가 제공한 게 아니라, 자체 개발·제작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게 필자 견해다.

    문제는 북한이 어떻게 위상배열레이더를 획득했는지 여부다. 기존 기계식 레이더는 송수신 안테나 1개를 기계 구동축으로 이리저리 돌려서 전파 조사 방향을 조정하는 형태다. 반면 위상배열레이더는 기계 구동축 없이 전파의 위상차를 조정해 빔 방향을 바꾸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 덕에 넓은 범위를 빠르게 스캔할 수 있고, 특정 방향으로 빔을 집중해 탐지거리와 정밀도를 높일 수도 있다. 일견 간단한 것 같지만 이 같은 레이더를 개발하고 제작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듯이 북한에는 그런 현대적인 전자·반도체·소프트웨어 인프라가 없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공개한 평양 순안국제공항
위성사진 속 북한 조기경보기. 
38노스 홈페이지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공개한 평양 순안국제공항 위성사진 속 북한 조기경보기. 38노스 홈페이지

    구형 수동위상배열 레이더 탑재한 듯

    기존에 북한이 갖고 있던 가장 우수한 레이더는 S-300P 방공 시스템용 5N63 교전통제레이더, 일명 ‘플랩 리드(Flap Lid)’다. 시리아를 통해 밀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레이더는 최대 300㎞ 범위에서 표적 100개를 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수동위상배열(PESA) 방식의 모델이다. PESA는 방사소자(radiating element)를 전면에 배치하고 뒤에 전력공급장치와 진행파관증폭기 등을 붙여 제작한다. PESA 방식 레이더는 방사소자 스스로 전자파 에너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AESA보다 해상도나 전자전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최근에는 방사소자에 전파 생성 및 송수신 능력을 부여한 송수신모듈(TRM)을 사용하는 AESA 레이더가 주로 쓰인다.

    TRM은 전력 공급·냉각 계통이 PESA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각 TRM을 유기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도 수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런 AESA 레이더는 뛰어난 기술력은 물론, 기술을 실제 완성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고도의 전자산업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북한 조기경보기는 위상배열레이더를 사용했더라도 플랩 리드 레이더에서 응용한 PESA 방식의 레이더를 채택했을 공산이 크다.

    북한 조기경보기가 위상배열레이더를 채택했다면 엔진 교체도 이뤄졌어야 한다. 위상배열레이더의 탐지거리는 방사소자의 에너지 효율과 개수, 전기 출력에 비례해 넓어진다. 쉽게 말해 조기경보 레이더로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높은 출력의 전력이 공급돼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 A-50U나 중국 KJ-2000 같은 IL-76 기반의 조기경보기 모두 비교적 신형인 PS-90 터보팬 엔진을 갖췄다. 1980년대에 보급된 이 엔진은 개당 3만8400파운드(약 1만7417㎏)의 추력을 낸다. 북한이 보유한 IL-76TD는 이보다 구형인 D-30KP-2 터보팬 엔진을 쓴다. 이 엔진은 2만6460파운드(1만2000㎏)의 추력을 낼 수 있다. 추력은 물론, 전력 생산량에서도 PS-90 엔진에 한참 못 미친다. 북한 조기경보기는 발전량 부족으로 기계식 레이더를 사용한 구형 A-50과 비슷한 수준의 탐지 능력을 갖췄을 개연성이 크다.

    한국 KF-21 전투기에서 ‘미티어’ 공대공미사일 분리 시험을 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한국 KF-21 전투기에서 ‘미티어’ 공대공미사일 분리 시험을 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순항미사일, 조기경보기에는 쉽게 잡혀

    북한 조기경보기가 탐지거리가 짧고 전자전에도 취약하다면 이를 보완하는 장비가 달려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조기경보기는 통상 ESM 안테나 혹은 피아식별용 안테나를 메인 레이돔과 별도로 장착한다. 그런데 새로 식별된 북한 조기경보기에는 이마저도 없다. 이 같은 정황으로 비춰볼 때 북한 조기경보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최첨단 ‘공중조기경보통제기’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그저 하늘에 떠 있는 레이더 기지 정도의 역할만 수행할 공산이 크다. 설령 러시아의 기술 지원이 있었다고 해도 북한 조기경보기 성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러시아의 최신 조기경보기가 엥겔스-2 공군기지(러시아 최대 전략폭격기 기지)로 쇄도하는 우크라이나 드론을 제대로 탐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처럼 불안정하고 부족한 성능의 조기경보기를 굳이 만들었을까.

    사실 북한 입장에선 하늘에 떠 있는 레이더 기지 정도 성능만 발휘해도 조기경보기를 만들 이유가 충분하다. 대다수 나라는 조기경보기를 아군 전투기와 방공 전력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한다. 반면 북한 조기경보기는 평양의 방공 능력 강화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북한이 조기경보기에 기대하는 역할은 하나다. 유사시 평양으로 쇄도할 한미연합군의 순항미사일을 원거리에서 탐지해 접근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미국이 대량 보유한 토마호크 미사일은 전쟁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이미지를 가졌다. 미국은 적을 공격할 때 군함이나 잠수함에서 대량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으로 작전을 시작한다. 이는 유사시 한국군도 마찬가지다. 한국군은 개전 초 현무-3 시리즈와 해룡, SLAM-ER, 타우러스 같은 순항미사일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런 순항미사일은 여객기와 비슷하거나 살짝 빠른 정도의 속도로 비행한다. 일단 적 레이더에 탐지되면 격추되기 쉽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순항미사일은 적 레이더를 피하려고 지표면에 바짝 붙어 비행한다. 지표면에 가까운 고도로 비행할 경우 각종 지형지물이나 낮게 깔린 구름, 새떼 등 여러 요소가 레이더 전파 난반사를 일으킨다. 그럼 순항미사일이 적 레이더에 탐지될 확률이 줄어든다. 순항미사일은 비행 속도가 비교적 느린 덕에 자세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적 레이더의 사각지대를 틈타서 날아가 어떤 건물의 몇 층, 몇 번째 창문을 콕 찍어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 보통 산이나 언덕 위에 설치한 레이더로는 지형지물 사이에서 낮게 날아오는 순항미사일을 탐지하기 매우 어렵다.

    러시아 엥겔스-2 
공군기지. 우크라이나가 드론으로 해당 공군기지 공습에 성공한 점에 비춰볼 때 러시아의 레이더 기술은 예상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뉴시스

    러시아 엥겔스-2 공군기지. 우크라이나가 드론으로 해당 공군기지 공습에 성공한 점에 비춰볼 때 러시아의 레이더 기술은 예상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뉴시스

    순항미사일 막아도 첨단 공대공미사일에 속수무책

    그런데 조기경보기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레이더는 지표면에 설치된 레이더보다 순항미사일 같은 저고도 비행 표적을 훨씬 쉽게 잡아낼 수 있다. 레이더 성능에 따라 탐지 효율은 다르지만 말이다. 평양 상공에 떠 있는 조기경보기는 유사시 대량으로 날아들 한미연합군의 순항미사일로부터 자기네 ‘혁명의 심장부’를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북한이 기술적 제약에도 무리해서 조기경보기를 만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큰맘 먹고 만들고 있는 이 조기경보기는 전쟁 발발과 거의 동시에 불덩이가 되어 평양 인근에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올해 말이나 내년 북한의 새 조기경보기가 실전 배치될 무렵 한국 공군에도 위력적인 무기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최대 사거리가 300㎞인 최강의 장거리공대공미사일 ‘미티어’를 운용하는 KF-21 전투기가 배치되는 것이다. 한국 공군은 2026년부터 강원 강릉 제18전투비행단에 KF-21 전투기를 배치할 예정이다. 강릉에서 평양까지는 직선거리로 300㎞다. 강릉에서 이륙한 KF-21 전투기가 E-737 ‘피스아이’의 지원을 받아 휴전선 인근까지 진출하면 평양까지 거리는 200㎞ 이내로 좁혀진다.

    미티어 미사일은 원거리에서 적 전투기를 잡고자 개발됐다. 전자전 장비도 없는 둔중한 조기경보기가 이런 미사일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미티어보다 훨씬 긴 사거리를 가진 미군 AIM-174B 미사일까지 동원되면 북한 조기경보기가 숨을 수 있는 곳은 없다. 북한 지도부가 공들여 만드는 조기경보기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평양 상공에서 화염에 휩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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